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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기타

3월의 수채화, 꽃인가 물감인가?

작성자하정 문희봉|작성시간26.06.23|조회수15 목록 댓글 0

3월의 수채화, 꽃인가 물감인가?

 

문희봉

 

새잎이 돋기 시작한 가로수가 봄비를 맞고 싱싱해 보이는 오늘이다. 풀밭에 개구리 눈 뜨는 소리, 논두렁에 민들레 숨 쉬는 소리, 평화로운 산 마을에 목련 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오늘이다. 3월이 꼭 네 살 손자 키 만한 모습으로 옛 친구의 발걸음을 흉내 내면서 성큼성큼 걸어왔다. 3월은 싱싱하다. 청정한 산과 바다 내음이 그립다. 나는 이 계절에 맑고 깨끗한 개울에 마음을 담근다.

씨 뿌린 이도, 돌보는 이도 없는 초원에 야생화가 곱게 피었다. 거센 눈비, 강풍을 이겨내고 고운 빛깔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송사리 떼 연주하는 싱그러운 봄의 왈츠, 목장의 양 떼들, 몽실몽실 꽃구름 되어 떠갈 제, 가진 것 없어도 넉넉한 소녀의 미소, 유채꽃 노란 나비 되어 폴폴 갯바람 헤쳐 날고 있다.

3월의 남풍이 개나리와 진달래를 어루만지고 지나는 오후, 햇살이 싹트려는 가로수에 따사롭게 내려앉는다. 썩은 말뚝도 싹을 틔우고 싶어 하는 계절이다. 계곡을 흐르는 물이 더없이 맑고 푸르다. 하늘을 닮아 더욱 푸르다. 아름다운 계절이다. 겨우내 참았던 봉오리가 화사하게 만개한 하늘 밑 화원, 그대 고운 손길 맞잡고 선녀의 치맛자락 같은, 저 꽃 바위 능선에 흐드러진 개나리와 진달래는 꽃인가 물감인가?

지난가을, 성장(盛裝)을 벗은 뒤 야윈 몸매로 찬바람에 떨었을 나뭇가지들이, 보드라운 밍크코트를 입은 듯 탐스러운 자태로 되살아나서 내 마음을 다사롭게 감싼다. 3월은 가슴이 메마른 나에게 촉촉한 물기를 선물한다. 한낮의 푸짐한 햇살에 풍매화가 활짝 웃는다. 자목련, 영산홍도 덩달아 웃는다. 나도 웃는다.

우리의 봄은 산수유 노란 꽃망울이 먼저 알려준다. 뒤따라 꽃잎 벙그는 갖가지 꽃들이 만산을 물들일 때쯤 되면 온 천지는 원색으로 치장해 놓은 수채화가 된다. 시인이 잘 다듬어진 말로 사물의 본색을 표현해내듯이 조물주는 봄마다 차별화된 색으로 새로움을 창조해낸다.

어미 닭의 품속에서 막 나온 노란 병아리만큼이나 고운 잎들이 퉁겨지듯 활짝 열렸다. 허욕과 이기심의 강물이 범람할 때면 좋아하는 작은 풀꽃을 찾아 나서는 나를 발견한다. 경칩 이 지나고 태양에 연료가 넘쳐서 이상 기온으로 수은주가 올라가는 날은 주변의 초록 생명들이 나를 불러내 꼼짝없이 그 부름이 응하고 만다.

계절을 여는 물소리가 낭랑하다. 그 낭랑한 소리 얼마나 듣기 좋은가? 온통 풀냄새를 널어놓고, 복사꽃을 달래놓고, 싱싱한 가지 부풀게 하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3월의 태양은 지는 순간까지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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