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애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자주통일•노동인권을 향한 뜨거운 심장>
고 위정량 강동구평화의소녀상 상임대표 <추모의 밤>을 거쳐 오늘 아침 8시에 장례미사를 거쳐 성남장례문화사업소에서 화장을 한 후 하남 마루공원 봉안당 2층 201호에 안치했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가고자 했던 자주통일•노동인권세상을 향한 길을 잊지 않고 잘 계승하겠습니다.
삼가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추모글
-유기창 (전 강동구평화의소녀상추진위원회 상임대표 )
저녁 늦게 뜻하지 않은 비보를 접했습니다.
강동구에서 평화 통일, 노동 인권 지킴이로 활동했던 위정량 동지가 영면했다는 소식을 카톡을 통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 강동구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는 일에 함께 했던 동지였습니다. 선이 너무도 분명했던 동지였습니다. 옳은 것에 대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고 추진했고, 옳지 않은 그름에 대해서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지사적 면모를 지녔던 그였습니다.
강동구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에서 만났던 그 인연으로 어쩌다 만나면 과분할 정도로 반갑고 살갑게 맞이 해 주던 그였습니다. 건립 추진위 활동을 하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는 정면으로 부딪히며 돌파했던 그였습니다.
강동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가능했던 것도 어찌 보면 그
의 힘이 반이었습니다. 그가 맡은 역할이 건립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이었고 이후 그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 상임대표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가 아프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으나 죽음에 이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 한 일이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으나 문병을 가야겠다고 연락을 해야지 했을 때는 퇴원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되었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는 한 번 만나야지 하다가 생각만으로 그쳤습니다.
만나면 반가운 동지였으나 일을 하는 그를 번거롭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 연락을 하지 못 하고 서울을 떠나곤 했었습니다. 1년에 몇 번 정말 가끔 가다 연락을 하면 언제나 반갑고 정겨운 답장을 보냈던 그였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지 2주가 됐던 어제 늦은 밤. 우연히 카톡을 열었습니다. 그것이 당사자 부고였음을 뒤늦게 확인했습니다. 다른 나라에 있을 때였다면 소식을 들어도 올 수 없는 일. 그러나 언제든지 연락을 하고 문상을 갈 수 있는 서울 하늘에 있으면서 뒤늦게 듣게 된 부고를 받아 들고 황망하기만 했습니다.
인권과 평화와 통일을 위해 참 부지런하게 한 몸을 불사르며 살았던 위정량 동지. 참 열심히 살았던 당신, 위정량 동지. 잘 가시오. 생전에 만나지 못 하고, 이렇게 죽어서야 소식을 듣고 전하는 것이 참 미안하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추모시> 고 위정량 선생 전에
남과 북의 평화 통일
이 땅의 자주와 민주
애쓰시다 가신 위정량 선생
일제에 끌려 가
성노예가 되었던
어리고 어린 소녀들
그 소녀들 위해
강동의 평화소녀상
앞장서 만들어
일제의 잔악상 알렸던
위정량 선생
아직은 남과 북의
평화적 통일도
일본의 사죄도
제대로 받지 못 했는 데
어찌 이리도 가셨습니까?
타고난 문장으로
이 땅의 통일과 자주 민주 평등을 위해
기자로서 사명을 다했던
위정량 선생
아!
당신이 원칙에
충실했기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나갔던 삶이
당신을 힘들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당신은 그 길을 주저없이 갔습니다.
위정량 선생이 계셔
일제의 잔학상 알리는
강동평화소녀상도 가능했습니다.
아! 남과 북의 평화적 통일의 꿈
못 이루고 가시는 당신
저 하늘에서라도
당신의 소원들
남과 북의 평화적 통일
이 땅의 자주 민주 통일
평등한 세상 이룰 것을 다짐합니다.
굽어 살펴 주소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김대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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