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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풍요는 베푸는 자의 것이다

작성자지초와 난초|작성시간18.04.25|조회수83 목록 댓글 0

유대교와 기독교에는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십일조라는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 있다.

이 원칙이 가르치는 바는 이것이다.

 

신에게 뭔가를 바치는 행위에는 축복이 따르며, 우리는 신에게 자신을 바치는 만큼 축복을

받게 된다.

 

유명한 영 능력자 에드거 케이시의 삶과 관련한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흥미진진한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케이시에게 사람들의 전생을

알아내는 능력이 있었다고 믿고 있다.

 

그가 한번은 성공한 모델의 전생을 읽어낸 적이 있었다.

이 여인은 사진가들이 얼굴보다도 손을 찍는데 더 열심일 정도로 손이 아름다웠다.

트랜스(trance)상태에 들어간 케이시는 여인이 최근의 전생에 수녀였으며,

수많은 시간 동안 손과 무릎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진리는 우리 삶에서 직접 시험해볼 수 있다.

당신의 재능은 무엇인가?

어떤 재능이든 그것을 신께 바쳐보라.

자신의 재주가 천부의 재능과 거리가 멀어 보이더라도 아무 상관없다.

교회의 헌금 통에 사과 한 알을 넣었던 가난한 소녀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그리고 그 사과가 어떻게 황금으로 변했는지 기억하는가?

 

오래 전에 내 힘으로 사원을 건립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원이 1년 만에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다.

누군가가 제단 위에 양초를 켜놓았다가 깜빡 잊고 끄지 않은 탓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 불행한 사건의 전말에 대해 길게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사건이 내가 연달아 찾아온 재정적 어려움을 간신히 이겨낸 뒤

한 달이 되지 않은 시점에 일어났다는 사실만 말해두고자 한다.

다시 말해 그 시기가 더 이상 나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 돌발적인 화재를 겪고 신에게 이렇게 기도했다.

나의 주인이시여, 이 사원은 제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원을 지어서 당신께 드렸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커다란 기쁨이 솟구쳤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기쁨이 몰려왔다.

 

나는 다시 기도했다.

나의 주인이시여, 사원 한 채를 잃은 일이 저에게 이토록 큰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차라리 저의 전 재산을 다 가져가십시오.!

 

그 날 저녁 나는 필요한 물건을 사러 동네가게에 들어갔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가게 주인이 놀라 소리쳤다.

노래를 부르시다니!

몇 년 전에 우리 가게가 완전히 불타버렸을 때 저는 1년 동안이나 울었습니다..

내가 대꾸했다.건물은 잃었지만 목소리는 잃지 않았거든요!

 

나는 마음 속에서 노래가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신이 내려준 기쁨이 너무 커서 다른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이와 같이 신이 내려준 단 하나의 선물이 크나큰 축복을 가져준다면,

모든 것을 신에게 바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현명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인도의 위대한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가 쓴 영감 넘치는 시를 한 편

소개한다.

 

 

골목길을 걸으며 집집마다 탁발을 하다 멀리서 당신의 황금 마차가

찬란한 꿈처럼 나타나는 것을 보고 만왕의 왕이 어떤 분일까 궁금했습니다.

나의 희망이 높이 날아오르면서 불행한 날들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동냥하지 않아도 적선물이 주어지고 도처에 널린 부가 저절로 주어지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습니다.

 

마차가 내 앞에 멈추었습니다.

당신의 눈길이 나에게 떨어졌고, 당신은 미소를 지으며 내리셨습니다.

마침내 내 인생에 행운이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당신께서 나의 오른손을 잡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무엇을 주겠느냐?

 

아, 그 귀한 손을 거지에게 내밀어 구걸한다는 것은 얼마나 왕다운 장난이었는지! 나는 혼란스러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서 있다가 천천히 바랑을 열어 마지막 남은 작은 옥수수 한 알을 꺼내 당신께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날의 끝에 바랑을 바닥에 쏟았을 때, 그 보잘 것 없는 무더기 사이에서 작디작은 황금 알갱이를 발견하게 된 나의 놀라움은 얼마나 컸던지요!

나는 통곡하면서, 제가 당신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가슴을 지니고 있었기를 바랐습니다.

 

알겠는가?

우리의 부를 신에게 바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신에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따라서 아마도 여러분은 날마다 이 원칙이 여전히 작용하는지

조금씩 시험하면서 천천히 진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결코 빈정대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있다.

진실은, 인간의 내밀한 욕망은 우리가 쉽게 가 닿지 못하는 잠재의식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어떤 알코올 중독자가 의식적으로는 술을 끊고 싶어 할지 모르지만, 잠재의식은 그를 낡은 인습을 향해 계속 몰고 갈 수도 있다.

깊이 묻혀 있는 이런 뿌리들을 뽑아버리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우리에게 완전한 성취를 맛보고자 하는 열망만 있다면

그 일은 여전히 가능하며(바람직하기도 하다), 실제로 필연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원칙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모든 것을 신에게 바치면

신이 우리를 돌보아준다는 것을 여러 차례 절감했기 때문이다.

 

다시 화재 사건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 사건은 나에게 영적으로 소득이 되기는 했지만, 물질적으로 보면 일간 손해가 분명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국 물질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건물 한 채를 잃은 뒤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질적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필자가 여러 해 전에 겪은 일이다.

 

당시 나는 2년 동안 고생한 끝에 자가 수련 안내서인

(라자요가의 기법과 과학 The Art and Science of Raja Yoga) 저술 작업을 끝마친 참이었다. 나는 조용한 곳으로 나가 신과 함께 탈고를 축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신을 위한 프로젝트를 완수할 때마다,

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일을 끝낼 때마다 거의 관행처럼 그런 자축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이번에 찾아가기로 한 카멜이라는 켈리포니아 해안의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이었다.

 

그런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마침 8월이라 한창 여행시즌이었던 것이다.

카멜에 도착했지만 방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한참 돌아다닌 끝에 한 군데 찾아내기는 했지만, 숙박비가 예상을 훨씬 초과했다.그 돈을 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갈 돈이 모자랄 판이었다.

나는 망설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신이시여, 저는 당신과 함께 축하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통 혼잡과 소음을 무릅쓰고 가까운 몬테레이로 가서 모텔을 찾아봐야 할까요? 아니면 이런 불완전한 축하를 받아들여야 합니까?

 

신이시여, 저는 그냥 이 방을 얻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돈에 대해서는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그리고는 지갑을 꺼내 방값을 지불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를 알고 있을 리가 만무한 접수계 직원이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그 해 여름 카멜을 거쳐 간 여행자만 해도 수천 명은 될 터였다.

돈은 안 내셔도 됩니다.

 

나는 그 말을 퇴실할 때 정산하라는 이야기로 듣고,

숙박비를 미리 지불하고 싶어서 그런다고 했다.

그러나 체크아웃 할 때 돈이 모자랄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은 내비치치 않았다.

 

선생님께는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직원이 다시 설명했다.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숙박부에는 여행사 직원이 다녀간 것으로 기록해놓겠습니다.

그렇다면 고마운 일이오만, 대체 이유가 뭡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선생님이 좋습니다."

 

그 순간 나는 퍼뜩 깨달았다.

내가 그 축하를 신과 함께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신 또한 그 축하를 나와 함께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근처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돈을 내려고 했더니 식당주인이 밥값을 한 푼도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모텔이나 레스토랑에 갔다가

돈은 안내셔도 됩니다.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몇 번이나 되는가?

나는 이런 일이 나에게 몇 번 일어났는지 이야기 할 수 있다. 단 한 번이다.

그 때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내가 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축하다.

 

신과 함께 일을 하려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 여러분은 한번 해보라.

그러면 신이 어떻게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지 알고 놀랄 것이다.!

이 원칙을 체득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하나 있다.

당신의 수입 중에서 일정 부분 통상(10퍼센트)을

신의 이름으로 뭔가 좋은 목적을 위해 기부하는 것이다.

 

기부를 하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당장은 그럴 만한 능력이 없지만 나중에 능력이 생겨서 기부를 할 수 있게 된다면 행복할 겁니다.이런 사람들은 베푸는 행위 자체가 풍요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기심 없이 신에게 바치는 사람들은 결국 신이 자신들에게 보답해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우리가 내보내는 모든 에너지는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 힘에 의해 더욱 강해져 우리에게 다시 흘러들어온다.

 

예수는 말했다.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태복음 19:29)

스리 크리슈나도(바가바드기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을 확실히 알라. 결단코 버림받지 않으리라.

 

내가 아는 부부 한 쌍이 최근에 자신들이 나가고 있는 교회에

저희는 정말로 십일조를 낼 능력이 없습니다. 하는 내용의 편지를 쓰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얼마 후 두 사람은 자신들보다 가진 것이 훨씬 적은 신도들도 정기적으로 십일조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두 사람은 마음을 고쳐먹고 십일조를 내기 시작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실직상태였던 여자가 직장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남자의 봉급도 올라갔다.

 

수입의 일정 부분을 신에게 바쳐보라.

그러면 모든 풍요의 원천인 신이 축복으로 보답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진정한 안정은 신에게서 온다. 우리가 이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 우리의 인생길은 영원히 안개 속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신은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의 인생을 지극히 사소한 부분까지 살피고 배려한다.

출처 : 돈을 끌어오는 사람, 돈을 밀어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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