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기로 볼트 작업 중인 마에스트리
에릭존스가 발견한 마에스트리 컴프레서 프레임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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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세로 토레> 라인홀트 메스너 지음. 김영도 옮김. 하루재 클럽
글. 이용대
지구상에서 가장 어려운 봉 세로 토레
‘돌로미테의 거미’ 체사레 마에스트리. 자유등반의 달인으로 불렸던 그가 왜 세로 토레(Cerro Torre.3128m)에서 등정의혹을 증폭시키고 컴프레서를 동원한 혐오스러운 루트를 만들어 일생일대의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긴 것일까? 그는 토레(이하 토레로 칭한다.)에서 처음엔 동료를 잃고 11년 뒤에는 명성마저 잃고 산악계의 이단자가 되었다. 그는 왜 이토록 토레에 집착한 것일까.
이 책은 이런 사건들을 역사적인사실에 근거해 미스터리를 풀어내듯이 이야기한다.
어떤 과정을 거쳤던 간에 1959년의 마에스트리와 에거의 뛰어난 선구자적 시등이 바탕이 되여 15년 뒤에 토레의 초등정이 마무리된다.
수년간 등반불가능이라는 판정을 받아왔던 난공불락의 요새 토레는 결국 1974년에 등정시비의 여지가 없는 최초의 완벽한 등반을 카시미로 페라리가 마무리한다. 페라리는 4년 동안 이산에 전력을 다했으며 산은 그에게 초등이란 선물로 보답했다. 그는 생전에 모두 합쳐 182일의 밤을 파타고니아 안데스에서 비박을 하며 수많은 산을 올랐으며 토레의 초등으로 ‘진정한 파타고니아인’이 되어 또 하나의 전설이 되었고 2001년 그곳에 영원히 잠들었다.
이 책은 지구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파타고니아 산군의 악명 높은 봉우리 토레의 등반역사다. 등반불가능이란 판정을 받아왔던 이 봉이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돌로미테의 거미’라 불렸던 체잘레 마에스트레의 공인 셈이다. 등정의혹을 증폭시켰던 1959년의 첫 등반과 세계 산악 계를 경악케 했던 1970년 40kg의 컴프레서를 동원한 기상천외한 등반방식과 이 봉을 중심으로 일어난 수많은 알피니스트들의 의혹에 쌓인 행적의 비밀을 이 책이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메스너는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 토레의 비밀을 밝히고 있다.
토레는 피츠로이(Fitz Roy. 3405m) 보다 높이가 낮지만 피츠로이 산군의 맹주로 군림하게된 것은 유별난 기행으로 이름을 떨친 마에스트리 덕택이다. 그는 과연 사기꾼인가 가짜 영웅인가.
불가능의 대명사, 토레
‘토레’는 남미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남부의 피츠 로이 산군에 있는 화강암 봉이다. 우리나라 반대편에 위치한 이 산군은 접근성 때문에 히말라야나 알프스보다 우리들에겐 덜 알려진 곳이다. 1993년부터 20여 년 동안 겨우 네 팀만이 이곳에 갔을 정도다. 1993년 검악 산악회 팀의 피치로이 정상등정. 1999년 정호진과 주영이 남동릉의 마에스트리 루트로 12피치까지 진입 후 기상악화로 철수 2002년 정승권 팀이 마에스트리 루트로 세로토레 정상에 섰고, 2012년 한국산악회 여성 팀(대장. 이명희)의 피치로이 등정이 전부다.
피츠 로이 산군은 고도가 3,000미터 정도지만 높이보다 더한 어려움은 파타고니아 지역의 자연환경 탓이다. 극심한 추위. 화강암 벽에 얼어붙은 박빙(薄氷.얇은 얼음 막). 얼음버섯으로 덮인 정상능선. 가혹한 폭풍설이 수시로 몰아치는 환경 때문에 토레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봉 가운데 하나로 손꼽혀왔다. 사실상 1952년 까지는 등반 불가능이라는 판정을 받아왔기 때문에 등산가들은 더욱 이 봉을 주목하게 됐으며, 첨예한 등반에 굶주리고 있던 등반가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위해 더 없이 좋은 시험의 무대로 생각했다. 피츠 로이 산군의 주역이 피츠 로이와 토레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두 봉우리는 유난히 돋보이는 침봉으로 서로 5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데, 피츠 로이가 토레보다 400여 미터 높지만 등반 난이도로 보면 토레가 당연히 한수 위다. 이것은 피츠 로이가 1952년 프랑스 원정대에 의해 초등되고, 토레는 그 뒤 20여 년이 지나도록 미답 봉으로 남아있었던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다. 1952년 리오넬 테레이는 피치로이를 오르면서 토레를 바라보고 등반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그 첫인상을 말한 적이 있다. 또한 그는 피츠로이 원정보고서에서“우리는 토레를 보았다. 그것은 거의 등반이 불가능한 것처럼 거대한 기둥으로 홀로 서있었다”고 썼으며, “많은 원정대가 이 산의 비인간적인 분위기로 인해 녹초가 되었고, 힘이 빠져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다”고했다. 사실 오랫동안 토레는 낮지만 보다 어려운 ‘불가능한 산’의 대명사처럼 되어 왔다.
초등을 증명하기 위한 기상천외한 재등(再登)
‘돌로미테의 거미’로 불리던 유능한 등반가 마에스트리는 1959년 처음으로 이 봉에 올랐다고 했다. 그러나 함께 등반한 토니 에거는 눈사태로 실종되었고 어디에도 초등의 증거는 없었다. 이후 토레를 향한 도전은 계속 되었고, 마에스트리의 등정 의혹은 커져만 갔다. 1970년 12월 마에스트리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다시 토레를 오른다. 그는 모터와 컴프레서를 이용하여 100cm 간격으로 자그만 치 350개에 달하는 볼트를 박았는데 그는 등반가라기보다는 건설노동자처럼 등반하면서 정상아래 얼음버섯 밑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증명하고 만다. 그는 1959년의 초등을 증명하기위해 재등(再登)을 했지만 초등루트가 아닌 다른 길로 등반을 해서 초등을 증명하려고 했다. 알피니즘 역사상 다른 길로 올라 초등을 증명한 일은 없었다.
문제는 컴프레서를 쓴 등반방식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1970년 마에스트리의 등반이 1959년의 등정을 증명하려는데 있었다. 그간 자신을 향한 초등을 의심하는 자들에 대한 세상의 비난을 해소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당시의 초등 루트로 다시 올랐어야 했는데 마에스트리는 새로운 루트를 엉뚱한 방법으로 가다 실패한 것이다.
마에스트리는 1971년 컴프레서 등반사건으로 하루아침에 명성을 날려버렸다.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마에스트리가 토레를 오르기 전 까지 그는 돌로미테에서는 자유등반의 달인으로 명성을 떨쳤던 등반가였다. 당시 돌로미테에서 가장 어려웠던 마르몰라다 남서벽의 ‘졸다’ 루트를 단독으로 등반했을 때 다른 등반가들은 경탄했고, 크로존 디브렌타의 비아델 기드 에서도 로프를 쓰지 않고 단독으로 하강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그의 명성은 오늘날 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그의 등반동작은 말 그대로 돌로미테의 거미였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의 신문기자이자 작가인 디노 뿌짜티는 마에스트리의 남다른 점은 “자유롭게 등반하고 다시 내려온다.”는 기본방침을 엄격하게 지키며 행동한 사람이다. 그의 등반기술은 우리시대의 위대한 거장의 한 사람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으며, 극도로 어려운 벽을 자유등반으로 오를 수 있는 등반가인 그와 비교될만한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처럼 뛰어난 마에스트리가 왜 어처구니없는 등반을 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다.
1954년 이탈리아 K2 초등원정대에서 동료의 배신으로 좌절을 겪었던 발터 보나티와 원정대 선발과정에서 위궤양으로 불명예스럽게 탈락한 마에스트리와의 반목관계도 흥미로운 읽을거리다.
피치로이 산군의 등반사가 국내에서 번역된 것은 이 책이 최초다. 팩트 중심으로 엮어진 책은 역사교재를 읽는 것처럼 따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세계대전 후 알피니즘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던 시기에 한 시대를 앞서가며 세계 등산 계를 주도했던 낯익은 등반가들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어 흥미를 더 해준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모리스 에르조그. 헤르만 불. 체사레 마에스트리. 토니 에거. 카시미로 페라리. 리오넬 테레이. 리카르도 카신. 안드레 헤크마이어. 발터 보나티. 조 브라운. 돈 윌란스. 장 쿠지. 가스통 레뷔파. 루이 라슈날. 기도 마뇬. 알렉산더 후버. 짐 브리드웰. 마크 트와이드. 워런 하딩. 콤파뇨니와 라체델리. 파울 프로이스 등 기라성 같은 알피니스트들이 이 책의 조역내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1971년 겨울. 지구의 반대편 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이 책을 읽어보면 안다. 무더운 여름밤 이 책을 손에 쥔다면 파타고니아의 폭풍설이 무더위를 식혀줄 것이라 믿고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라인홀트 메스너가 쓰고 김영도가 옮겼으며 ‘하루 재 클럽’의 변기태가 펴냈다. 발행인 변기태가 그동안 열망해오던 꿈은 자신이 직접 산악관련도서를 펴내는 일이었다. 이제 그 꿈을 실현하는 첫행보를 내디딘 그에게 격려의 박수라도 보내야하겠다. ‘하루 재’는 인수봉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다. 하루 재에 올라 인수봉의 높이를 넘어설 만큼 책의 높이를 쌓아나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