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힘
The Energy of Prayer
[5]
명상과 치료
명상(산스크리트어로는 ‘디야나’dhyyana, 일본어로는 ‘젠’zen)은 불교 수련의 골수(骨髓)다. 명상의 목적은 수련자가 실재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깨달음에 우리를 불안, 근심, 우울에서 해방시킬 능력이 있다. 그것은 이해와 자비를 생산하고 삶의 질을 높여 우리와 주변 사람들에게 자유, 평화, 기쁨을 안겨줄 수 있다.
특별히 20세기 막판에 이르러 서양 사람들이 명상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서양의 물질적 위안들로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데 충분치 못했다. 우리의 걱정, 관심, 문제들은 영적인 삶을 살아야만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이 곤경에 적응하는 길을 불교와 명상수련이 많은 사람들이게 보여주고 있다.
좌선 명상이 가장 널리 알려진 명상법이긴 하지만 우리는 걷기, 서있기, 누워있기 같은 자세로도 명상할 수 있다. 빨래하고 장작 패고 채소밭에 물주고 자동차를 운전할 때,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떤 자세를 취하든지 마음 챙김과 집중과 통찰의 에너지가 우리 몸과 마음을 감싸고 있으면, 그러면 우리는 명상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명상수련을 위해서 절이나 교회나 수련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 사회생활, 직장 출근, 가족 돌보기도 명상수련의 좋은 기회들이다. 명상은 몸과 마음을 활기차게 해주고 치료해주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수련자와 그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삶을 되돌려준다.
명상의 세 가지 에너지원(源)
명상은 세 가지 에너지원(源)인 마음 챙김, 집중, 통찰을 만들어낸다. 마음 챙김은 지금 이 순간 우리 몸과 마음과 주변 환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깨어있도록 도와주는 에너지원이다. 제대로 옹글게 말하면 ‘바른 마음 챙김’(Right Mindfulness, samyak smrti)이다. 현재 순간 우리 몸과 마음과 환경의 장(場)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다양하고 광대하다. 그 모두를 한 순간에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뚜렷이 드러나 보이거나 다른 어떤 것들보다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호흡에 마음을 모아 들숨을 들숨으로, 날숨을 날숨으로 알아차리는 것을 호흡에 마음 챙기기 수련이라고 부른다. 발걸음에 마음을 모아 방바닥이나 땅바닥에 놓이는 발자국 하나하나를 인식하면 그것을 발걸음에 마음 챙기기 수련이라고 부른다.
만일 화를 내면서 자기가 화를 내는 줄 알아차리면 화에 마음 챙기기 수련이라고 부른다. 화에 마음 챙기기 수련을 할 때 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두 종류의 에너지가 있다. 첫째는 화를 내는 에너지고 둘째는 마음 챙기기 수련으로 생성되는 바른 마음 챙김의 에너지다. 둘째 에너지로 첫째 에너지를 인식하고 그것을 품어 안아준다. 이 명상을 5분이나 7분만 계속해도 바른 마음 챙김 에너지가 화내는 에너지로 침투해 들어가고, 화내는 에너지의 일부가 다른 에너지로 변환될 것이다.
마음 챙김 에너지는 집중 에너지를 수반한다. 집중은 통찰 에너지를 일으키고 통찰은 화를 이해, 수용, 자비, 화해로 바꿔놓을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 마음은 과거를 생각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몸은 현재에 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바른 마음 챙김은 우리 마음을 몸한테로 데려와서 지금 여기에 있도록 도와주는 에너지다. 그런 식으로 지금 여기에 있으면 우리 안팎에서 벌어지는 온갖 경이로움에 접할 수 있다.
명상의 정신으로 볼 때 삶은 진실로 지금 여기에만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과거는 이미 가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삶은 오직 현재 순간에만 있는 것이다.”(주, 바데카랏타경, 마즈히마 니카야 131.) 현재 순간의 경이로움에 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활력을 얻고 치유된다. 바른 마음 챙김 에너지가 단단해질 때 그것으로 우리의 괴로움과 아픔, 분노와 증오, 탐욕, 폭력, 질투, 절망을 인식하고 그것들을 품어 안아줄 수 있다. 그때 우리는 그것들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게 된다. 현재 순간에 평화로이 거하는 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치유효과를 안겨줄 수 있고, 우리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집착의 발톱에서 그리고 미래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에서 우리 자신을 데리고 나올 수 있다.
마음 챙김의 네 가지 장(場)
마음을 챙긴다는 것은 언제나 무엇에 대하여 마음을 챙긴다는 말이다. 마음 챙김에는 반드시 대상이 있다. 마음 챙김의 대상에 네 가지 카테고리가 있다. 우리의 몸, 느낌, 마음 그리고 지각의 대상들이다. 이 네 가지 장(field, 場)을 ‘마음 챙김의 네 기관들’(Establishments)이라고 부른다. 마음 챙김 에너지가 몸을 인식할 때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몸으로 돌아와서 몸을 돌보고 몸을 쉬게 해주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몸의 조직을 풀어준다.”고 말한다. 우리 몸의 스트레스와 신경조직을 풀어주는 데 매우 효과적인 수련법이다. 우리는 앉거나 누워서 이 수련을 할 수 있다. 이 수련은 우리 몸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치료하도록 도와준다. 처방을 받아서 약을 복용하는 중이면 몸을 풀어주는 이 방법이 더욱 신속한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몸에 대하여 마음 챙기는 수련은 몸에 독소가 스며들지 못하게 해준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로이 걷고 서고 일하고 움직이게 도와주며 일상생활의 질을 높여준다. 느낌에 대하여 마음 챙기는 수련은 우리로 하여금 순간마다 자기의 감정을, 그것이 기분 좋은 것이든 불쾌한 것이든 아니면 기분 좋지도 불쾌하지도 않은 것이든,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도와준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인식하다”는 우리가 감정들의 근원에 이르러 그 본질을 알고 그것을 바꿀 수 있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예컨대, 마음 챙김 에너지로 우울증 증세를 인식할 수 있으면 그것을 초래한 멀고 가까운 원인들을 알기 위해서 우울증의 깊은 뿌리로 들어가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마음 챙김으로 우울증을 들여다보고 우리 마음을 이끌어 활력을 주고 치유해주는 능력을 지닌 현상들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우울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 또 우리는 마음 챙김으로 우리를 긴장, 불안, 우울한 상태로 끌어들이는 사건, 모습, 소리, 생각들에 휘말려들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켜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우울증이 지속되어 그 독성이 몸에 스며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불교 심리학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정신적 응어리(mental formation)라고 부르는 쉰한 가지 정신적 현상들이 있다. 거기에는 사랑과 관용 같은 긍정적 마음 상태, 분노와 절망 같은 부정적 마음 상태, 사려 깊음과 후회 같은 미결의 마음 상태들이 포함된다. 그 정신적 응어리가 어떤 것이든 간에 마음 챙김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왜 어디에서 일어났으며 우리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집중과 통찰의 힘으로 우리는 긍정적이고 기분 좋은 감정을 주목하고 그것을 즐기며, 부정적이고 불쾌한 감정을 바꿀 수 있다. 느낌이 중립적일 경우에는 마음 챙김이 그것을 기분 좋은 느낌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치통이 있을 때 우리는 불쾌한 느낌을 받는다. 치통만 사라지면 기분 좋은 느낌일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평상시 치통이 없을 때 우리는 기분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는 중립적인 느낌이 있을 뿐이다. 치통이 없다는 이유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자기한테 치통이 없다는 사실을 깨어서 알아차릴 때 그 알아차림이 우리로 하여금 중립적인 느낌을 행복한 느낌으로 바꿔놓도록 도와줄 것이다.
서양에서 통증과 우울증을 치료하고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데 마음 챙김 수련을 활용하는 장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예를 들어, 매사추세츠 의과대학 존 카밧-진 교수는 ‘스트레스 절감 클리닉’이라는 이름으로 마음 챙김 명상에 근거한 치료 프로그램을 주관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수련자들은 통증과 스트레스와 질병을 매우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로스앤젤리스 캘리포니아 대학이나 하버드 대학의 규모가 큰 의과대학들도 정신적 육체적 질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명상의 역할을 연구하는 부서들을 두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마음/몸 의학연구소’는 허버트 벤슨 교수가 창설했는데 명상을 가르치고 연구하여 그 결과를 치료에 적용시키고 있다. 지난 35년간 이 연구소는 중단되지 않고 운영되어왔다. 벤슨 교수에 따르면 수많은 과학자, 심리학자, 교육자, 의사, 간호사들이 이 연구소에서 수준 높은 훈련을 받았고 계속해서 연구 프로그램을 이끌며 여러 분야에서 많은 것을 발견하고 있다. 그들은 명상이 치료에 미치는 효과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상당수의 의료 프로그램이 마음의 긴장을 풀어줌으로써 병을 치료하고 증상을 완화시키는 효과적인 방법들을 개발해내었다.
지난 30년 동안 하버드 대학 의료진들의 여러 실험실에서 몸과 마음이 서로 주고받는 영향의 결과를 조직적인 방법으로 조사 연구하였다. 그래서 입증된 것은, 사람들이 성경의 한 구절이나 명상 지도자의 말이나 그냥 성스러운 소리라도 그것을 반복해서 들으면 장애가 있어도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고 정신적인 긴장과 함께 시작되는 변화에 반대되는 긍정적인 신체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연구 프로그램들은 명상수련이 가져다주는 변화의 혜택들을 증명해주었고 그것들이 고혈압, 불규칙적 심장 박동, 만성통증, 불면증, 발기부전 따위 증상들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마음 챙김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장(場)은 산, 강, 나무, 사람, 사물, 사회 같은 인식 대상들에 대한 마음 챙김이다. 마음 챙김, 집중, 통찰의 에너지가 강할 때 우리는 실재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것을 꿰뚫어볼 수 있게 되고 큰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부처와 여러 성인들이 이 경지에 이르러 해탈이라고 부르는 큰 자유를 누렸다. 우리도 명상수련을 하면 그 자유에 이를 수 있다. 비록 우리의 자유가 아직은 크지 않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숱한 착각과 편견들을 소멸시킬 수 있고 전처럼 그렇게 많은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삶에서 상당한 기쁨과 평화를 맛보고 있다.
뒤엉킨 매듭들
특히 명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내면의 매듭들, 주체성 콤플렉스(identity complexes)를 해소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족쇄들이 우리를 지금 이 순간에 현존할 수 없도록 만든다.
내면의 매듭들은 우리 의식의 깊은 곳에 엉켜있는 미혹, 억압, 두려움 그리고 불안의 집적(集積)이다. 그것들은 우리를 묶어 실제로는 하고 싶지 않은 말과 행동과 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면의 매듭들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을 적절히 챙기지 못해서 씨가 뿌려지고 자라나는 것들이다. 열 가지 중요한 내면의 매듭들이 있다. 탐욕, 증오, 무지, 거짓, 의혹, 육신을 자기로 알고 집착함, 지나친 견해와 선입견, 허례허식에 매달림, 영생불멸에 대한 갈망, 모든 것을 현상유지하려는 욕망이 그것들이다. 이 열 가지 족쇄를 다른 것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능력에 우리의 건강과 행복이 달려있다.
내면의 매듭들이 우리 의식 안에서 나타날 때 마음 챙김이 그것들을 알아볼 수 있다. 이 내면의 매듭들은 우리 부모와 조부모들이 물려준 습관적 에너지로 과거에 형성된 것들이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매듭의 뿌리를 찾고자, 심리학자들처럼, 과거로 돌아가서 기억들을 헤집어볼 필요는 없다. 마음 챙김 에너지에는 내면의 매듭이 저를 드러내려고 할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 뒤엉킨 매듭의 뿌리를 들여다보는 힘이 있다.
명상수련은 우리로 하여금 존재하는 모든 것이 안으로 연계되어 있고 서로 의존되어 있음을 보게 도와준다. 인간이든 다른 무엇이든, 스스로 생겨나서 독자적으로 존속하는 물건은 없다. 이것은 저것에 의존하고 한 물건은 다른 물건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존속한다. 이것이 상호내재(interbeing) 또는 무아(無我, non-self)로 불리는 상호의존성에 대한 통찰이다. 무아는 항구적으로 동떨어져 존재하는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모든 사물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버지와 아들은 결코 동떨어진 두 실체가 아니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고 아들은 아버지 안에 있다. 아들은 미래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연장(延長)이고 아버지는 근원으로 돌아가는 아들의 연장이다. 아들의 행복은 아버지의 행복에 연결되어 있다. 아버지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들의 행복은 온전한 것일 수 없다. 모든 사물의 본성이 자아-없음이다. 동떨어지고 독립하는 자아란 없는 것이다.
심리치료학에서는 자기-존중의 결핍을 하나의 질병으로 본다. 마음 챙김 수련에서는 자기-존중의 결핍과 과잉을, 자기를 남과 똑같이 생각하는 것과 함께, 질병 또는 불교에서 말하는 콤플렉스로 본다. 이 세 가지 콤플렉스가 모두 동떨어져 존재하는 자아가 있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다. 이들 모두가 자만(自慢, pride), 더 좋다는 자만, 더 나쁘다는 자만, 똑같다는 자만에 근거한다. 우리가 무아에 대한 통찰을 얻었을 때에만 분노, 질투, 증오, 수치심에서 생겨나는 온갖 고통이 완전하게 바뀔 수 있다. 이것이 명상으로 이루어지는 치유의 바탕이다.
11세기 베트남 선사(禪師) 투옹 치우는 우리가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면 명상수련이 더 쉬워질 것이라고 가르쳤다. 불교 유식론(唯識論)은 여덟 종류의 의식을 말한다. 다섯 가지 감각의식(눈, 귀, 코, 혀, 몸), 현재의식, 마나스(독자적으로 영구히 존속되는 것이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자아-없음에 반대하는 에너지) 그리고 잠재의식이 그것들이다.
우리의 깊은 욕망, 두려움, 적개심이 잠재의식 안에서 억압당할 때 그것들은 자라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는 데 필요한 산소와 물을 공급받지 못한 씨앗처럼 되고, 우리는 그 봉쇄의 결과가 몸과 마음에 여러 가지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정신적 응어리들은 억압을 당해도 여전히 우리를 묶고 이끌 힘이 있어서 매우 강력한 내면의 매듭들로 된다. 우리는 그것들이 위로 떠올라 현재의식에 나타나지 않기를 희망하면서 그것들을 무시하는 습성이 있다. 그것들이 망각 속에서 소진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아프고 기죽게 하는 느낌들을 직면하려 하지 않는다. 현재의식의 영역을 잡동사니들로 가득 채워서 의식의 공간을 모두 차지함으로써 바닥에 깔려있는 아픈 느낌들이 위로 올라올 자리가 없기를 꾀한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보고 라디오를 듣고 책과 신문을 읽고 수다를 떨고 도박을 하고 모든 것을 잊겠다며 술을 마신다.
혈액순환이 순조롭지 못할 때 여러 가지 증상이 몸에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정신적 응어리들이 억눌려서 제대로 순환되지 못할 때 몸과 마음에 여러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억누르기를 멈추고 욕망, 두려움, 분노 같은 마음의 응어리들을 알아보아서 그것들을 바꿔놓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배워둘 필요가 있다. 명상을 통하여 마음 챙김 에너지를 기르는 것이 이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매일의 명상수련으로 마음 챙김 에너지를 기르면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알아보고 껴안아주고 그것들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정신적 응어리들을 억지로 눌러서 아래로 내려 보내는 대신 그것들을 알아보고 껴안아줄 때 그 부정적인 에너지가 훨씬 약해진다. 정신적 응어리들에 대하여 5분에서 10분만 명상해도 도움이 된다. 그것들이 다음에 또 나타날 때 다시 알아보고 껴안아주면 더 많이 약해져서 잠재의식 속으로 돌아간다. 이와 같이 수련하다보면 더 이상 우리는 그것들을 전처럼 아래로 억누르지 않게 된다. 우리 마음속에서 감정의 순환이 다시 순조로워지고 몸을 경색시키는 심리적 콤플렉스들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다.
참된 행복
마음 챙김은 무엇보다도 앞에 있는 대상을, 치우침 없이 판단 없이 그리고 그것을 탐내거나 경멸하지 않고서,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우리 몸에 어떤 통증이 있다고 하자. 마음 챙김으로 우리는 그 통증을 인식한다. 당신이 하던 기도하고는 많이 다르겠지만, 자리에 앉아 명상하면서 통증이 거기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기도다. 집중과 통찰의 에너지로 우리는 그것의 무게와 그것이 몸에 있게 된 원인을 알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 챙김과 집중이 가져다주는 이해에 근거하여 그것을 치료할 수도 있다. 걱정거리가 너무 클 경우 좋지 못한 상상을 할 때가 많이 있다. 걱정거리에 상상으로 만든 이야기를 보태면 그것들이 마음에 스트레스를 주고 통증은 더욱 커진다. 암이 아닌데 암이라고 상상하여 먹지도 자지도 못할 만큼 걱정이 태산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럴 때 통증은 배가되어 우리를 더욱 심각한 상태로 이끌어간다.
풋타만사경(經)에서 부처님은 두 화살을 예로 든다. 첫 번째 화살을 맞은 바로 그 자리에 두 번째 화살이 꽂히면 아픔은 두 배가 아니라 열 배로 커질 것이다. 우리의 상상과 염려로 두 번째 화살이 날아와서 우리를 해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돈, 명예, 권력, 섹스 같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을 추구하면 참된 행복에 이를 수 없다. 오히려 자기와 남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줄 따름이다. 사람들은 온갖 욕망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밤낮으로 그것들을 채우려 하고 그래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롭지 못하면 평안하지 않고 행복감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욕망하는 것이 별로 없으면 단순하고 건전한 삶으로 만족하고 일상의 매순간을 충실하게 살면서 가까운 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피게 된다. 이것이 참된 행복의 비결이다. 너무나 많은 현대인들이 감각적 욕망을 채우는 데서 행복을 찾고 있다. 그리하여 고통과 절망의 양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숲속의경(經)은 욕망을 덫이라고 말한다. 욕망의 덫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비통해지고 모든 자유를 잃고 참된 행복을 맛보지 못한다. 두려움과 불안 또한 고통을 만들어낸다. 단순한 삶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할 만큼 이해를 하고 그래서 지금 있는 것으로 만족하면 더 이상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불안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사는 이유는 내일 가진 것을 잃거나 월급을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금 소비하고 많이 행복해지는 데 오늘의 현대문명에서 헤어나는 유일한 길이 있다.
이 책은 왜 기도하느냐는 물음으로 출발하였다. 어쩌면, 실제로, 기도의 모든 에너지가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보다 큰 무엇에 연결되어서 참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우리의 단순한 욕망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침묵으로 하든, 찬가로 하든, 명상으로 하든, 기도는 우리 자신을 현재 순간으로 데려와서 여기 있는 평화에 접목시키는 방편이다. 그것은, 동시발생으로, 우리를 우주와 영원에 접속시키는 하나의 길이다. 우리의 참된 행복은 현재 순간을 온전하게 의식하고 우주의 다른 모든 것들과 우리가 연계되어 있음을 깨치는 데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