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천명따라 평양으로
1946.5.27. ~ 6.6.
'삼팔선을 넘어라' (p76. ~ p77.)
1946.5.27
선생님은 이제 나는 나로서의 가야 할 길을 작정했기에 마지막 인사 겸 해서 당시 김백문씨가 수도원을 만들어 특별 집회를 열고 있던 문산으로 떠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인간의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났다가 떠나갈 때는 간다는 인사라도 하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 내가 여기 서울에 있었는데, 여기 서울에 상도동 가는 데 집이 지금도 있잖아요? 그때 저 가시마, 가시마구미라고 있다구요. 일본에 가면 큰 전기 회사였더랬는데... . 그때 회사도 다니고 교회도 맡고 해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데, 그때 해방 직후니까 쌀이 없거든요. 선생님은 그때 황해도 백천에 쌀을 사 놨어요.그래서 그 쌀을 트럭에 싣고 오려고 가다가 차안에서 '삼팔선을 넘어라! 하는 명령을 받은 거예요. 5월 27일에 명령받고 출발해서 6월 6일에 평양에 도착했어요. 하루 아침이 돼 가지고 난데없이 갈 길을 떠난 거예요. 우리 성진이를 그때 4월 2일 나 가지고 내가 5월 27일날 떠났으니 한 달이 조금 더 되지요. 그때 나서게 될 때 삼팔선 넘기가 어려우니 전부 다 하늘이 알려 주는 거예요. 무지개가... . 이런 얘기 하면 믿질 않겠기 때문에 다 얘기 안 한다구요. 삼팔선을 어디로 넘을지 직접 안내함을 받아서 이북에 들어갔다고요. 삼팔선을 넘을 때 무지개가 앞을 인도해 줍니다. 120리 길을 직접 인도해 주시는 겁니다.
하늘의 명령과 뜻만을 따라 (p77. ~ p77.)
하나님의 뜻, 명령을 따라 가지고 선생님은 모든 것을 버렸어요. 벌써 그걸 아는 거예요. '이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명령이 기필코 있을 것이다' 하는 것을 내가 알았다구요. 가정을 위한 길을 갈 것이냐, 공적인 하나님을 위한 길을 갈 것이냐? 거기에서 딱 잘라 '하늘을 위한 길을 가는 거다' 해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북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런 고비가 있는 거예요.
둘 다 가질 수 없다구요. 이자택일(二者擇一)이예요. 안락한 집을 버리고 죽음 길을 찾아간 거라구요.
여기에는 원조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가정을 희생시키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아이고, 우리 아들딸 때문에 못 가겠소' 이런 건 통하지 않는다구요. 그것이 가능한다면,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 선생님이 아들딸을 버리고 이북으로 안 들어가는 거라구요. 다만 가나안을 복귀하려는 하나님의 이념에만 사무쳐 있습니다. 축복받을 수 있는 민족, 축복받을 수 있는 땅이 어디뇨? 그것을 찾아 헤매 나온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입장이었습니다.
최하의 자리, 사탄의 본거지로 (p78. ~ p78.)
내려갈 때는 반드시 최하의 자리까지 내려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북으로 가서 다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헤롯왕에게 쫓길 때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합하여 예수님을 모시고 헤롯왕의 뜻을 반대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할 천적인 사명을 세우지 못했으므로 예수님이 애급으로 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역시 그러한 노정을 걷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북에 갔을 때도 상대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배낭을 짊어지고 '사랑하는 처자를 남겨 두고 저는 가야 합니다. 안 갈 수 없습니다' 라고 기도하던 때를 선생님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그네의 행로를 걷는, 하늘 길을 찾아 나가는 청년의 모습은 몰리고 쫓기는 한 마리의 양가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북쪽으로 간 것은 사탄의 본거지로 간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사탄입니다. 공산권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들어간 것입니다. 원수의 본거지를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를 중심삼은 뜻의 기반이 사탄편에 돌아갔기 때문에 그것을 찾기 위하여 사탄의 소굴인 이북으로 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대하지 못한 것이 한이요, 가인을 좋아하지 못한 것이 한이요, 가인의 제물을 못 받은 것이 한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성진이를 버리고 삼팔선을 넘어 이북으로 간 것입니다. 그것은 내적으로 자식을 버리고 삼팔선 이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한 것입니다.
7년간의 가정적 희생 (p79. ~ p79.)
선생님이 가정을 가지게 된 것은 교회를 연결시키고 나라를 연결시켜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라와 연결되지 못했고 교회와도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갈라지는 놀음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갈라진 기준을 중심삼고 다시 찾을 때까지 탕감조건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편지가 오면 문전에서 전부 다 돌려 보내거나 찢어 버렸습니다. 내게 소식이 오늘 것을 원수같이 여겼던 것입니다. 성진이 어머니도 성진이를 업고 다니면서 사과 장수도 했고 말이예요,
경찰한테 쫓겨다니고 다 했어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이걸 알고 보니까 성진이 어머니도 전부 다 한 고개를 넘으면서 다시 찾아와야 돼요. 7년노정을 걸어야 된다 이거예요. 애기와 더불어 모자 협조해 가지고 이 땅 위에 있어서, 해와의 운명이 전부 다 종적 기준 못 세운 남편을 찾아가는 이 지구성이 있어서 그런 7년 동안, 애기를 품고 그 애기를 이 땅 위의 어떤 왕자보다도 고이 키워야 된다는 거예요. 국가를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해 넘어가야 할 7년노정이 남아있다는 것을 내 약혼 단계에서 다 얘기했다구요. 이런 나이니, 이런 공적인 길을 가는 사람이니 이 길을 갈 수 있느냐고 그때 말을 다 했지요. 그것이 실재 그렇게 될 줄은 몰랐지요. 딱 그냥 그대로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