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한자 병기가 과연 아이들을 위한 일인가?
<1차 교육과정기 초등학교 교과서 <사회생활과 5학년 소용> 1949년 / <국어 6학년> 1956년, 출처: 사이버교과서박물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도대체 쉬운 글자를 두고 자꾸 어려운 글자를 가져다 쓰자는 소리를 떠벌릴까? 초등학생이 날마다 볼 교과서에 한자를 나란히 쓰자는 소리도 억장 무너지지만, 더 기막힐 노릇은 그 맨 앞에 교육부가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보다도 먼저 아이 편에 서서 생각해야할 곳이 교육부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괴롭히고 터무니없는 수치로 진실을 가리는 일을 일삼는다. 교육기본법 제2조를 배반하여 탐욕스런 자본을 편들고 반민주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어기댄다.
지난해 9월 일이다. 교육부는 <2015 초·중등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을 발표하며, “한자교육 활성화를 위해 초·중·고 학교급별 한자 수를 제시하고 교과서에 한자 병기의 확대를 검토한다”고 밝힌다. 이어 올 4월 29일 교육부는 <학교현장, 국가·사회적 요구사항 조사 연구>를 근거로 들면서 “초·중·고 교사 77.5% 및 학부모 83%가 초등교과서 한자병기에 긍정”한다고 밝힌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해야 한다는 사회 요구가 이처럼 크며 한자 병기가 어휘력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거짓소리를 늘어놓는다.
우리 사회 요구가 정말 그러한가? 이는 올 2월 한길리서치가 조사한 <초등교과서 한자병기에 대한 초등교사 조사 결과>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초등교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길리서치 조사에서는 한자병기 긍정 의견은 33.6%였으며 부정 의견은 65.9%나 됐다. 그런데 많은 교사와 학부모가 열에 일고여덟은 마치 한자 병기를 바라는 것처럼 떠벌린 데는 교육부가 답변 가운데 ‘보통’을 ‘긍정’에 더해서 발표했기 때문이다. ‘보통’에 답한 의견을 빼면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를 바라는 비율은 교사와 학부모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각각 47.0%, 48.5%로 크게 줄어든다. 설문조사에서 ‘보통’은 긍정인가, 부정인가? ‘이도저도 아니다’라는 말이다. 거꾸로 보통에 답한 의견을 부정 쪽에 더했더라면 어땠을까?
더욱이 한자 병기는 새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창의융합형 인재를 기르고 학습 부담을 줄이는 일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오히려 주는 대로 고분고분 받아들이는 체제순응형 사람을 기르는 데 기여할 뿐이다. 아무리 한자 교육 방법을 새롭게 한다고 해도 한자든 일본어든 우리 말이든 글자는 외울 수밖에 없다. 다만 한글은 홀소리와 닿소리를 더해 소리가 만들어지지만 한자는 그 수많은 한자의 소리와 뜻을 생짜로 외워야만 한다. 흔히 쓰는 한자만도 3천 개쯤 된다고 한다. 가장 최근 중국에서 나온 <한어대자전>에는 5만 4천여 자가 실렸다지만 사실 어느 누구도 한자가 과연 몇 글자나 되는지 모른다.
이런 걱정에 교육부는 사교육이 일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초등학생 수준의 적정 한자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라고 했지만 영어교육 도입에서 이미 보지 않았는가. 지난해 초등학교 98%인 5809곳에서 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에 한자를 가르친다는 헛소리도 하는데 이 수치가 과연 어떻게 나온 것인지 궁금하다. 교육과학기술부 고시(2009-41)에 따른 <창의적 체험 활동과 해설>에 보면, 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에 다루어야 할 범교과 주제는 자그마치 38가지나 되고 거기엔 녹색, 물보호, 안전, 반부패청렴, 안전재해대비, 성, 문화예술, 출산고령사회대비, 경제, 논술, 지적재산권, 미디어, 국제이해, 다문화교육도 들어있다. 교과시간 또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살짝 입에 올린 것으로 과연 가르쳤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아도 이미 우리 아이들은 피 말리는 경쟁과 학업 스트레스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제 그 어깨 위에 한자의 짐을 지워 사교육과 선행학습 시장에 먹잇감으로 아이들을 내몰겠다니 이 얼마나 잔혹한 짓인가. 우리가 애써서 교육을 하려는 까닭이 무엇인가? 아이들을 잘 키우자는 데 있다. 이는 교육기본법 제2조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교육은 ‘인격’과 ‘자주적 생활능력’, ‘민주시민의 자질’을 키우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그래서 묻고 싶다. 역사를 거꾸로 돌려 한자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가르고, 그렇잖아도 힘든 아이들에게 한자의 짐을 더 지우는 게 과연 우리 교육이 바라는 바인가? 과연 이런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