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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김춘추와 김유신의 동행(2부) / 김성문

작성자김성문|작성시간26.06.28|조회수809 목록 댓글 0

김춘추와 김유신의 동행(2부) / 김성문

 

<1부에서 계속>

654년 음력 3월 진덕여왕이 서거하자, 김유신은 알천에게 왕위를 권유했다. 그러나 알천은 오늘날 덕망은 춘추공을 따를 자가 없다.”며 사양했다. 김춘추가 세 번 고사한 끝에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가 신라 제29대 왕, 태종무열대왕이다. 그는 신라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자, 왕권 강화를 바탕으로 삼국통일의 길을 연 주인공이다.

 

무열왕은 김유신과 함께 660년 음력 5, 당나라 소정방과 같이 백제를 공격했다. 소정방은 군사 13만을 이끌고 수륙 양면에서 사비성을 포위했다. 김유신은 정예병 5만을 거느려 출정했다. 결국 백제 의자왕은 웅진성에서 항복했으며, 무열왕은 그 소식을 듣고 사비성으로 직접 들어가 당나라 조정에 승전을 전했다.

 

백제가 멸망한 후에도 김춘추는 쉼 없이 움직였다. 압독주를 대야로 옮기고, 각지에 군사를 재정비했다. 그러나 무열왕의 삶은 오래가지 않았다. 661, 그는 5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시호는 무열武烈이고, 묘호는 태종太宗이다.

 

김춘추가 세상을 떠난 해, 현재 익산시 지역에 있었던 대관사의 우물에서는 피가 솟았으며, 금마면 땅에서는 피가 흘렀다고 한다. 자연조차 왕의 죽음을 애도한 듯한 전설 같은 이야기다.

 

그의 죽음 후 김유신은 계속해서 신라의 전장을 누비며 고구려와의 전투, 나당전쟁까지 진두지휘했다. 그는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나라를 위해 검을 놓지 않았다. 흥무대왕, 그의 시호는 그 생애의 무게를 말해준다. 은 나라를 일으켰음을, 는 나라를 지켰음을 뜻한다.

 

김춘추와 김유신,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서로에게 등을 돌린 적이 없었다. 욕심 대신 협력을, 다툼 대신 신의를 선택했다. 한 사람은 왕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장군으로 남았다. 왕이 된 이는 장군에게 가장 귀한 딸을 시집보냈다. 장군은 왕을 위해 마지막까지 싸웠다.

 

역사는 그들을 왕과 신하로 남기기보다는, 한 나라의 미래를 함께 짊어진 동지로 기억한다. 이들의 삶은, 어느 한쪽만의 영광이 아닌, 함께한 길 위에서 피어난 진심의 결과였다.

 

지금도 경주의 태종무열대왕릉 앞에 서면, 눈길을 주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는 장중한 기상이 느껴진다. 그와 함께 있었던 흥무대왕의 흔적은 태종무열대왕의 걸음을 이어받아 한 시대를 완성한 자취처럼 느껴진다. 오래된 역사의 무게와 더불어 오늘도 사람들은 그들을 추앙하고 있다. 잊히지 않는 두 별은, 역사의 밤하늘에서 한 나라의 운명을 밝히며 영원히 빛난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인연이 없었다면, 신라의 삼국통일은 그 이름조차 역사에 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는 모습(AI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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