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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충성의 향기(16호)

작성자김성문|작성시간26.01.10|조회수892 목록 댓글 2

충성의 향기 / 김성문

 

간의 수명은 유한하다. 아무리 건강하게 살아도 백 년을 넘기기 어렵다. 그러나 짧은 생애 속에서도 시대를 관통하는 흔적을 남기는 인물이 있다. 신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이다. 그는 지금도 역사의 한복판에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이름으로 남아 있다. 평생을 바쳐 나라를 지켰고,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조국을 걱정한 존재다. 

 

668년, 신라는 마침내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김유신 장군은 고구려와의 전쟁에 참여하지 못했다. 건강이 악화되어 서라벌에 머무르며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었다. 몇 해 뒤, 장군은 79세가 되었다. 그해 음력 1월, 경주에는 큰 별이 황룡사와 반월성 사이에 떨어지고 지진까지 일어나 백성들의 불안이 커졌다. 이를 전해 들은 문무왕은 크게 걱정했다.

 

김유신은 왕을 알현해 아뢰었다.

“요즘의 변고는 모두 늙은 저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나라의 재앙이 아니오니 전하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문무왕은 답했다.

“그렇다면 과인이 더더욱 걱정할 일입니다.”

 

병든 몸으로도 왕의 마음을 다독이며 조국의 불안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김유신의 충정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문무왕은 담당 관리에게 명해 기도를 올려 액운을 막게 했다. 673년 음력 6월, 김유신 장군의 집 근처에서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울며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는 이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그 말을 들은 김유신 장군은 말했다.

 

“이는 나를 수호하던 음병陰兵들이 내 운이 다한 것을 알고 떠나는 것이니, 이제 나도 갈 때가 되었구나.”

 

김유신에게는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또 다른 기준이 있었던 듯하다. 그 기준은 현실을 넘은 시야로 이어져 단순한 장군을 넘어선 존재의 깊이를 보여준다. 열흘 뒤,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문무왕은 직접 장군의 집을 찾았다.

 

“신은 팔다리의 힘을 다해 전하를 모시고자 하였습니다. 이제 병이 깊어 다시는 전하의 얼굴을 뵙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왕은 장군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경이 나에게 있음은 물속의 고기가 물에 의지함과 같소. 만약 경이 떠난다면 이 백성은 어찌하고 사직은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김유신은 마지막 고언을 남겼다. 신라, 고구려, 백제가 한 집안이 되었음을 기뻐하면서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강조했다. 소인을 멀리하고 군자를 가까이하며 조정을 화목하게 이끌고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만 나라가 평안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전하께서 끝까지 나라를 잘 이끌어 가신다면, 저는 죽더라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 마지막 말은 장군의 생애 전체를 집약하는 고백이자 유언이었다. 음력 7월 1일, 김유신 장군은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향년 79세. 당시로서는 놀라운 장수였다. 문무왕은 김유신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며 물품을 하사하고, 군악대 100명을 보내 장례를 도왔다. 장군의 유해는 금산원에 안장되었다. 지금의 경주시 송화산 기슭이다. 문무왕은 묘에 비석을 세우고 후손들에게 묘를 지키게 했다.

 

김유신 장군의 두 번째 부인은 지소 부인이다. 태종무열대왕의 공주이고 장군과 사이에서 다섯 아들을 두었다. 남편의 죽음 후, 지소 부인은 머리를 깎고 거친 베옷을 입고 스스로 비구니가 되었다. 지소 부인의 뜻을 들은 문무왕은 감동해 말했다.

 

“오늘의 평안은 김유신 장군의 공이요. 숨은 공은 부인의 내 조에 있습니다. 이에 남성南城의 곡식 1천 석을 매년 드리겠습니다.”

 

남성은 경주 남산성으로, 장창에는 곡식과 무기가 쌓여 있던 곳이다. 문무왕의 말은 보답이 아니라, 김유신 가문의 충정을 나라 전체가 기억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은 만고의 진리다. 바르게 살고 의미 있게 생을 마무리하는 일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나라가 있어야 하고, 나라는 그것을 지키려는 이들의 헌신으로 존재한다. 김유신 장군은 바로 그 헌신의 상징이었다.

 

신라 흥덕왕은 835년, 김유신이 세상을 떠난 지 162년 만에 그를 흥무대왕으로 추봉했다. 사서는 그 사실을 전하고 있다. 그 후 김유신의 후손들은 왕손으로 예우받았다. 그것은 혈통이 아니라, 헌신으로 얻은 이름이었다.

 

김유신은 진정한 신하였다. 시대를 이끈 장군이자 조용한 지도자였다. 검으로 나라를 지켰다. 지혜로 왕을 도왔으며 한결같은 삶으로 충성의 본을 보였다. 그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성실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섰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를 품은 마음은 깊고도 넓었다.

 

김유신이 남긴 충성의 향기는 오늘도 우리의 가슴을 적신다. 그것은 소란스럽지 않지만 오래도록 꺼지지 않을 불꽃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 불멸의 흔적으로 깃들어 있다.

경주 통일전에 봉안한 흥무대왕, 김유신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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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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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허수현 | 작성시간 26.01.16 군복을입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울며 사라지는모습 수호하는 음병들이 떠나는모습 신기합니다
  • 작성자김성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22 위대한 인물의 죽음이 자연 질서와 우주적 흐름 속에서 예고된다는 전통적 사고인 같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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