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 그러니까 4월 22일 일요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연극 [시련]을 보았다.
( 생일 전날이라 남자친구에게 생일선물로 오랫동안 졸랐더랬다^- ^;)
연출 윤호진_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이자 명성황후의 연출가.
나도 한국에서 연극에 인생을 걸고 있는 생명체중에 하나이니 그 이름을 모를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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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진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관객을 끌어모으는 힘이 대단한듯 했다.
( 뭐, 당연하지! )
게다가, 아서밀러의 '시련'이라니!
아마도 해마다 연극영화과 지망생의 몇백명씩은
대학 입학시험에 이 희곡의 대사를 준비해 갈것이다.
나도 그랬던 아이들중 하나였으니 아주아주 잘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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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희곡이자, 가장 해보고 싶은 역활이 있는 극이여서 나의 기대는 엄청났다.
( 이 희곡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헤아리기가 힘들다!
문학예술로서 보는 시련도 굉장한 재미가 있으니까..!
평민사에서 펴낸 아서밀러 희곡집의 역자 (현 한예종 교수인) 김윤철 도 역자후기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서양 희곡이라고 밝힌바 있다. )
연극과 관련없이 책읽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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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매스컴에서 보도했듯이 공연시간은 3시간 30분정도.
연극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헉! 할수도 있겠지만,
1,2막과 3,4막 사이에 쉬는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숙지한다면
그리고 이 극이 상당히 재밌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면
오히려 짧은 시간임에 안타까워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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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자체가 굉장히 재미있다는것을 아주 잘 알고있었기 때문에
연출이 어떨지 배우들의 표현은 어떨지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고 관람을 했다.
감상평을 줄줄히 늘어놓기전에
먼저 아서밀러의 희곡자체에 대해 말해볼까?
일일히 설명하기 귀찮아서 살짝 검색해보니,
<시련>의 소재는 17세기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서 실제로 있었던 ‘마녀 재판’.
아서 밀러는 이 작품을 통해 2차 대전 이후 미국 전역에 몰아쳤던 매카시즘의 광풍과,
그 안에서 살기 위해 양심을 속여야 했던 시민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파헤쳐 호평을 받았다.
라는데.. 도저히 이 세줄로는 알수 없을듯 하니까..
쉽게 다시 (수다스러운)내 이야기 풀이 방식대로 쉽게 줄거리를 소개해보겠다^- ^
줄거리에 쓰이는 사진은 영화 크루서블에서 따온것들입니다//
아래는 주인공이 되시는 아비게일 양과 프락터씨가 되겠다.
배경은 미국, 17세기.
기독교를 중요시 하고 도덕적인 생활을 가진 마을사람들이 살고있는 세일럼이다.
이곳에 당돌하고 아름다우며 거침없는 성격의 아비게일 윌리엄스이라는 10대 소녀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소녀들과 흑인 노예 티튜바와 함께 숲속에서
벌거벗은채 춤을 추며 악마의 의식을 거행한다.
자신과 육체관계를 맺었던 농부 존 프락터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죽이고 싶은 충동에서였다.
그러나 악마의 의식을 거행하던중 그 모습을 마을의 패리스 목사에게 들켜버리게 되고 이 사실때문에
몇몇 아이들은 매질을 당할까봐 무서워 기절한척 하거나 말도 않고 누워있는등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그러나 사소한 아이들의 장난같은 이 모든 행동들이 어른들의 욕심과 자존심등
다양한 이익관계때문에 악마의 저주로 판단되어지는데 다른마을에서 온
존 해일 목사라는 인물이 기름을 부어 사건은 더욱더 커지기만 한다.
위 사진은 법정에서 악마를 보고있다는 거짓 연극중인 소녀들의 모습이다.
처음, 티튜바가 언급한 악마의 서명에 관한 거짓 자백때문에 마을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고 하나 둘씩 마녀 재판이라는 명목으로 교수형에 처하게 된다.
이 소식을 알게된 농부 존 프락터는 자신의 순결한 아내마저
아비게일의 모략때문에 교수형에 처할 위기에 빠지게 되자
과거, 단 한번의 실수였던 아비게일과의 간음까지 법정에서 밝히며 진실을 밝히려 노력한다.
그러나 이미 모든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어버린 법정에서
그의 노력은 헛된 것으로, 계속해서 아비게일의 거짓말을 폭로하는것이 소용없음을 깨닫는다.
아이들과 아내를 둔 남편이자 성실한 한 농부로서 그는 살기위해 자신도 거짓자백을 하려했으나,
마지막 자백후 서명한 자신의 '존 프락터'라는 이름을 더럽히지 못해 스스로 교수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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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존 프락터를 영웅이라고 하기도 한다.
' 진실을 말할 것인가 ? '
이 끊이지 않는 질문에 대해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목숨마저 버린 그의 행동은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기억될것이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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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에 픽션이 가미된 것이라고 한다.
줄거리는 이렇게까지 정리하도록 하고,
연극은 어땠나?
희곡이 연극으로 올라감에 있어서
기대를 가지는 부분중 '배우의 역량'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것 같다.
위 사진은 한국판 아비게일과 프락터씨가 되겠다.
예전에 크루서블이라는 영화를 보았기때문에
이미 배우로써 실연되여진 '시련'을 보았지만
연극무대에서 한국어로 공연되는 것을 보는 느낌은 색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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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노나 라이더가 아비게일을 맡았던 영화 크루서블과는 달리
연극 시련에서는 사실, 매력적인 아비게일의 역할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내가 정리한 줄거리에서는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았던
메어리워렌이라는 소녀보다 더욱 작게 느껴지는것은 배우탓뿐이라기 보다는
연출의 의도도 있었을것이라 판단된다. ( 아니면 뭐, 할말이 없다 )
소녀들중의 하나였던 메어리 워렌같은 경우 자신의 증언을 여러번 번복하는
약간 광적이며 연약하고 가장 순진한 역할로 존프락터의 집안일을 돈을받고 도와주는 소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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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막에서는 약간 지루할 수도 있는
상황설명이 쉬는 시간을 넘어 3,4막이 되면 굉장히 역동적이며
극적인 상황들의 나열로 관객에게 흥분감을 준다.
이것은 희곡자체로서도 충분히 느낄수 있었던 속도감인데
무대위에서 열정적인 배우들의 몸동작때문에
그 쾌감은 극에 이른다 할수 있겠다.
아래는 무대위의 모습을 잠깐 담은 동영상이 되겠다.
초반, 아비게일이 해일 목사에게 추긍당하자 거짓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극의 흐름이 바뀌며 뒤의 모든 사건을 설명해준다.
무대위에서 볼땐 굉장히 멋있는데
동영상으로 보니, 역시 느낌이 100분의 1도 나오지 않는듯해 안타깝다ㅠ
3막의 역동적인 법정 장면이 지나고 나면
관객들은 아마도 어느새 극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존 프락터가 어떤 결정을 내릴것인가,
진실은 밝혀질 것인가,
수많은 궁금증과 질문들 3막에서 보여졌던 충격적인 소녀들의 광적인 모습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메우는 가운데
1막의 하일라이트를 채워주었던 티튜바가 다시 나타나 조용한 웅얼거림과 함께 어둠속에서 등장한다.
장소는 다시 변하고 어두컴컴한 감옥안에서
3막까지 힘겹게 달려온 각 캐릭터들은 지치고 힘든 모습으로 다시 등장해
더 깊고 진한 질문을 잔인하게도 계속해서 던진다.
그리고 시련, 이 연극의 거의 모든것이라고 해도 좋을정도의
존 프락터의 고뇌_ 그 모습은
지금까지도 내게 깊은 감동으로 남아있는데
그가 어떤 위대한 인물로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까지 고백하며 밝히려 했던 진실과의 싸움과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려고 애썼던 그 힘든과정을
소박한 농민으로서 이겨내었다는 것은 나또한
그저 힘없는 소시민임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었다.
선과 악의 싸움이라고 한다면
단순히 거짓연극을 해댄 소녀들과 그것에 속아넘어간 법정관계자들이 악이고
존프락터나 그와 같이 진실을 지키려 죽은 다른 인물들이 선이겠지만,
여기서 내가 생각해본것은 그것이 다가 아니라,
존 프락터가 자신이 착하기 위해 선을 행하기 위해 진실을 밝힌것이 아니듯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행위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모습,
다른 사람들처럼 거짓자백을 하려고 했는데도
나는 결코 그렇게 되지 못하겠다는 슬픈 고뇌가
같은 인간으로서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이다.
실제로 존 프락터는 거짓자백을 하고 자백에 서명까지 한다.
그러나 그 진술서를 다시 가져가 마을사람에게 보이려는 댄포스_법정최고관리자 에게
진술서를 가져가지 말라고 하고 이해할수 없다는 그에게,
그는 온 정신과 육체를 다해 소리친다.
" 그건 내 이름이니까요!
내 평생에 다른 이름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오!
내가 거짓말을 했고 또 그 거짓말에 서명을 했기 때문이오!
내가 처형될 사람들의 발 끝의 먼지만도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오!
이름도 없이 나보고 어떻게 살란 말씀이오?
내 영혼을 당신께 넘겼으니 내 이름만은 남겨놓으시오! "
그의 순결한 아내 엘리자베스마저
그의 외침에 자신이 그의 고결함을 다시 빼앗는 것을
하나님은 용서치 않을거라며 그를 놓아준다.
그리고 북소리와 함께 막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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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통연극을 관람한 내게,
[시련]은 굉장한 충격이었다.
지금 우리 공연문화는
뮤지컬과 유쾌한 연극의 홍수속에서
진지함을 찾기란 굉장히 힘들어보인다.
그 곳에서
비록 우리의 작품은 아니지만
진지하게 많은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의 엉덩이를 3시간 30분동안 잡아매고
흥분과 감동 배우들의 열정과 땀으로 가득찬 무대를 선사한다는건
굉장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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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희곡자체가 재미있고
능력을 인정받은 많은 배우들이 참여했으며
예술의 전당이라는 좋은 무대와
괜찮은 홍보덕택에 몰린 괜찮은 관객의 수때문에
연극은 좋았다.
희곡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 충실한 연출도 좋았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을 공연했다는 데에 많은 의미가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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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에 앞서
많은 기사자료와 블로그나 카페등을 통해 사람들의 공연평을 보았다.
대부분 뮤지컬 위주로 공연을 보아왔던 사람들이거나
나처럼 연극을 공부하는 사람들이거나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 또는 어쩌다가 왔던 사람들정도 였는데
평이한 공연평이 대부분이었다.
줄거리에 집중하는 사람 ,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는 사람
기사는 대부분 윤호진 연출가에게 집중했지만..
나는 어쩐지 크루서블이라는 영화와 비교도 해보고 싶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콕콕찝어 이건 좀 아니더라 하고 불평도 하고 싶었고
( 사실 몇몇 캐스팅은 미스였다고 말하고 싶다 )
3시간 30분이라는 긴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관객이 많은탓인지
핸드폰 벨소리와 기침소리 불평소리등 관람태도가 안좋았던 것도 투덜거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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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 정작 글을 마치는 내가 가장 하고픈 말은 무얼까.
그 연극은, 자신이 해야할일을 관객에게 제대로 했다.
감동.
막이 내리고 배우들이 인사할때 박수를 치며 비로서 눈물을 흘렸다는
한 관객의 공연후기처럼
나도 무슨 비평가 흉내보다는 한 관객으로서
정말 잘 보았습니다,
한마디를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