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인데 우리말같지 않은 글
≪읽기 6-1≫를 펴보니 <꿈을 찍는 사진관>이 나온다. 어릴 적 나는 이 이야기를 학교 도서실에서 앉아 읽었다. 도서실이라고 했지만 문을 꼭 잠가 놓았다가 점심시간에만 잠깐씩 열곤 했다. 하루는 거기에 구경 삼아 들어갔다가 그 이야기를 꺼내 읽었다. 어린 마음에도 꿈을 찍는 사진기가 있다면 정말 재미있겠나, 했다.
그때 읽은 기억에 나서 반가운 마음에 읽었다. 그런데 ‘것’이라는 말을 버릇처럼 써서 한 문장 걸러 한 번꼴로 나온다. 아래는 ≪읽기 6-1≫10쪽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것’이 몇 번이나 나오는지 한번 헤아려 보자.
따스한 봄볕은 나를 자꾸 밖으로 꾀어내는 ①것이었습니다.
어젯밤만 해도 내일은 일요일이니 어디 나가지 말고, 방에 꾹 틀어박혀 책이라도 읽으리라고 생각하였던 ②것이, 정작 조반을 먹고 나니 오늘은 유달리 날씨가 따뜻하였습니다.
나는 스케치북과 그림물감을 가지고 뒷산을 향하여 올라갔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굉장히 그림을 잘 그리거나 그림에 취미를 가진 ③것도 아닙니다. 그저 빈손으로 가기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들고 앉아 그 따사한 봄볕에 읽는 ④것은 한층 더 싱그러울 ⑤것 같았습니다.
봄을 그리려고 산에 오른 이 서투른 화가는 좀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는 ⑥것보다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⑦것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내 눈이 맞은편 산허리에 갔을 때, 거기에는 활짝 핀 꽃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다시피 ‘꾀어 냈습니다’ 이렇게 쓸 말인데 ‘꾀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하고 썼다. 왜 그럴까? 다름 아니라 매인이름씨 ‘것’을 써서 우리가 말로 할 때는 흔치 않은 명사절을 넣은 문장으로 쓴 때문이지 싶다. 우리 말은 그림씨와 움직씨가 유달리 발달한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 말은 그림씨나 움직씨로 풀어 써야 우리 말다워진다. 서정오 선생님은 ≪옛이야기 되살리기≫에서, ‘우리 입말의 성질 가운데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을 푸는 꼴이 많이 쓰인다’(76쪽)는 점을 들었다. “바탕말(체언) 앞에 여러 가지 말이 붙어서 뜻을 매기는 꼴을 ‘꾸미는 꼴’이라고 하고, 바탕말 뒤에서 여러 가지 말이 딸려서 뜻을 매기는 것을 ‘푸는 꼴’”이라고 했다.
상식으로 생각해 보아도 영어는 표나게 이름씨 중심 말이다. 자연스레 이름씨나 이름씨 꼴로 쓴 글이 많다. 이름씨 중심이니까 이름씨를 꾸미는 말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만약에 학교에서 선생과 아이가 만나 인사할 때, 우리 말로는 ‘안녕하세요?’ 하지만, 영어로는 ‘좋은 아침(good morning)’하지 않는가. 임자말 ‘아침(morning)’ 앞에 꾸미는 말 ‘좋은(good)’이 붙어 꾸미는 꼴이다.
다시 <꿈을 찍는 사진관>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글이 귀에 거슬리고 입에 거치적거리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말하려고 할 때 우리 말로는 이음씨끝을 써서 상황을 차례로 풀어서 ‘이어진 문장’으로 만들지만, 영어는 꾸미는 말을 써서 ‘안은 문장’으로 만든다. 다음 보기를 보자.
봄을 그리려고 산에 오른 이 서투른 화가는 좀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① 화가는 봄 (풍경)을 그리려고 산에 올랐다.
→② 이 화가는 (그림 그리기가) 서툴다.
→③ 화가는 좀처럼 그리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밑금 그은 데가 문장 성분을 따지자면 임자말인 셈이다. 뭔가 있는 듯 보여도 사실 ‘화가’가 임자말이고, ‘봄을 그리려고 산에 오른 이 서투른’은 ‘화가’를 꾸미는 말이다. 그래서 읽다보면 긴가민가해서 한 번 더 읽기 일쑤다. 이제 ①, ②, ③ 세 문장을 한 문장으로 만들 때 우리 말 질서, 말하자면 꾸미는 꼴이 아니라 풀어내는 꼴로 고쳐 써 보면 어떻게 될까?
이 서투른 화가는 봄 (풍경)을 그리려고 산에 올랐지만 좀처럼 그림 그리기를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앞에서 보기로 든 교과서 글에서 안은 문장을 죄다 풀어서 이어진 문장으로 시험 삼아 고쳐 써 보았다. 교과서에 나온 글과 서로 견주어 보고 말맛이 어떤가 다른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따뜻한 봄볕은 자꾸만 나를 바깥으로 꾀어냈습니다.
어젯밤만 해도 내일은 일요일이니 어디 나가지 말고 방에 꾹 틀어박혀 책이라도 읽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조반을 먹고 나니 오늘 날씨가 유달리 따뜻하였습니다.
나는 스케치북과 그림물감을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굉장히 그림을 잘 그리거나 그리기에 취미가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빈손으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책을 들고 앉아 그 따사한 봄볕에서 읽으면 한층 더 싱그러울 것 같았습니다.
이 서투른 화가는 봄 (풍경)을 그리려고 산에 올랐지만 좀처럼 그릴 수 없었습니다. 가만히 앉아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내 눈이 맞은편 산허리에서 갔을 때, 거기에는 활짝 핀 꽃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아무튼 내 보기에는 이렇게 풀어내는 꼴로 써놓으면 훨씬 술술 잘 읽히고 한결 자연스럽다. 여러분은 어떤가? 그 차이를 모르겠다면 귀로 들어 보라. 분명히 말맛이 다를 것이다.
군소리 같지만, 이 글에서 ‘뒷산을 향하여’는 ‘뒷산으로’로 다듬으면 더 좋겠다. ‘향하여’는 한자말 ‘향’에 ‘하다’를 끌어 붙여 만든 움직씨인데 요즘은 아이들도 곧잘 이 말을 따라서 쓴다. 이를테면 ‘집에 갔다’ 또는 ‘집으로 갔다’를 ‘집을 향하여 갔다’나 ‘집으로 향했다’고 쓴다. ‘~을 향하여’는 ‘~으로’로나 ‘~에’로 쓰는 게 훨씬 쉽고 분명하다.
지금까지 <꿈을 찍는 사진관> 가운데 앞부분 글을 살펴보았다. 우리 말을 좀먹는 한자말이나 들온말이 없는데 거북한 까닭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그림씨나 움직씨를 풀이말로 쓰는 우리 말 질서보다는 꾸미고 꾸밈을 받는 영어 말법에 가까운 문장으로 썼기 때문이지 싶다. 더욱이 이 글은 동화가 아닌가. 동화는 아이들한테 주는 문학인 까닭에 그 어떤 글보다도 우리 말법에 한층 더 엄격해야 한다. 말을 잘못 써서는 그 구실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크나큰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2011. 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