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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行을 다녀와서

<섬>다물도(多物島) - '돈섬'의 공소는 너무 쓸쓸하였습니다

작성자나마스테|작성시간26.06.12|조회수56 목록 댓글 0

아침에 영산도 해상 관광을 마치고 흑산도로 나왔다. 

흑산도에 숙소를 잡아놓은 후, 엔젤호를 타고 다물도(多物島)로 들어갔다.

'흑산도가 품은 진주'라고 알려져 있는 다물도는 '돈섬'으로 불리우고 있다.

천혜의 어장을 갖고 있는 섬에 해산물이 풍부하여 '다물도'라 불리우게 되었다.

흑산도 옆에 있는 다물도는 흑산도에서 4km 떨어진 곳에 있다.

장고 모양의 섬은 흑산도의 1/12 크기의 자그마한 섬이다.

흑산도에서 엔젤호를 타고 30분이면 다물도에 도착한다.

생필품을 잔뜩 사가지고 들어오는 주민들과 함께 내렸다. 

크고 작은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어 한눈에도 부자섬임이 느껴진다.

포구 주변에서는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다물도 주위는 어종이 풍부하여 고기가 잘 잡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마을 할머니께서 새로 만든 다리를 자랑하시길래 다리를 건너갔다.

포구 주변은 배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가두리 양식장이 많다.

그래서 다리를 놓아 새로운 선착장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4년 전에 다녀왔던 대둔도가 손에 잡힐듯이 다가왔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성암산 봉우리가 우람하였다.

다물도 표지석도 새로운 다리 끝으로 옮겨놓았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남해 섬 중에서 가장 부자섬이었다.

수백 척의 조기잡이 배들과 홍어잡이 배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작은 섬답게 섬 전체가 하나의 부락을 이루며 살고 있다.

섬의 중간 부분이 장고처럼 잘록하여 동서로 깊숙한 만이 형성되어 있다.

섬을 다녀보면 보건진료소의 건물이 가장 잘 지어졌음을 느낀다.

푸른 하늘 아래서 간재미가 말라가고 있다.

꾸덕꾸덕 마르면 외지에 나가있는 자녀들에게 보내질 것이다.

앞짝지는 동남향이라 겨울철의 북풍이 닿지 않아 온난하다.

여름철의 태풍은 바로 앞에 있는 대둔도가 막아준다

배들이 어머니 품속처럼 마음 놓고 드나드는 천혜의 항이다. 

홍어의 섬답게 문패도 홍어 모양으로 만들었다.

예전에는 다물도가 홍어잡이의 근거지였고 한다.

당시에는 흑산도 홍어라 불리지 않고 다물도 홍어로 불렸다.

마을 뒤뜰 언덕에 자리한 흑산성당 다물도 공소를 찾아갔다.

흑산 권역에는 천주교회가 많은데 작은 섬에도 공소가 세워졌다.

뒷짝지에서 나는 몽돌을 골격을 갖추는 뼈대로 삼았다.

해변과 언덕을 수없이 오가며 돌을 이고 진 주민의 수고로움이 전해온다.

공소 안으로 들어갔더니 사람의 체취가 느껴지지 않았다.

'돈섬'으로 불리는 부자섬인데도 방치되어 있는 느낌이다.

섬에서 종교는 거친 환경을 이겨내는 힘이었으리라.

그러나 이제 살만해지니까 주님을 멀리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공소의  출입구 위에  '다촌리천주교회'라고 씌여 있다.

일제강점기에 다촌리(多村里)라는 지명이 혼용되었다.

이젠 과거의 흔적을 더듬는 시대적 산물이 되었다.

후손이 뜻과 염원을 담아 선대로부터 불렸던 지명인 '다물도'로 바꿨다.

마을 어르신께서 길을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숲속을 여러번 헤맸다.

앞짝지해변에는 정자가 세 개나 있어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장고의 잘록한 가운데 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 중간에 나 있는 골목길로 곧장 가면 바로 뒷짝지해변이다.

만이 깊숙한 편이고 잔자갈이 널려 있는 호젓한 해변이다.

다물도는 흑산면 11개 섬 중에서 가장 여유 있게 살아간 섬이었다.

당시에는 흑산도나 홍도는 다물도 덕분에 생계를 꾸릴 만큼 평범한 섬이었다.

거센 바람에 맞서며 자란 나무가 굴곡이 심한 섬 사람들을 닮았다.

폐교된 흑산초등학교 북분교장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이승복 소년상과 정재수 효자 조각상이 을씨년스럽다.

잡초가 무성한 운동장에서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오후 1시에 출발하는 엔젤호를 타고 흑산도로 나왔다.

다물도를 끝으로 흑산군도의 여섯 개 섬을 모두 탐방하였다.

흑산도는 많은 인물이 유배생활을 했던 섬이다.

유배와 절망의 땅이라 여겨 바닷물도 검게 변한 곳이라 표현했다.

실제로는 선비들의 정신적 쉼터로서 강인한 삶의 체험지라 할 수 있다.

신들의 정원을 지나 해안길을 따라 걸어갔다.

읍동 앞바다에는 작은 무인도 하나가 있다. 옥섬(獄島).

과거 흑산도 관아에서 죄수들을 수용하던 감옥 섬이었다.

그러나 다리를 놓는 바람에 옥섬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말았다.

거대한 예수상이 죄인을 가두었던 옥(獄)섬을 바라본다.

죄지은 자를 사(赦)해 주시는 예수상의 배치는 절묘하다.

바다와 하늘을 다 품을 듯이 양손을 벌리고 있는 예수님이 자애롭다.

흑산성당에 '묵상의 집'이란 건물이 여러채 들어섰다.

천주교 신자뿐 아니라 일반 관광객에게도 빌려준다고 한다.

흑산성당이 등록문화재 제759호로 지정됐다.

서남해안 섬 지역에 천주교가 전파된 과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흑산도에 본격적으로 복음이 전파된 것은 정약전 사후 130여 년 만이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흑산시장 먹거리촌을 찾았다.

유난히 손님이 많은 싱글벙글식당으로 들어갔다.

잘 삭은 홍어회 안주로 순희막걸리를 마셨다.

역시 국산 홍어는 쫄깃쫄깃하고 찰진 맛이 있었다.

흑산도의 노을빛은 영산도의 그것과는 달랐다.

타오르는 불꽃은 바다와 산과 내 마음까지도 태워버렸다.

이제는 목표를 이루었기에 흑산도에 들어올 일이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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