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역사 이야기

김유신 장군의 손자들(2부) / 김성문

작성자김성문|작성시간26.06.06|조회수851 목록 댓글 0

김유신 장군의 손자들(2부) / 김성문

 

<1부에서 계속>

그리고 또 한 사람, 김윤중의 서자 김암. 그의 이름은 더욱 빛난다. 『삼국사기』에서는 서손으로, 김해김씨족보에서는 서자라 기록되어 있으나 어느 쪽이 정확한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김암의 삶은 이채롭다. 총명하고 민첩했던 그는 이찬(2관등)에 올라 당나라에 숙위로 파견되었다. 젊은 나이에 고위직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능력을 엿볼 수 있다. 당나라에 체류하는 동안 그는 스승을 찾아 음양술을 익혔다. 천문, 지리, 역수, 풍수까지 아우르는 학문에 심취한 그는 둔갑입성지법이라는 책을 지어 스승에게 바쳤다.

그것을 본 스승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대가 이 경지에 도달했을 줄은 몰랐노라.”

 

그 후 스승은 김암을 더 이상 제자로 대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혜공왕 재위기(766~779)에 김암은 귀국해 사천대박사司天臺博士로 임명되어 천문학을 관장했다. 그 후 양주, 강주, 한주의 태수를 지냈으며, 패강진의 두상(지방 장관)으로 북방을 다스렸다. 그 후 집사부 시랑執事部 侍郞에까지 올라, 왕정의 핵심을 다루는 자리에 있었다.

 

김암은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고, 농번기를 피해 군사훈련을 가르쳤다. 육진병법을 백성에게 전수한 관리는 흔치 않았기에, 그의 행보는 이례적이면서도 깊은 애민 정신을 드러냈다.

 

김암이 패강진에서 근무하던 어느 해, 중국 쪽에서 메뚜기떼가 날아왔다. 그가 산꼭대기에 올라 향을 피우고 하늘에 기도했더니, 이내 메뚜기떼가 사라졌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를 실로 신비한 인물로 여겼다.

 

779, 김암은 신라의 사신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그의 능력을 알아본 일본 왕은 억류하려 했지만, 공교롭게도 일본에 머물던 당나라 사신 고학림高鶴林이 그를 알아보자, 그제야 왜인들은 그의 명성을 알아보고 억류를 포기했다.

 

김암은 귀국하여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

 

김윤중은 조부의 이름 아래 머무르지 않기 위해 애썼고, 김장청은 가문의 무게를 글로써 다시 세우려 했으며, 김암은 방술과 정치, 군사와 백성의 삶을 두루 아우르며 자신의 자리를 넓혀 갔다. 김유신이라는 거대한 이름은 그들에게 그늘이자 토대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름에 기대어 숨지 않았다. 각자의 길 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빛을 만들어 냈다.

 

그들의 삶은 더 이상 말로 자신을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지나간 세월의 바람 속에서 한 가문이 남긴 정신이 어떤 깊이와 단단함으로 이어졌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오래도록 전하고 있다.

 

김암이 향을 피워 메뚜기떼를 사라지게 하는 광경 상상도(AI제작)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