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말밑
충북학생교육문화원에서 내는 <한글사랑>(2013. 8. 10. 제62호, 7쪽)에 여름의 맡밑을 밝힌 게 있다.
여름은 왜 여름이 되었을까? 여름은 ‘날(日)’에서 나왔다고 본다. 옛날에는 하루를 셀 때 가장 핵심적인 것은 태양이 떠있느냐가 문제였다. 그래서 ‘날’이 곧 태양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여름은 바로 그 태양의 계절이다.
날이>널>너름>녀름>여름
어라, 내가 아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출처로 밝힌 곳은 네이버 블로그 ‘리딩멘토’다. 헛갈리거나 모를 때는 알만한 데 물어보는 게 가장 쉽다. 지난 8월 20일, 국립국어원 누리집에 가서 물었다.
철을 가리키는 ‘여름’의 말밑이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때 <용비어천가>를 공부할 때, “불휘 기픈 남ᄀᆞᆫ ᄇᆞᄅᆞ매 아니 뮐ᄊᆡ 곶 됴코 여름 하ᄂᆞ니에서 ‘여름’, 곧 ‘열매’를 가리키는 말에서 나왔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느 잡지에 보니 ‘날(日)’에 나왔다고 하면서, “날이>널>너름>녀름>여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름의 말밑이 무엇인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하루가 지났다. 누리집에 가보니 답변이 올라있다. 여름의 말밑을 다음과 같이 밝혀놓았다.
‘여름’은 15세기에 ‘녀름’(釋譜詳節 9:34)으로 나온다. ‘녀름’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물론 지금까지 토이기어 ‘yaz[夏]’에서 온 것으로 보기도 하고, ‘날[日]’과 동일한 기원을 갖고 있는 ‘널’에서 온 것으로 보기도 하나 크게 신빙성이 없다. 15세기의 ‘녀름’은 어두의 ‘ㄴ’이 탈락하여 ‘여름’(敬信錄諺解 58)으로 변화하고, 또 비어두의 ‘ㅡ’와 ‘ㆍ’의 혼기에 의해서 ‘여’도 확인된다. ‘녀름’이 ‘여름’으로 변함으로써 ‘實’의 ‘여름’과 동음 관계에 놓이게 된다. ‘實’의 ‘여름’이 ‘열>열매’라는 단어에 밀려나 사라진 것은 ‘夏’의 ‘여름’과 동음 관계를 맺음으로써 유의 경쟁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동음 관계에 있는 유의어는 유의 경쟁에서 불리한 것이 일반적이다.
고맙긴 한데, ‘혼기’, ‘유의 경쟁’, ‘어두’, ‘비어두’ 같은 말이 참 어렵다. 국립국어원 누리집에서 볼 수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혼기’를 찾으면 없는 말이다. 짐작컨대, ‘혼기’는 ‘섞어 쓴다’는 뜻으로 ‘여름’과 ‘여ᄅᆞᆷ’을 다 썼다는 말이겠고, 유의 경쟁은 소리가 같은 두 낱말(여름/열ᄆᆡ)이 경쟁하여 ‘여름(夏)’은 남고 ‘여름(實)’은 ‘여름(夏)’와 ‘열ᄆᆡ’에 밀려났다는 말일 것으로 짐작해 본다. ‘어두’과 ‘비어두’는 ‘앞엣말’, ‘뒤엣말’처럼 썼으면 어땠을까.
자연스런 귀결로, 열매로서 ‘여름’과 철을 뜻하는 ‘녀름’이 서로 다른 말로, 토이기어 ‘yaz’나 해를 뜻하는 ‘날(日)’에서 온 말로 주장하기도 하지만, 봄은 꽃을 본다고 해서 ‘봄’이고 여름은 꽃이 ‘열매’를 맺으니 ‘여름’이고, 가을은 거두어들인다는 ‘갓’(갓다: 거두어들이다)에서, 겨울은 집에 있는다는 ‘겨슬’에서 보는 게 옳지 않을까. 더욱이 농사를 ‘녀름짓다’라고 하고 농사꾼을 ‘녀름지시아비’라 했던 옛말로 보면 농경 문화와 관련지어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한 가지 더, 교육기관에서 내는 책이나 잡지는 다른 어떤 곳에서 내는 것보다 우리 말 쓰기에 엄격하고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 (2013.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