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로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
문희봉
작은 몸짓은 드러나지 않는다. 까치발을 선다고, 굽 높은 하이힐을 신는다고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과욕은 신물을 거둔다 했다. 행복이 뭔가. 남 앞에 군림하면 생기는 것인가. 아니지 않은가.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는 것이 좋다. 상대방의 코피를 터뜨려야만 이기는 것인가. 떳떳하게 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좋다. 항상 겸손해야 하며, 욕심 부리지 않고, 더러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대나무 같은 유연성을 지닌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창해의 일속 같은 미약한 존재가 인간이다.
꼭 이기려 하는 사람을 만나면 피곤하다. 두 번 다시 상대하고 싶지 않다. 사사건건 일일이 따지고, 이 말 저 말 여기저기 옮기고, 식사도 같이하는 걸 싫어해 구석 자리에서 혼자 먹고, 싸움을 해도 사생결단하려 하고, 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오기 부리고, 구질구질하게 변명이나 늘어놓는 이런 사람 말이다. 한 해 동안 나무의 수액과 영양소를 공급받아 싱싱하게 피어난 잎새도 화려한 여름을 풍미하고 가는 시한부 삶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데 하물며 인간이 그걸 모른대서야.
내가 가졌던 뜻과 터뜨렸던 말과 부렸던 행동이 오늘 따라 뜨물에 담갔다가 꺼내놓은 개대가리처럼 보인다면 안 되겠다. 남의 훌륭함에 감탄하고 자신의 미흡함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어이 아니 좋으랴. 행장 하나 챙기지 않고 홀가분한 몸으로 길 떠나는 낙엽의 고귀한 철학을 배울 일이다.
나이를 먹었어도 팔팔하게 살려 노력하고, 100%가 아니고 70%로도 만족하고, 자기 수입의 10%는, 아니 1%는 남을 위해 베풀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상대의 조그마한 잘못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상처를 입히고야 마는 장애를 갖고 있고, 간사한 칭찬에 주제를 모르고 방자한 마음을 가지는 장애를 갖고 있다면 불쌍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달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늙지 않는다. 새벽 종소리는 불교 최고의 이상인 보리를 성취케 한다. 날씨는 하늘이 만들고, 달력은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계곡을 걸으면서 모나면 모난 대로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어디든 쓸모가 있음을 제 모습으로 웅변해주는 돌을 만나면 경지에 오른 인격자를 만난 듯한 행복감에 젖어든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는 것만으로 가을의 수확을 약속받는 것은 아니다. 제 때에 잡초 뽑고 김 매주며 때때로 약도 쳐주고 자양분이 될 수 있는 거름을 주는 등 갖은 정성을 다 쏟아야만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한껏 작아짐으로써 세상은 밝아지고 저마다 빛깔을 내세우지 않으니 평화로운 것이다. 외로운 갈매기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바다와 하늘, 떠도는 바람도 쉬어가게 하는 해변, 그들의 포근한 베개가 되어주고, 모성의 품이 되어주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거센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고 메마른 가지에 붙어 있는 굴참나무 잎새가 어쩌면 우리 인생의 억척스런 삶을 대변해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 하루 삶 속에서 기분 좋은 시간이 길어야 행복한 것이다.
내 곁에 지천인 대추나무가 다망다망한 전설이라도 피워낼 것만 같은 오늘이다. 온갖 풀과 나무들이 공생하는 산속에는 초목의 빛깔과 모습들이 기묘한 자태를 선보인다. 의연히 청록색 잎새를 자랑하며 서 있는 소나무는 군자답게 산을 호령하며 천수백화를 거느린다. 그들이 욕심을 부리는가? 마음을 비우고 나니 저런 풍요를 선물로 받는 것이 아닌가? 감탄이 삶의 동력이 된다면 좋겠다.
실체는 찾을 수 없으나 제 몸에 깃든 녹처럼 다시 피어나는 관능의 노도의 해일을 어찌 처리해야 할까 고민 좀 해봐야겠다. 혼탁해진 마음의 뜰을 비질하듯 오늘도 마당을 쓸고 싶다. 마음속에 덕지덕지 더러운 모습으로 붙어 있는 안일과 나태라는 병을 치유하기 위해 오늘은 내 주치의인 산에 가보고 싶다. 마음이 움직이면 나도 모르게 하이파이브를 외치게 된다.
소유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존재로 행복함을 느낄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돈에 너무 욕심을 두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