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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가족

이야기 시론(최두석) 요약

작성자지우개|작성시간04.05.07|조회수353 목록 댓글 1

이야기시론



사람들의 살아온 내력과 살아가는 사정은 일종의 이야기인데 각자는 그러한 이야기를 근거로 세계를 해석하고 앞날을 예비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며 그것은 한 인간의 삶의 뿌리가 된다. 이야기를 구연하는 사람들은 적절한 상황 묘사와 화자의 정서적 반응 및 견해를 곁들여 이야기를 나름대로 재구성 한다. 바로 이러한 이야기의 생성 변형 및 교류가 인간에게 보편적인 문학 행위이고 사람이 다른 동물들로부터 구분되는 고유한 특성이다. 결국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감겼다 풀렸다 하던 온갖 이야기의 실꾸리를 땅에 묻는 것이 된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홀로 되새기거나 다른 사람과 주고받는 일종의 문학 행위를 함으로써 이야기가 꿈처럼 잊혀지는 것을 막는다. 오늘날 고조선의 실체는 거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지만 우리에게 고조선이라는 나라나 그 사람들에 대한 실감은 단군신화가 가장 뚜렷이 제공한다. 오랫동안 구비전승 되어온 이야기를 설화라 부르는데 설화는 무엇보다 끈질긴 전승력이 괄목할 만하다. 작가라면 이러한 이야기에 주목하여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게 된 이유를 탐구함으로써 자신의 글쓰기에 자양으로 섭취하기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설화에서 자양을 취한다는 것은 민족 형식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차원에서도 주목된다. 또한 설화는 그 설화를 마음에 품었던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만큼 무수한 마음들이 녹아들어 있다.
그런데 이야기의 공유 및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욕망이다. 같은 줄거리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에 각기 다르게 각인되어 변형되는 이유도 욕망의 강도와 방향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생성 변형시키는 힘이 사람들의 욕망으로부터 나오고 개인 혹은 집단의 욕망의 이데올로기로 드러난다고 할 때 이야기는 문학처럼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닌다.
다양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건너다닐 때 그 사회는 열린 사회가 된다. 참된 이야기의 축적은 진정한 사회를 이루어가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이야기가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다양하게 펼쳐지듯 문학도 그 사이에서 다양하게 펼쳐진다. 문학 작품은 한 편의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문인은 일반 사람들에 비해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변형시키고 새로 지어내는 데 더욱 자각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가치있는 이야기의 창조에 상상력의 적극적인 역할은 충분히 강조되어야 마땅하겠지만 실상 상상력만으로 절실하면서도 참된 이야기의 창조가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즉 이웃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발로 뛰는 것이 필요해진다.
향가를 위시한 고대 시가는 그에 관련되는 이야기와 함께 문헌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는 부수되는 이야기가 따라다니지 않는다. 따라서 한 편의 시 속에 그 시의 존립 근거가 되는 상황이 충분히 제시되어야 한다. 또한 오늘날의 시는 노래로 불리기 보다는 읽히는 존재이므로 이야기가 확장될 필요성과 가능성이 과거의 시에서보다 더 커졌다.
표현 대상에 따라 시는 대체로 네 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감정 표현을 중시하는 시(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사유의 표현을 중시하는 시(이상 <거울>), 이미지 표현을 중시하는 시(정지용 <난초>), 사건 표현을 중시하는 시(이용악 <낡은 집>) 등이 그것이다. 시마다 그 네가지 표현 대상을 부분적으로나마 포용하고 그것들이 서로 효과적으로 융합되어 한 편의 작품을 이룬다.
시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다루기에 양식상의 한계가 많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의문은 시가 어떤 고정된 양식이 아니고 미래를 향해 열린 장르라는 점을 잊은 데서 나오는 것이다. 미래를 향해 열린 장르라는 것은 시의 양식상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고 시에서의 이야기의 도입을 문제삼은 근거가 된다. 그렇지만 소설이 시보다 이야기를 다루는 데 더 유리한 장르가 아니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전개시키는 것에 비해 시에서는 이야기를 생략과 응축을 통해 표현한다. 그런데 소설 한 편을 읽었을 때 그 소설 속의 이야기는 생략과 응축을 통해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그것은 소설을 읽은 후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그렇게 된다. 또한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는 아무리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주체의 의식과 긴밀한 교섭을 갖게 마련인데 시 속의 이야기도 바로 그러한 양상을 띤다. 즉 시 속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의 속성에 더욱 육박해 있다는 주장이 가능할 것이다.
사회적 역사적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사람살이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취급하기 위해서는 시 속에서 이야기를 제대로 구사할 필요가 있다. 즉 서사지향성 문제는 시의 현실 대응력 문제이고 시에서의 리얼리즘의 실현 문제에 연결된다. 가령 김지하의 담시나 신동엽의 <금강> 등은 당대의 어느 소설보다도 사회적 역할에 충실했다고 생각된다. 일제 강점기의 민족 현실을 이용악의 <낡은 집>이나 백석의 <여승> 만큼 효과적이고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소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왜 이용악이나 백석이 그러한 시들을 발전적으로 궁극에까지 추구하지 못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그 이유를 쉽게 단정할 수는 없겠으나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획득하지 못하고 비관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비관주의자가 이상의 실현을 불가능하다고 보고 절망한다면 진보주의자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을 설정하고 그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니까 진보주의는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 비관주의는 현실에 대한 절망으로 마음을 이끌기 때문에 리얼리즘의 실현을 제약한다. 임화나 오장환의 시가 <야행차 속>이나 <모촌> 등의 예외적 작품을 제외하고는 서사지향성이 제대로 살지 못하고 낭만주의적 경향을 띠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현실에 대한 문학적 대응이라는 면에서 이용악, 백석, 임화, 오장환 등은 각자가 정도 차이는 있지만 진보주의와 비관주의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리얼리즘의 성취를 제약하는 진보주의와 비관주의의 유혹은 우리 시대에도 엄존하고 있다. 통일된 민족국가를 수립하지 못하고 식민지 상태를 제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시대적 상황이 그러한 유혹을 유발하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역으로 리얼리즘의 성취가 진보주의와 비관주의를 극복하는 적극적인 방법이 된다. 문학작품의 사회적 기능을 생각할 때 현실의 구조적 문제를 진실되게 제대로 드러내는 일이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고 그것은 시에서 서사지향성을 문제삼는 이유와 연결된다.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드러내는 것과 관련시켜 시에서도 전형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의 전형은 주로 인물의 창조와 관련되지만 시에서는 대체로 이야기와 관련된다. 소설에서의 이야기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데 비해서 시에서는 인물을 다루더라도 이야기 속에 수렴시켜 취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백석 <여승>의 경우)
시에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취급하다 보면 이야기시가 산출된다. 여기에서 이야기시는 서사지향성이 강하게 발현된 시, 즉 처음과 끝을 갖는 어떤 변화 발전하는 사건이 한 편의 시를 구성하고 있는 시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신동엽의 <금강>처럼 장편으로 된 것은 서사시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으니 이야기시는 짧은 시 중에 서사지향성이 강하게 발현된 시, 가령, <낡은 집>과 같은 작품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요즈음의 많은 서사시에서 이야기에 비해 길이가 장황하게 길어진 것은 시인들의 의욕이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하여 주관성의 과다한 확대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필자의 글쓰기에서 신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리얼리즘의 승리를 들 수 있다. 글 쓰는 일에, 인생살이의 사정이나 속내를 작품화하는 것밖에 별다른 지름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또한 앞으로도 추구해 갈 이야기시라는 것도 인생살이의 문제에 충실히 대응하자는 방법으로 빚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적어도 시로 쓴 이상 그 이야기는 동시대와 후세 사람들이 함께 알아두고 되새길 만한 의미있는 것이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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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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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그루터기 | 작성시간 06.03.15 좋은 글이군요. 읽을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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