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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기타

여백에 그리는 그림

작성자하정 문희봉|작성시간26.06.21|조회수13 목록 댓글 0

여백에 그리는 그림

 

문희봉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찬 새해 첫머리다. 청청한 소나무들의 가지가 설화를 안고 휘휘 늘어졌다. 꽃잎보다 가벼운 눈송이들이 한 데 모여 꼿꼿한 나무의 등걸을 부드러이 길들인다. 남을 감화시키는 슬기는 이 눈만이 가진 속성이다. 기암괴석의 암벽지대를 목화밭의 평화로 바꾸어 놓았다. 구름 위에 솟은 산마루도 인자한 노옹(老翁)의 웃음을 짓고 있다. 거기에 흑돼지 한 마리 자리 굳게 지키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나도 눈발 속에 서 있는 한 그루 푸른 소나무처럼 가슴속에 그려지는 한 장의 수채화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세상의 온갖 잡다한 것들 모두 지워버리고 의연한 모습으로 서 있는 백색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여기에 새해 구상을 적고 그리기만 하면 된다.

강도 어젯밤부터 순백의 눈을 제 몸으로 직접 받아들이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했다. 눈 내린 하늘이 헝클어진 세상을 정리하고 있다. 정말 깨끗한 세상이다. 이 계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흥이다.

차고 맑은 호수처럼 미련 없이 잎을 버린 깨끗한 겨울나무의 베풂을 본다. 11월부터 가지 끝에 누드 차림으로 매달려 까치들을 맞기 위한 살신성인도 본다. 가지마다 안고 있는 상고대가 새해를 더욱 빛나게 장식한다.

12월이 뉘우치고 돌아가는 탕자(蕩子)의 계절이라면 1월은 다시 시작하는 환희로 기쁨을 주는 계절이다. 소복 단장한 북한산이 고향처럼 포근하고, 희끗희끗 잔설을 이고 선 소나무들은 어르신의 자태처럼 근엄하게 보여 갑자기 옷깃을 여미게 한다.

송죽은 백설 속에서 더욱 푸르다 했던가. 송죽과 백설의 협치가 만들어내는 조화된 화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순수한 사상을 내 몸에 주입하고 싶다.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고 깨달음이 없다면 그는 발전 가능성이 약한 사람이다. 자기를 버리고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 연잎이 적당량의 빗물을 받아놓았다가 일정량 이상이 되면 미련 없이 비워버리는 것처럼 그 지혜를 배울 일이다. 그 지혜가 나를 살지게 할 것이니까.

서울 시내가 흰 눈에 덮여 바다가 낳은 하얀 달걀처럼 보이는 오늘이다. 돈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 했다. 새해 첫 달에 마음을 깨끗하게 비울 일이다. 욕심껏 호주머니 채워 놓으면 일 년 열두 달이 정말 힘든다. 가지마다 눈꽃이 축복처럼 피어나는 세상을 바라보며 하얗게 하얗게 잠이 든 고요를 마음 가득 채워 넣는다면 앞길은 탄탄할 수밖에 없다.

새해에 내가 할 일은 순백의 여백에 내가 생각하는 그림을 아름답게 그려 넣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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