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4: 눈물, 물의 액정-조명환 사진집, <진경산 水> (생것미디어, 2018)
1. 산, 사진, 사진가
낮에 과일을 듬성듬성 잘라 와인에 듬뿍 넣어, 냉장고 한켠에 두었다. 향긋한 샹그리아...하루 정도 숙성되어야 하는데...그렇게 기다릴 만큼 인내심이 없다. 조명환 작가가 다녀갔다. 팥이 들어있는 하얀 떡을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 떠나면서 이 사진집을 긴 오동나무 테이블 위에 슬쩍 놓고 갔다. 함께 있는 동안 그가 말하는 소리는 겨우 들렸다. 손가락으로 뭔가를 지시하는 바도 없었다. 어슴프레한 시간에 처음 만난 것인데, 시간이 꽤 흘렀다 그 덕분에, 그와 헤어진 다음 날, 이 책을 보고 읽는다. 처음에는 “나도 이곳에 있었는데...” 정도의 장소에 대한 탐색과 가본 지 못한 계곡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그리고나서 사진의 아름다움 속에 있다가 이 글로 답한다.
1.1 그렇다, 아니 만약이라면...‘그’가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만약 그가 사진 속 대상 앞에 있지 않았다면...정말 만약이라는 가상이다. 그렇다면 대상이 없고, 사진이 없고, 그가 없을 것이다. 사진가는 그러므로 대상에 가까이 다가서서, 그 대상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는 존재일 터이다. 그 때 대상은 사진가에게 자신의 모습, 그 속내를 조금씩 보여줄 터이다. 너 그리고 나, 두 존재의 조합과 공감이 사진이란 결과일 터이다. 이 부분은 매우 경이로운 것이라서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만남을 운명과 같은 것으로 말한다면, 대상과 사진가의 만남은 거의 운명적이다. 그 한 순간을 사진의 운명이라고 말한다면 매우 모호한 말인데...달리 말하기 힘든 노릇이다. 한 순간 운명의 이미지를 가두는 것이 사진이라고 쓰면 좀 남세스럽다. 얇은 종이 거울과 같은 사진이 이때부터 달리 말하기 시작한다. “나 어때요?”라고. 사진찍기는 사진의 장르에 관계없이, 언제나, 피할 수 없는 노동과 정신의 ‘다큐멘트’일 터이다. 어찌 할 수 없는, 달리 할 수 없는 순정과 액정의 확고부동함이 들어있는, 그리하여 사진이라는 매혹을 뿜어낸다.
1.2 아주 오래 전에 내면화된 확고부동함에 관한 이야기 하나, 1978년에 도서 출판 광장이 <한국의 고건축5-내설악 너와집>이란 사진집을 출간했다. 전체 사진은 작가 강운구가, 책 끄트머리에 발행인인 건축가 김원이 너와집에 대한 글을 실었다. 그 때 이 책의 정가가 4500원이었으니, 학생의 주머니가 감당할 만한 책은 아니었다. 그래도 두 권을 사서, 지니고 있었다. 이 책에서 김원의 글 다음이 책의 마지막 48쪽인데, 절골로 들어가는 초입의 사진이었다. 좁고 굽은 길이 나있는 길골...나는 하염없이 이 사진에 빠졌고, 백담산장을 지나서 첫 번째 계곡길인 길골을 따라 올라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길골로 들어가 저항령에 올라 외설악으로 내려가지 않고 절골로 되돌아 내려온 적도 있었다. 1999년, 학고재 출판사에서 산문집 <옛길>을 출간할 때, 나는 출판사에게 강운구 선생의 길골 사진을 표지 사진으로 삼고 싶다고 했고, 출판사는 선생의 허락을 받아, 내 청을 들어주었다. 그 후로 산사진에 대한 관심은 이어졌다. 강운구 선생의 사진집을 비롯해서, 김근원, 안승일, 안셀 아담즈Ansel Adams, 갤런 로웰Galen Rowell 등의 사진집을 곁에 두고 보고 있다.
2. 사진, 눈의 새로운 탄생
조명환의 사진집 <진경산 水>(생것미디어, 2018)는 우리나라 계곡 사진집이다. 산을 담아내되, 계곡을, 계곡을 흐르는 물 가까이 다가가서, 오래 보고, 그 물에 발이나 옷이 젖은 채 찍은 사진들을 담고 있다. 사진집 제목이 진경산수가 아니라 진경산하고 한 칸 뛰고 큰 글자로 水이다. 멀리서 산 전체를 조망하는 사진이 아니라 가까이 가서 산의 핏줄과 같은 계곡을 찍은 사진들이다. 그러니까 “그가 종주산행의 들머니 또는 날머리에서나 만나게 되”(작가 노트에서 인용)는, 산보다 물을 내세우는, 산 속에 있는 대상인 물을 통하여, 제목 앞에 놓인 한국의 산줄기 즉 진경산을 더욱 확대해보려는 뜻으로 읽힌다. 산의 진경은 능선보다 계곡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계곡의 물은 어디서 발원하는 것일까? 산행하다보면 늘 이런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계곡의 출생과 기원을 알고 싶은 것인데, 태백산이나 서울의 북악산을 오르다 보면, 여기가 발원지라는 푯말과 만나게 되는데, 그 싱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계곡의 물은 형태 이전의 물이기 때문이다. 물의 기원이 여기라고 말하면서 가두는 순간, 고정되는 어떤 것이 생긴다. 계곡 물의 원천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조명환의 사진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나그네처럼 여기저기에서 오고, 가고 흘러내릴 뿐이다. 계곡 물의 근원과 분리된다. 이 책 속 사진은 모두 물의 흐름 속에 있다.
2.1 산에 다닌 이들은 안다. 물이 없는 산은 산이 아니라는 것을. 미국의 큰 산과 우리의 작은 산을 결코 바꾸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물 맑고, 물 많은 우리의 금수강산은 사막과 같은 저들의 큰 산과 결코 비교의 대상도, 등가의 대상이 아니다. 젊은 날, 산에 가면, 물 먹으러 간다는 말을 선배들이나 선생님들로부터 자주 들었다. 어느 산에 가더라도 물이 있다니...그것은 우리나라 산이 내린 복福 중의 복일 터이다. 어린 시절, 지리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그 산들을 모두 평지로 만들고, 산의 수많은 봉우리들을 깎아내려서 그 흙으로 땅을 넓히면, 미국에 꿇릴 게 없어...우리나라는 작은 나라가 아니야...” 천번 만번 옳은 말씀이시다.
3. 계곡에 물의 액정인 눈물이...
작가가 선물로 주고 간, 그렇게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분신과 같은 책, 사진집을 줄창 보고 또 보았다. 그 자리에서 고마운 생각이 들어, 카카톡 문자로 인사를 남겼다. “조명환 샘, 사진집 아침부터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물이 폭포처럼 흐르기와 담에 머물기가 구분이 되지 않아요. 산에 숨겨겨 있는 계곡물들이 적셔놓는 바를 생각합니다. 자꾸만 산의 눈물같은 사진들을 봅니다. 산의 기원같은 물을 찍은 사진들...계곡은 산의 눈시울과 같아 보여요. 그곳을 적시고, 흘러내리는 물들은 산의 눈물 같아요. 언제 사진 찍으러 산으로 들어가시는 날, 불러주세요. 짬 내서 같이 가보고 싶네요.” 이 참에 미국의 대표적인 산 사진작가 안셀 아담즈에 대하여 짧게 하나를 언급하자. 그가 쓴 자서전Ansel Adams, An Autobiography(Little Brown and Company, Boston, 1985)를 보면, 이 책 속, 사진 설명에서, 호수는 '거울Mirror Lake'(99쪽)로, '꽁꽁 언 벽frozen Lake and cliffs'(147쪽)으로, (유일하게 들어있는 물 흐르는) 한 장의 계곡사진은 '큰소리치는, 으르렁대는 물떨어짐roaring river falls'(83쪽) 으로 수식되어있다. 아담스의 책 속 대부분 사진은 사람, 꽃, 나무, 바위에 관한 것이고, 물 흐르는 계곡 사진은 몇 개 되지 않는다.
3.1 조명환의 계곡 사진을 보면서 생각했다. 산의 계곡은 충동의 산물이 아니라, 무수한 세월의, 계절이 구축한 자취이고 매혹이라고. 그곳에서 물이 솟고, 물이 흘러내린다. 산의 나무가 아래에서 위로 자란다면, 산의 봉오리가 한 순간에 솟아나 응고된 용마루라면, 산의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산의 구술口述이다. 비가 오면 그 양이 많아지겠지만, 좋은 계곡의 물은 절대 끊어지는 법이 없는, 끊어지지 않는, 그래서 원천 즉 샘이다. 산의 물은 흘러 흘러, 산의 이동이고 외출이고 여행이다. 한번 떠나면 되돌아오지 않는, 물 흐름은 그것을 노래하는, 열창이다. 앞에서 계곡 물 흐르는 영어로 roaring이라고 썼는데, 아마도 이런 표현은 물이 흘러내리면서 다른 것과 접촉하여 내지르는 소리를 뜻한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조명환의 사진집 속 계곡을 흐르는 물은 아우성처럼 소리내는 것이 아니라 거의 침묵에 가깝다. 설악산 독주골(86쪽)에서, 쉰길 폭포(82쪽)에서, 대승폭포(90쪽)에서, 방태산 연가리골(140쪽)에서, 북한산 삼천사 계곡(132쪽)에서, 가리왕산 장전 계곡(16쪽)에서 찍은 사진들은 흐르는 물 그 자체에 대한 어떤 황홀경에 가깝다. 흐르는 계곡 물에는 과거가 없다. 수직으로 떨어지든, 수평으로 흐르든...소멸이 없는 채로 지나간다.
3.2 그동안 산서회 알림을 통하여, 조명환 작가의 사진 전시회에 갈 기회가 더러 있었다. 호경필 회원이 전한, 가리왕산 사진 전시회가 그러했다. ( “...2018, 6월 13일(수)부터 7월 13일(금)까지 산악환경 사진가인 조명환 회원의 사진 전시회...평창동계올림픽 스키 할강장 공사로 인해 10만 그루가 벌목된 가리왕산의 자연파괴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하여 많은 등산객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호소하고자 합니다. 벌목 전의 아름다웠던 가리왕산의 모습과 인간의 욕심이 휩쓸고 간 아픈 상처를 고발하여 더 이상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자연이 파괴되는 참사가 없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전시회를 기획했습니다. 가리왕산(1,561m)은 환경부 지정 녹지자연도 9등급이며 산림청 산림유전자보호구역으로 희귀생물자생지입니다. 조명환 회원은 《아름다워서 슬픈 가리왕산》 등 8권의 사진집을 발간했고 사진전문출판사인 ‘생것미디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도 인사동에서 전시회가 있었고, 회원들을 초대해서 마시고, 노래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그는 영락없는 인문주의자이고, 한량이다. 사진으로 보았는데, 그 뒤풀이에 박인식 형의 모습도 보였다. 낯익은 산서회 회원들의 얼굴들도.
4. 삶과 사진
이 책 뒷장에는 노자의 글이 적혀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있으면서도 만족한다. 따라서 물은 도道에 가깝다.” 여기에 저자의 사진에 대한 생각이 하나로 귀결되어 있다. 물은 계곡, 물 흐름에는 흔적이 없다. 자취가 없다. 조명환의 사진을 거푸 들여다보면, 흐르는 계곡 물의 겉은 하얗지만, 그 속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 하얀 겉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우리 눈과 떨어져 있다. 검은 속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우리 눈과 가까이 있다. 앞의 것은 획득되고, 뒤의 것은 분실된다. 계곡에 이르러, 흐르는 물을 볼 때, 우리는 물과의 재회, 그 기쁨에 빠진다. 산에 오르는 그 기쁨을 간헐적으로 느낀다. 계곡 속 바위들과 그 옆 나무들만이 물의 도정道程을 마냥 즐길 뿐이다. 그 최대값이 ‘상선약수’일 터...물이 언어가 되고, 철학이 되고, 예술이 되는 지점이다. 기쁨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산에 올라, 계곡에 흐르는, 기쁨의 눈물과 같은 물에 빠져들고 싶어 한다. 흐름의 시작을 알 수 없는, 멈춤과 회귀가 없는 물가에 이르러 다들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간다. 익숙하게...가령 이런 말을 하면서...“와...우...푸우...” 이것이 태초의 언어일 듯하다. 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기원의 몸짓과 말들...그것이 계곡의 물, 눈물의 흐름이다. 조명환의 사진이 책을 손에 쥔 독자의 눈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흘러흘러 지금, 여기 그대 앞에까지 왔노라고 하면서...아주 가까이 혹은 아주 멀리서...그대 앞을 흘러가고 있노라고...(ㅇㅊ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