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가진 산이 불러서
문희봉
내가 아는 사람 중의 대부분은 늘 따스한 마음이 가슴에서부터 배어나온다. 자신만이 갖고 있는 향기를 내뿜어 준다. 아마도 그 향기는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좋아한다.
나에게는 어떤 향이 나는가? 자신이 자신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삶이라면 성공한 삶이겠다. 그윽한 향을 발산하는 장미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자기만의 고유한 향을 발산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감추려고, 또는 자신의 몸을 향기롭게 하려고 향수를 뿌린다. 그런 향은 자연의 향이 아니기에 금방 싫증을 느낀다.
인간은 절망과 고통의 밤에 비로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한다. 베개에 눈물을 흘려 본 사람만이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영혼의 향기가 고난 중에 발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희열과 환희 속에서 발산하는 향보다 어려움 속에서 건져 올리는 향이 더욱 진한 빛을 발한다.
나는 자주 산을 찾는다. 그 때마다 산은 나에게 온갖 것을 다 내준다. 한 번도 보상을 바라지 않고 내준다. 천사가 갖고 있는 아름다운 향을 모두 갖고 있는 산이다. 나는 계절을 후각으로 음미한다. 엊그제도 흩어져 내린 낙엽을 밟으며 묘하게 젖어드는 가을냄새를 맡으며 걸었다. 비가 그치고 며칠 지난 뒤라서 밟는 대로 바삭바삭 소리를 냈다. 치마폭 산그림자 따라 바람이 불면 낙엽들이 이리 쏠리고 저리 쏠렸다. 굴러가는 모습도 예뻤다. 가을 산이 각혈을 한다. 토해놓은 슬픔이 가을 산에 불을 지른다. 굴러가면서 내는 소리는 보통의 하모니가 아니었다. 저 낙엽들의 종착역은 어디일까를 생각해보니 재미있었다.
다시 비가 내리고 나면 기온이 급강하하겠다. 그러면 겨울의 알싸한 향을 맡을 것이고, 추운 겨울을 지내고 나면 풋풋한 봄 냄새를 맡을 수 있겠다. 봄마다 되살아나는 가슴 속 푸른 자유도 만끽할 수 있겠다. 잊고 사는 줄 알았던 향기가 이른 봄꽃보다 먼저 작아진 어깨 다독여 겨울을 밀어낼 것이다. 그러다 보면 흐르는 땀과 함께 후끈한 여름 냄새를 맡게 될 것이다. 보문이 떠나가도록 울다 지친 뻐꾹새도 만나고, 더운 여름날 혼자서 수음하고 있는 단풍나무도 만날 것이다.
산 아래를 바라본다. 붉은 잎새들이 뿜어주는 붉은 향, 샛노란 잎새들이 뿜어주는 샛노란 향이 정상을 향하여 살금살금 걸어 올라와 내 후각을 기분 좋게 한다. 환장할 꽃불로 숨막히게 타오르는 단풍은 해마다 향기 머금은 가을꽃으로 타오른다. 세월은 아주 정직함을 나에게 경험시킨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무겁고 답답할 때 산에 오르면 산은 온갖 향기로 나를 붙잡아 놓고 내려가지 못하게 한다. 산에 가면 가면과 가식이 벗겨지고 나 자신과의 솔직한 대화가 가능해진다. 진정한 나를 찾는 기쁨을 누린다. 처음에는 무리하지 않고 한 시간 정도 걷다가, 다음에는 두 시간 정도로 늘려가고, 지금은 서너 시간 정도는 거뜬히 걷는다.
한 달에 한 번은 산악회 차를 타고 멀리도 나간다. 겨울에서 가을까지 계속하여 뿜어주는 산의 향기를 맡는 일에 지금은 익숙해졌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정상에 올라 맡게 되는 그윽한 향 맛은 그 어느 표현으로도 대신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전국의 산이란 산은 거의 섭렵한 것 같다. 고생이라 생각하면 고생이지만 산을 정복하고 나서 느끼는 희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향기를 맡는 일도 좋지만 그렇게 하다보니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되고, 건강에도 자신이 붙었다. 산은 하나의 오랜 친구이자 내 주치의이다. 컨디션이 안 좋다 싶으면 이제는 병원을 찾는 대신 계절 냄새를 맡으러 나는 산으로 간다. 걸으며 산들이 들려주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시 암송도 하고, 하루를 되돌아보는 여유도 갖게 된다. 몸과 마음이 정갈해지는 그 느낌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실로 간단하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요즘은 황금의 계절이다. 오늘도 시간을 내서 산에 오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