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착기와 굴삭기
아홉 살 난 아이가 그림을 그려놓고 거기에 '굴삭기'하고 적어놓았습니다. 이렇게 생긴 기계차를 보고 우리는 '굴삭기', '굴착기', '포클레인'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게 맞는 말인지 아주 헛갈립니다.
먼저 포클레인은 프랑스 포클레인(poclian)사가 처음 만든 상품 이름인데, 이게 입말로 굳어진 것이지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삽차' 하고 나옵니다. '삽차' 하니까 느낌이 좀 다릅니다. 흙이나 모래를 퍼담는 바가지를 '버킷'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삽'이라고 봐야 할까요?
그 다음 '굴삭기'를 찾아보면, '굴착기, '굴착기'로 순화'라고 나왔습니다. 굴삭기(掘削機) 말고 '굴착기(掘鑿機)'로 써야 한다는 말이지요. 굴착기는 `땅이나 암석 따위를 파거나, 파낸 것을 처리하는 기계를 통틀어 이르는 말. 토사 암석 따위를 채굴하는 기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풀어놓았습니다. 굴삭기는 잘못이라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단순히 굴삭기를 굴착기의 잘못이라고 해서 끝날 일은 아닙니다. 사전에는 그렇게 써놓았지만, 일상에서는 굴삭기를 더 자주 씁니다. 그런 기계를 만들어내는 기업이나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쓰는 말은 모조리 '굴삭기'입니다. 내가 알기로, 굴삭기는 뚫을 착(鑿)이라는 한자가 어려워 일본 사람들이 소리가 같은 한자 '깎을 삭(削)'으로 바꾸어 쓴 것이 그대로 우리말 속에 들어와 굳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까닭이라면 마땅히 '굴삭기'보다는 '굴착기'로 쓰는 게 옳습니다. 그래도 미심쩍은 마음이 남습니다. 굴착기를 땅이나 암석 따위를 파거나, 파낸 것을 처리하는 기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한 말이니까 공사판에서 쓰는 불도저, 그레이더, 로더, 크롤러 드릴 같은 기계도 모두 '굴착기'인 셈입니다. 우리가 흔히 굴착기 또는 굴삭기로 말할 때는 구부러지는 팔 끝에 땅을 파거나 흙, 자갈, 바위 따위를 퍼담는 버킷이 달린 포클레인을 말합니다. 그러니 뭉뚱거려 굴착기로 쓰지 말고 때에 맞게 불도저, 그레이더, 로더, 크롤러 드릴 같은 이름으로 써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