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육모정 지명 유래가 된 사기막골의 육모정과
북한산 사기막골 조선시대 별업의 건물 구조에 대하여
글: 조장빈
북한산 동북쪽에 ‘육모정고개’라는 지명이 있다. 육모정 고개에서 서쪽으로 내리면 사기막골로 군부대(출입금지 지역)가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능성 구씨 집안의 선영으로 부대가 들어서 이전에, 근대에 조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옥과 육각형의 작은 정자가 있었고 이 정자가 지명유래가 된 육모정이다.
가옥과 육모정이 자리한 지역은, 영봉과 인수봉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합쳐져 너른 반석을 흘러 폭포를 이루고 있는데, 육모정은 반석의 서쪽 끝으로 정방형의 바위 위에 놓인 작은 육각형의 정자이다. 현재, 육각형의 시멘트 몰타르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육모정의 사진을 보면 평평한 바위 위에 육각형의 돌로 주추를 세우고 그 위에 원형의 기둥을 놓았고 지붕을 씌운 개방형의 정자로 양 계곡 물이 폭포를 이루는 못과 반석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다.
근대 화가 구본웅은 이곳에 화실이 있었다. 그는 인왕산 자락에 살며 시인 이상과의 우정이 널려 알려졌는데, 그의 호가 ‘서산(西山)’인 것은 인왕산 뿐만 아니라 북한산 사기막골도 조선시대 ‘西山’으로 불리워 중의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작품에 화강암 산을 보자면, 인왕산 자락도 그렇고 근교산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곳 화실에 바라본 북한산 인수봉의 느낌도 묻어난다.
1960년대 후반의 육모정과 능성 구씨 집안의 가옥
(촬영: 김원식(산비둘기산악회), 사진제공: 산악인 유학재)
이곳은 조선후기 구시경의 서산정사, 이중환 집안의 별서 그리고 홍석보, 홍상한의 와운루와 농월루 별업이 있었으며, 근대에 다시 구시경의 후손들이 차지하고 1960대까지 거처하였다. 조선 후기 별서·별업터로서 원형 경관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며 당시 근기 유상처로서 많은 시와 글이 전하고 있어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조선의 문화공간’이다. 이전 소개글에 이어 별서와 구씨 가옥의 건물 구조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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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정배석 정자 |
서산정사 |
와운루 |
농월루 |
구씨 가옥 |
육모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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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정배석 위 |
폐사지 입구, 청담 구가원 바위글씨 암벽 서쪽 |
산경 위 |
와운루 북쪽으로 농월헌이라고도 함 |
농월루, 와운루 터에 2실 |
반선대 서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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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
17C |
1659년 |
1702년 |
1733년 이전 |
근대 |
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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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 |
별서의 정자 |
별서, 독서당 |
별업의 정자 |
별업의 내실,정자, 내사로 온돌과 취사, 종들의 숙소 |
별장의 숙소 |
별장의 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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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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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정사(우암서) |
누각 북동쪽 면에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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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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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및 구조 |
1자형의 사각 정자로 남동향. 정배석 위의 원형 주추 위에 기둥을 세운 것으로 추정. |
남향(인수봉과 마주한)의 초당으로 정원과 연못을 갖춤. |
서북향이며 “ㄱ”자형으로 황토칠(붉은빛)을 하였다. 용마루와 서까래) 아래로 터진 4칸으로, 내실 3칸, 대청1칸, 누마루(난간)가 있고 팔작지붕이고 실의 끝부분 대청이 있고 지붕은 맞배지붕에 평평한 형태로 덧대었다. |
서북향이며 “ㄱ”자형으로 백토칠(흰빛)을 하였다. 용마루와 서까래) 아래로 5칸으로, 내실 4칸, 누마루(난간)가 있고 팔작지붕이다. |
농월루터의 가옥은 한옥 4칸으로 서북향의 팔작지붕이다. 와운루터의 가옥은 팔작지붕의 한옥으로 북향이며, 구본웅 화실로 추정된다. |
정방형의 바위위에 육각형의주춧돌을 놓고 원형의 기둥을 세워 사각형의 판목을 덮었다. 육각형 정자로 한변이 1.3~1.5미터의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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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운루 소월담 주변의 육모정터(원안의 윗쪽바위)와 이중환의 별서 정자가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정배석이다.
(이 사진은 2020년 (사)한국산서회와 북한산국립공원 북한산 분소와 공동으로 실시한 북한산 문화유산 조사 때 촬영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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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송석호·조장빈·심우경, 2018, 「북한산 청담동 별업정원 복원을 위한 연구」, 경기문화재단 '2018 북한산성 연구보존 및 활성화공모사업'
*소중한 문화유산인, 조선 후기 별서의 원형 추정에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 사진과 육모정 등의 사진을 제공해 주신 산악인 유학재 선배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