CAFE

::::::강론말씀(2):::::

[[강론]]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일과 기도의 균형, 그리고 오늘의 신뢰 / 최 빠코미오 수사

작성자*Anna|작성시간26.06.20|조회수16 목록 댓글 0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일과 기도의 균형, 그리고 오늘의 신뢰

PACOMIO

 

연중 11주간 토요일

1독서: 2역대 24,17-25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복음: 마태 6,24-34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제목: 일과 기도의 균형, 그리고 오늘의 신뢰

 

1. 두 주인의 자리와 무너진 성전

기원전 9세기 남유다의 요아스 임금은 처음에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이끌어주던 대사제가 죽자마자 세상의 권력과 재물이라는 새로운 주인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요아스는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겼으며(2역대 24,18 참조), 이를 꾸짖는 예언자마저 성전 뜰에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하느님을 밀어낸 자리에 재물과 안위라는 우상을 들여놓은 임금의 최후는 참혹했습니다. 외세의 침략으로 모든 보물을 빼앗겼고, 결국 자신의 신하들에게 모반을 당하여 침상에서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2역대 24,25 참조). 이 비극은 인간이 하느님과 세속의 욕망을 함께 섬기려 할 때 삶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2. 세속적 근심의 사슬과 아메림니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역사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단호하게 선언하십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주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먹고 마실지 걱정하는 일상의 염려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신뢰를 가로막는 영적인 사슬이라는 점을 짚어내십니다. 초기 교회 동방 수도자들은 이 말씀에 따라 '아메림니아', 곧 '세속적 근심이 없는 상태'를 영성 생활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내일을 걱정하느라 온 마음이 세상에 묶여 있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재물에 쏠린 시선을 거두고 내어맡길 때, 비로소 영혼의 평정이 찾아옵니다.

 

3. 일과 기도의 균형, 그리고 오늘의 신뢰

과거 카르타고의 일부 수도자들은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하늘의 새와 들의 나리꽃처럼 하느님이 먹여주실 테니 자신들은 일하지 않고 기도만 하겠다고 버틴 것입니다. 이때 성 아우구스티노는 노동을 거부하는 게 의탁이 아니라 게으름임을 지적하며, 땀 흘려 일하는 일상과 하느님을 향한 기도가 올바른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서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땀 흘리되, 그 결과와 미래는 온전히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라는 초대입니다.

 

4. 먼저 구해야 할 하느님의 나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우리의 삶이 늘 불안하고 고단한 이유는 세상의 것들을 하느님보다 먼저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도 솔로몬의 영화보다 아름답게 입히시는 분이십니다(마태 6,30 참조).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불안을 오늘로 당겨와 스스로를 괴롭히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하겠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자비로우신 손길을 신뢰하며,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하도록 온전히 맡겨드리는 영적 자유의 길로 나아갑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