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이라는 말
'남중'하니까 '남자중학교'를 줄인 말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 말은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과학』책에 나오는 말이다. 96쪽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태양은 남쪽에 있을 때 고도가 가장 높습니다. 하루 중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을 때를 남중이라고 하고, 이때의 고도를 태양의 남중고도라고 합니다. 태양의 남중 고도는 낮 12시 30분경, 그림자의 길이가 가장 짧을 때 측정할 수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 2012, 96쪽)
그리고 그 아래쪽에는 ‘태양이 남중할 때’라고 써놓았다. '남중'은 남쪽 한가운데라는 뜻이다. 하지만 '남중하다'하고 풀이말로 쓰는 일이 있는가? 사실 이 말은 우리 말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교과서에는 ‘하루 중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을 때’ 또는 ‘태양이 남쪽에 있을 때’라고 풀어 놓았다. 내가 보기로는 괜히 어렵게 한자말로 쓴 말이요 우리 말을 어지럽게 할 뿐이다. 그냥 ‘해가 가장 높이 떴을 때' 또는 '해가 남쪽 하늘 한가운데 왔을 때'라고 해야 한다. 우리가 해가 남쪽 하늘 한가운데 왔을 때를 가리켜 '해가 남중했다'고 말하는 일이 초등학교 6학년 과학 시간 말고 또 있는가.
이 교과서 글에서 또 궁금한 것은 ‘태양의 남중 고도는 낮 12시 30분경’이라는 부분이다. 흔히 해가 남쪽 하늘에 한가운데 있을 때는 낮 12시쯤으로 생각한다. 해는 하루에 한 번씩 어김없이 정남쪽 하늘을 지날 수밖에 없고, 우리는 그때를 가리켜 ‘정오’라고 한다. 이는 ‘오시의 한가운데'를 뜻하는데 해가 머리 꼭대기에 와서 그림자가 가장 짧을 때를 말한다. 그래서 밤 12시는 ‘자정’이라고 하여 ‘자시의 한가운데'를 말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과학』책을 찾아보았다. 거기에는 정오를 이렇게 풀어놓았다.
태양이 가장 높이 떠 있을 때를 정오라고 합니다.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 데는 약 24시간이 걸립니다. (교육과학기술부, 2012, 37쪽)
과학자들 말을 빌리면, 해가 남쪽 하늘 한가운데에 있다가 이튿날 다시 남쪽 하늘 한가운데에 오는 데는 꼭 스물네 시간이 아니란다. 그래서 5학년 과학책에도 '약 24시간'이 걸린다고 해놓았다. 지구가 삐딱하게 기울어진 채 하루에 한 바퀴씩 돌면서 동시에 타원 모양으로 태양 주위를 도는 까닭에 하루는 스물네 시간보다 35초 정도 길어지거나 짧아지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정오’에서 날마다 어긋나게 된단다. 크게는 앞뒤로 15분 정도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역마다 해가 남쪽 하늘 꼭 가운데, 그러니까 가장 높이 떴을 때는 다 다르다. 서울은 동경 127° 30′인데 실제로는 11시에서 13시 사이에서 ‘정오’가 되고, 동경 135°(일본 아까이(明石)시)를 기준으로 하면 11시 반에서 오후 1시 반 사이에 정오가 된다. 우리는 1961년부터 동경 135°를 표준시(평균 자오선)로 정해 쓰는데, 시계가 낮 12시를 가리킬 때 정작 해는 서울의 정남쪽 하늘이 아닌, 일본 아까이시 남쪽 하늘에 한가운데에 떠있는 셈이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정오가 32분 뒤쯤이다. 같은 이치로 교과서에서 “하루 중 태양의 고도는 낮 12시 30분경에 가장 높습니다”라는 말은 서울에서만 그렇다는 말이지 다른 지역에서는 틀린 설명이다. 독도(동경 131°)나 강원도 동해시(129°)나 서쪽 백령도(124°)에서 볼 때 태양의 고도는 서울하고는 같은 시각이라도 다 다르다. 경도가 1°씩 달라질 때마다 4분씩 빨라지거나 느려진다. 독도는 12시 16분에, 동해시는 12시 24분에, 서울은 12시 32분에, 백령도는 12시 36분에 해가 남쪽 하늘 한가운데에 오고 그때 해가 가장 높이 떴을 때다.
교과서는 우리가 표준시로 쓰는 동경 135°가 일본 아까이시를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서울을 기준으로 바꿔쓴 것까지는 좋았지만, 서울 말고 다른 지역에서는 맞지 않는 말이다. 이래서 되겠는가. '남중고도'를 제대로 가르칠 요량이라면 '낮 12시 30분경'이라는 말은 빼고, 해가 남쪽 하늘에 한가운데 왔을 때 또는 해가 가장 높이 떠있을 때, 태양의 고도라고 해야 한다.
군말이지만 '측정할 수 있습니다'는 "잴 수 있습니다"로 써야 깨끗한 우리 말이다. 무게를 달아야 하고, 길이나 시간 부피 따위는 재야 하고, 수는 헤아린다고 해야 하는데 말들을 죄다 '측정한다'고만 해서 우리 말을 깡그리 죽인다. (2012. 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