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도(永山島)는 흑산도에서 도선을 타고 4㎞를 더 가야 한다.
미지의 섬, 영산도는 그 이름만으로도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소득을 얻는데 연연하지 않는 영산도 사람들을 주변에서 바보라고 부른다.
된볕산 절벽에는 연분홍 다정금나무꽃이 군락을 이루어 만개하였다.
영산도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피는 다정금나무처꽃럼 다정하다.
전남 목포에서 신안 흑산도까지 쾌속선 뱃길로 2시간...
흑산도에서 도선을 타고 다시 30분여 분 더 가야 다다를 수 있다.
영산도(永山島)는 신령(神靈)의 섬이다.
그런데 영산도는 ‘신령 영’자가 아닌 ‘길 영’(永)자를 쓴다.
마을 주민들은 유쾌하게 웃으며 말한다.
"면서기가 '신령 영'자를 쓰기 어려워 대충 '길 영'자로 휘갈겨서 그렇다"
목포에서 아침 7시 50분에 출항하는 쾌속선에 승선하였다.
동양골드호는 약 2시간 만에 흑산도에 닿았다.
제법 큰 너울이 넘실거려서 하마터면 멀미를 할 뻔하였다.
쾌속선에 예리항에 닿자마자 영산호가 쪼르르 달려왔다.
예약을 위해 통화했던 최성광 위원장과 눈인사를 하고 승선하였다.
예닐곱 명의 주민들과 함께 탔다.(정원 35명, 편도 운임 5천원)
영산도에 닿자마자 '누운 여인'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풀어넘긴 여인의 얼굴, 가슴, 볼록한 배는 만삭의 여인이다.
정부는 2012년 영산도를 '명품마을'로 지정하였다.
주민들이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활용해서 소득을 높이도록 돕는 사업이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흐른 탓에 시설물들이 낡아서 을씨년스러웠다.
영산도 '부뚜막'에는 백반, 회정식 등 두 가지 메뉴가 있다.
자연산 먹거리로 한 상을 푸짐하게 차리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재료를 준비해야 하기에 예약이 필수다. ☎ 010-7330-7335
우리는 '부뚜막'에서 세 끼 식사를 해결하였다.
최성광 위원장의 부인께서 맛깔스럽게 준비해 주셨다.
백반 12,000원, 회정식 35,000원
회정식을 시키면 자연산 홍합과 거북손이 따라 나온다.
특히 아침 식사로 나온 전복족은 여태까지 먹어본 것 중에서 최고였다.
우리는 독채로 된 숙소를 배정받았다.(1박 10만원)
TV와 침대는 없었지만 깨끗하고 아늑하였다.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이곳에서는 충분한 여행이 된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마을 구경에 나섰다.
골목길의 곳곳에 이정표가 있어서 길 찾기가 수월하였다.
영산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조용함’이다.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 외에는 크게 들려오는 것이 없다.
영산분교는 한때 학생이 100명이 넘었지만 이젠 문을 닫았다.
젊은이들이 다 육지로 떠나고 아이들이 없어 5년 전쯤 폐교되었다.
마을에선 학교 건물을 활용할 방안을 고민 중이다
폐교터는 험상궂게 생긴 개 한마리가 지키고 있었다.
최성광 위원장 부부가 기르고 있는 개다.
폐교의 담벼락엔 이중섭풍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물고기를 타고 노는 순진한 아이들의 표정이다.
이곳에서 꿈을 꾸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마을 앞의 몽돌밭에서 망중한을 즐긴다.
마을 주민들이 보존해 놓은 멸종위기종 2급 석곡이 보인다.
석곡은 상록 여러해살이풀로 바위나 죽은 나무에 붙어서 자란다.
5~6월에 흰색이나 연분홍색의 아름다운 꽃이 핀다.
아쉽게도 꽃은 피지 않아 꽃이 핀 석곡을 다른 곳에서 퍼왔다.
마을의 윗쪽에 백년 가옥이 복원되어 있었다.
구달홍님이 94세로 돌아가시던 1999년도까지 거주하던 집이다.
뛰어난 침술로 영산도 마을의 의원으로 활동하시면서 덕을 베풀었다고 한다.
명품마을의 공중화장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바닷가 언덕에 교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목사는 상주하지 않는지 인기척이 없었다.
어린 양들을 보살피는 예수님과 종탑이 쓸쓸하였다.
이장 최성광 위원장(53), 이분은 영산도의 ‘발’이다.
외아들 이름을 '바다'라고 지을 정도로 영산도 바다에 대한 애정이 깊다.
부인은 해상 관광 안내, 해녀, 부뚜막 식사 준비 등 못하는 게 없다.
도시에 살다가 남편 따라 들어왔다는데...남편 사랑이 지극하다.
위원장 댁의 개는 앞다리가 짧아 뒤뚱거린다.
덫에 걸려서 다리 하나가 절단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이 나타나면 쪼르르~ 달려와서 반가워한다.
골목길에 늘어선 돌담이 정겨웁다.
돌담 안에 있는 집들은 비어있는 곳이 많다.
세련돤 벽화가 그려진 담장이 아름답다.
화가 이재은이 재능 기부하여 그렸다고 한다.
골목길을 내려오다 보면 재실이 한 채 있다.
1650년 영산도에 입도하여 정착한 사람이 경주 최씨다.
370여 년을 뿌리내려 온 경주 최씨의 사적인 것이다.
영산도 마을은 집성촌이다 보니 단합이 잘 된다고 한다.
숲속에 영산도에 처음 입도하여 자리잡은 경주최씨 비석이 보인다.
마을의 외진 곳에 깨끗한 절이 들어서 있다.
스님은 출타하였는지 풍경만이 외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 봉안되지 못한 부처님은 해변에서 눈을 가린 채 앉아있었다.
학교 아래에는 이렇게 멋진 캠핑장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졸업한 바다, 연진, 효경 세 학생의 이름을 펜션에 붙였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나서 시설은 낡았고, 잡초만이 무성하였다.
점식사를 마치고 된볕산 산행에 나섰다.
나무 데크를 따라 약 5분 정도 오르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누운 여인 형상의 바위능선이 가까이 다가와 보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니 마을과 백사장을 둥그렇게 감싸는 부드러운 능선이 보인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중간지대에서 당집이 한 채 있다.
바로 소자애기씨를 모신 당이고, 이 주위가 바로 당산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당집은 쓸쓸하였다.
등산로 주변에는 눈향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
누워서 자라는 향나무이기 때문에 '눈향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주로 높은 산 바위틈에서 자라는 나무이다.
섬에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바람을 피해 옆으로 자라는 습성이 있다.
등산로는 아주 잘 정비되어 있어서 편안하였다.
길은 마을 뒤 깃대봉을 거쳐, 된볏산 옆으로 내려온다.
약 3km 정도로 조금 가파른 듯 보이지만 연인끼리 손잡고 걸을 만하다.
땅찔레꽃 일명 돌가시나무가 많이 보인다.
땅찔레는 땅으로 가라앉아 옆으로 퍼지며 자라는 습성이 있다.
섬에서 거센 바람을 견뎌야 하는 운명이기에 그런가 보다.
영산도는 ‘고요한 아침의 섬’이자 ‘힐링의 섬’이다.
영산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조용함’이다.
낮은 집들과 섬을 둘러싼 푸른 바다가 꾸밈없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늘진 숲속에서 석위(石韋)가 왕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석위는 여러해살이풀로 일년 내내 푸른 상록식물이다.
주로 나무나 바위에 붙어 자라는 착생식물 생활을 한다.
잎은 단엽으로 전체적으로 두껍고 다육질이다.
안타깝게도 소나무가루깍지벌레 때문에 많은 소나무가 고사했다.
거친 파도와 바람에 시달린 마을 노인들의 모습을 닮았다.
동백나무와 후박나무숲의 우거진 상록활엽수림 능선을 지났다.
어느덧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깃대봉(220m)에 이른다.
'된볕산'은 하루종일 햇볕이 되게 잘 들어 이런 이름이 얻었다고 한다.
콩짜개덩굴이 붙어 자라는 돌에서 원시의 숲 느낌이 난다.
연분홍 꽃이 향기로운 다정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영산도 사람들은 '짹가시나무'라고 부른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바닷가 절벽 위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꽃이 가지 끝에 옹기종기 모여 달리기 때문에 '다정금나무'라 부른다.
다정하게 모여 사는 다정금나무는 영산도 사람들의 심성을 닮았다.
된볕산(241m)이 높은 암릉을 이루고 있다.
지척이지만 등산로가 이어지지 않아 마을로 내려왔다.
예전에 관광객이 혼자 갔다가 조난되어 위험했다고 한다.
천박재에서 능선을 벗어나 오른쪽 길로 내려간다.
약 5분 여쯤 내려가면 마을로 내려가는 안부 삼거리다.
어둠침침한 후박나무 숲을 지나면 마을이 나타난다.
방파제 등대로 가는 길목에서 스누피바위를 발견하였다.
바닷물 위로 스누피를 꼭 빼닮은 바위가 배를 하늘로 내밀며 누워있다.
어찌나 정교하던지 마치 조각을 해 놓은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영산도의 노을은 신비롭고 우아하였다.
자줏빛으로 물든 하늘과 바다는 법열(法悅)과도 같았다.
황홀한 기쁨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TV도 없고 와이파이도 안 되는 적막한 밤...초저녁부터 잤다. ㅠㅠ
이곳에 들어오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주어진다.
다음날 아침, 해상관광에 나섰다.
사무장 구정용씨가 운전을 하고, 이장님 부인이 해설을 맡았다.
없어진 액기미마을이 물결 너머로 보인다.
액기미는 액운 있는 사람은 오지 말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과거에는 10여 가구의 주민이 살았지만, 지금은 모두 떠났다고 한다.
가운데로 우뚝 선 남근바위가 보인다.
마을 사람들이 바위 끝에 자라는 나무에 물 주러 다니느라 고생이 많단다. ㅎㅎ
바위 사이에 졸고 있는 부엉이가 한 마리 앉아 있다.
코끼리바위 일명 석주대문은 대단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석주대문은 영산도뿐만 아니라 흑산도 전체의 상징물이 되었다.
자연석 대문인데 수면 위로 전마선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넓다.
코끼리의 귀가 앉아있는 우리를 후려칠 것 같아 두렵다. ㅋㅋ
거대한 사자바위가 대양을 향해 포효하고 있다.
눈, 코, 입의 형상이 뚜렷한 얼굴바위를 만난다.
무인도의 등대지기는 흑염소 한 마리다.
배가 오는 소리를 듣고 나온 흑염소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무인도의 반대쪽은 풀이 자라고 있어 흑염소의 먹이가 되고 있다.
거북이 한 마리가 대양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영산호로 갈아타고 흑산도로 나와서 작별하였다.
사무장 구정용 씨(51), 그는 영산도의 '손'이다.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사무장이 없으면 섬은 굴러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