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하나님
성경 본문 / 마태복음 22 : 31 - 33
서론 : 오늘은 ‘이삭의 하나님’이란 말씀으로 하늘의 메시지를 들으려고 합니다. 애굽에서 살인자의 죄명으로 수배되어 급기야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간 모세가 4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를 향하여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말씀 중에 이 말씀을 인용하심으로,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지칭할 때 이 말씀을 따라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같은 본문 말씀을 가지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란 말씀으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부르시는 하나님으로 우리를 아브라함처럼 부르시는 축복에 대하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삭의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심에 대하여 증거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이삭의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셔서 말씀 가운데 나오는 이삭의 모든 언약의 축복이 여러분의 축복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2. 이식의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성경에서 이삭의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으로 등장하십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언약하신 언약의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란 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첩 하갈로부터 태어난 이스마엘이란 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약속의 자식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축복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될 수 없었고 오늘날 아랍 세계의 조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은 오직 이삭뿐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하나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면 모든 사람들은 다 똑같이 공동적인 운명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삭처럼 약속의 자녀들이 있고, 이스마엘처럼 약속이 없는 자녀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갈4:28절에서 말씀하시기를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 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삭을 낳은 사라는 성령을 상징해 줍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곧 성령으로 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하갈에 의해 육체를 따라 낳았습니다. 이스마엘은 성령과는 무관한 사람으로 바로 아담의 후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과는 상관이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하나님과 원수된 자리에 있다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우연히 태어난 존재로 하나님의 나라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지만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태어났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연히 어쩌다가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이삭처럼 아브라함에게 분명하게 언약의 씨로 약속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약속의 씨로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엡1장에서 말씀하시기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예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되기 위해서인데 하나님의 후사란 곧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을 자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하늘에 예비하신 모든 축복’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축복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지 사도 바울은 롬8장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날에 누릴 우리의 영광이 어찌 놀라운지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에게는 이런 축복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스마엘에게는 이 땅에서 누리는 물질적 축복만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창17:20절에서 이스마엘에 대한 축복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 할지라 그가 열 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이 온 세상에 번식하고 있는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생육의 중다와 물질의 부요는 누리고 있지만 이삭에게 주셨던 언약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놀라운 축복과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는 영원한 축복에 대해서는 약속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삭의 출생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될 때 우리를 이 땅에 출생케 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삭은 기적적으로 낳은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였으며 그의 아내 사라는 경수가 끊겼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에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그같은 일이 어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고 물었을 때 가브리엘은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일러 준 것입니다. 사람의 거듭나는 일에 대하여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겠는가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은 인간 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자녀였기 때문에 반드시 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태어남 역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삭처럼 반드시 이 세상에 태어나 이삭의 언약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이삭의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시다.
다음에 이삭의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삭을 언약하신 것은 이삭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 축복을 받았습니다. 한 가지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소유물을 고스란히 유업으로 받은 사실입니다. 창25:5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애써 이룩한 그 소유물을 아무런 공로나 노력의 대가 없이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삭이 어떻게 그토록 아버지의 엄청난 유산을 유업으로 받게 된 것입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이삭이 아브라함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합법적인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유산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삭과 같이 언약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된 우리는 이삭이 아브라함의 모든 소유물을 유업으로 받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소유물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으며 그 아들의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셨는데 이 같은 일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이나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라 오지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얻어 의롭게 된 것은 우리에게 의로운 조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삭처럼 그리스도로부터 이 의의 축복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죄 사함의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우리들의 죄는 우리들을 지옥으로 끌어가리 만치 엄청나게 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모두 용서해 주시고 죄의 종의 자리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같은 일은 전혀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한 것입니다. 이삭이 마치 자기 아버지의 공로에 의하여 아버지의 것이 다 자신의 것으로 돌아온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해 놓으신 일로 인하여 우리는 죄 사함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영생의 축복 역시 그리스도의 소유였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다만 사망, 죄 값으로 차례 온 죽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그의 공로 안에서 그리스도에게 언약하신 그 모든 것을 그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삭은 또 어떤 축복을 받았습니까? 창25:11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26:12절을 보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심으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지내는 기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충만한 축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나의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이 모든 것이란 영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분명히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동안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적인 것을 의미해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아브라함의 모든 소유물을 갖게 하셨지만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더욱 풍성하신 축복을 주심으로 거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신령한 모든 축복을 넘치게 주셨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치지 아니하시고 이 땅에서 필요한 모든 충만한 축복으로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늘에는 축복이 문의 있습니다. 이 문이 열려야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들 가정 위에 내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이런 축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되 심히 창대하고 왕성한 축복을 내리시어 거부가 되기까지 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원칙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이삭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축복의 유업은 아브라함의 아들이기 때문에 언약에 의해 마땅히 받아야 할 바를 받았지만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물질적 축복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언약과는 상관이 없는 축복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유업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축복으로 마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아들이며 아들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일은 하나님의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받는 물질적 축복은 이 같은 약속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삭과 같이 그리스도 말미암아 그가 이루신 모든 축복을 내 것으로 받지만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물질적 축복은 이 같은 원인으로 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이삭이 물질적 축복을 이토록 넘치게 받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그의 생활을 통해서 몇 가지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게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삭이 하나님 앞에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어려서부터 순종의 아들로 자라났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이 너무나도 크나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다음 날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을 데리고 이삭과 함께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인 모리아산으로 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곳까지 도착하는데 사흘이 걸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산밑에서 이삭의 등에 번제 나무를 지우고 둘이서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삭은 자신이 자기가 지고 가는 나무 위에서 불로 태워 하나님께 제물이 된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아버지께 이처럼 물었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 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삭은 가끔 아버지가 어린양을 잡아 하나님께 번제 제물로 드리는 일을 보아 왔기 때문에 이처럼 물었던 것입니다.
산에 올라간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나무를 제단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이제 불에 태울 제물을 올려놓을 차례가 된 것입니다. 이삭은 아무리 사면을 보아도 제단 위에 올려놓을 어린양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때, 아버지가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이삭아, 하나님께서는 바로 너로 제물을 삼으라고 하셨단다. 네가 제물이 되어야 하겠다’ 이삭은 한참 힘을 쓸 나이였기 때문에 아버지를 물리치고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아버지 손에 결박을 받아 장작더미 위에 누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아버지에 대한 순종이요 하나님께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희생이었습니다. 이삭의 놀라운 순종은 이미 어린 나이에 이곳에서 증명되었습니다. 이삭의 이 같은 순종은 예수님의 순종의 한 그림자가 됩니다. 빌2장에서 이르시기를 ‘그는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이삭의 순종은 예수님과 같은 놀라운 순종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 각자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축복의 그릇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는 너무나도 확실한 분량까지 재실 수 있는 그릇이 있는 것입니다. 그 그릇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순종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순종이 하나님의 축복을 채울 수 있는 축복의 그릇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가 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 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2) 다음에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겸손함에 있었습니다. 이삭의 겸손은 창세기 여러 곳에 나와 있습니다. 특히 창26장에는 이삭이 그랄 목자들과 다툼이 생겼을 때, 그의 인간적인 겸손함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삭에게 시기한 그랄 목자들이 골짜기에 땅을 파, 샘근원을 얻었을 때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스스로 물러가 다른 곳에 이르러 다시 땅을 파서 샘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도 그들이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이삭은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 땅을 파서 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말하기를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겸손한 인격입니까? 이삭은 물론 완력으로 싸워서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지만 겸손하여 물러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시10:17절에서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삭의 겸손은 바로 하나님을 의뢰하여 그만을 소망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3)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잉태하지 못함으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간구하는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간절히 구하는 자의 기도에 귀를 기우려 주십니다. 너희가 받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야고보 사도는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필요한 것을 위해 얼마나 기도 생활을 하신 것입니까? 쉬지 말고 기도해 보세요. 간절히 간구해 보세요. 응답해 주십니다. 이삭이 범사에 그토록 많은 축복을 받은 것은 그의 기도 생활에서 온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 이삭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이삭처럼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들입니다. 우리는 그의 아들이 이룩하신 모든 충만한 축복을 약속 받았습니다. 이것은 이삭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그의 생활에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기도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의 이 같은 신앙 생활은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이삭의 하나님은 이 같은 충만한 축복을 준비하시고 우리로 이삭의 신앙을 본 받아 그의 축복을 받아 가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