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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칼럼

하나님 나라 시민들의 태도(마5:38-48), 산상수훈 시리즈 원고 나눠요.

작성자peter|작성시간21.07.05|조회수150 목록 댓글 0

하나님 나라 시민들의 태도(마5:38-48)

 

1. 산상수훈 말씀을 나눕니다. 산상수훈은 산 위에서 예수님이 하신 설교들을 모은 것이에요.(마태복음5-7장) 주옥같은 주님의 말씀들입니다. 매우 수준 높은 말씀들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이 가질 마음 자세-태도를 말씀해요. 세상 나라 사람들과 다른 하나님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요. 이렇게 살면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누릴 수 있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팔복으로 시작해서 5:21-7:14에 열 가지 주제로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이 가운데 오늘은 보복의 문제와 원수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해서(다섯째와 여섯째 주제)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주제들도 예외 없이 구약의 율법을 인용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등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이 계명들은 21:24, “눈으로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24:20,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19:21,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모세의 이 율법은 타문화권과 비교해서 당시로서는 인권을 고려한 매우 수준이 높은 법(고등법, higher law)이었습니다. 잔인해 보이는 이 법이 고등법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인의 후손 가운데 라멕의 이야기가 성경에 나와요.

 

2. 라멕이 죄를 짓고 아내들에게 자랑했습니다. 4: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어느 범죄 드라마나 영화 이야기가 아니에요. 성경 스토리에요. 약간의 상처를 입었다고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 어린 소년을 죽이고 가족들 앞에서 자랑을 했어요.‘내가 이런 사람이야!’사람이 얼마나 악했는가를 나타내주는 모습이에요. 이런 상황들이 이어질 때,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동태복수법(동해보복)법을 주셨습니다. 비슷한 법으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이 있었어요. 주전 1,750년경 메소포타미아 고대 바벨론 함무라비 왕 때 282조로 구성된 법, 상당히 체계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중에 196조, 197조, 200조 세 항문이 동해보복법입니다. 탈리오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구약의 율법과 다른 것은 함무라비법은 귀족들에게만 적용되었고, 평민들이나 노예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고 해요. 예수님은 이 동해보복법에 대해 어떻게 해석과 적용을 하도록 가르치셨습니까? 39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로 시작하죠.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고대 세계의 수준 높았던 동태복수도 하지 말라고. 이보다 훨씬 수준 높은 하나님 나라 윤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고,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해주라고 하셨어요.

 

3. 이어서 예수님이 여섯 번째 주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인용하신 구약의 율법은 무엇인가요?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이 율법은 레19:18과 이스라엘의 오랜 전통 가운데 내려온 것입니다. 정확하게 문자로 일치하는 말씀은 없지만 유추할 수 있어요.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니라.”(신6:5,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과 함께 율법을 대표하는-요약해주는 말씀) 30:7, “네 하나님께 여호와께서 네 적군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를 내리게 하시리니.

 

갈등심화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세상 윤리입니다. 이와 다른 하나님 나라의 윤리에 대해서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가르치셨습니까?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하나님 나라의 윤리가 이렇게 다릅니다. 다르긴 달라야 하는데,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아니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는 것이 가능합니까? 주님의 모든 말씀은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행하는 일들이었어요. 가상적인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요. 뺨을 때리는 폭력부터, 옷을 저당잡는 일,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는 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원수의 감정을 강하게 느끼는 대상에 이르기까지요.

 

4. 39절, 예수님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 오른손잡이가 오른편을 치려면 손바닥이 아니라 손 등으로 때려야. 얼마나 인격 모독이요, 굴욕을 당하는 순간이었어요. 이렇게 비참한 순간에도 주님은 왼편도 돌려대라고 하셨어요. 주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폭력을 행사하는 자에게 폭력으로 복수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 수준과 똑같지 않고 훨씬 달라야 하는데, 그것은 폭력을 폭력으로 응수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40절, 주님은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를 향한 담보물 이야기에요.

 

고대 세계에서는 옷이 귀했어요. 속옷이나 겉옷도 빚을 질 때 담보물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옷을 담보로 할 때, 겉옷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겉옷은 낮에는 햇빛을 가리는 옷이 되고 밤에는 덮고 자는 이불이 되었어요. 겉옷을 담보물로 받을 때는 저녁이 되면 돌려주는 것이 율법이었습니다. 22:26-27,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서 이런 기본적인 법의 보호도 스스로 포기하라고 하셨습니다.

 

5. 41절, 예수님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라고. 억지로 가게 하다는‘앙가류에오’는 페르시야에서 온 말로 강제징용을 의미합니다. 로마 군대가 이동할 때 강제 노역으로 한 밀리온(마일, 3리)을 끌고 가서 다음 마을 사람과 교대를 시켰어요. 예수님은 로마 제국이 이렇게 부역을 시킬 때 거부하지 않을뿐더러 5리가 아니라 10리까지 자원해서 수고해주라고 말씀하셨어요. 주님은 세 가지, 육체-재산-자유를 포기함으로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알게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자세-삶의 진지한 태도를 보일 때 그들이 질문할 것입니다. 너는 왜 이처럼 수모를 당하면서도 굳이 이렇게 하느냐? 그때,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라. 복음-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기회가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실마리

42절, 예수님은 계속해서 네게 구하고 꾸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구하고 꾸는 자는 내게 갚을 수 없는 형편에 있는 경우도 있어요. 주님은 그렇다 하더라도 꾸어주라고 하셨어요. 하나님께서도 구하는 자에게 주듯이.(마7:7-8) 44절,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던 청중들에게 원수는 로마 제국이나, 로마 제국의 하수 역할을 하는 자들(세리들), 또 개인적으로 괴롭히는 사람들 등 다양했습니다. 이들을 도리어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요. 도무지 세상 윤리로는 이해하거나 용납할 수 없는 말씀을 예수님은 왜 하셨을까요?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라.”

 

6.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주님의 하나님 나라 가르치심인 산상수훈을 따라 사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온전하신 하나님과 같이 우리도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는 세상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곳입니다. 이곳을 죽어서 갈 천국에서만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누리라고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셨습니다. 세속인들과 같이 권력과 권세를 통한 영광을 누리는 방식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십자가와 같은 철저한 희생과 사랑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의 실체를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서 말씀하셨어요.

 

복음 제시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는 우리가 실천을 통해서 그 나라를 직접 누리며 살라고 하십니다. 당시 말씀을 듣던 청중들이 바로 깨닫고 실천하지 못해도, 차차 그들이 알고 누리기를 우리 주님이 갈망하셨습니다. 산상수훈 말씀을 직접 들었던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이 말씀을 깨닫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당시 청중들이나 오늘 우리에게도 산상수훈은 너무나 부담스럽습니다. C. S. 루이스는 산상수훈 말씀을 듣는 것은 그렇게 기쁘지 않다. 누가 망치로 자기 머리를 두드리는데 좋아할 사람이 있겠냐고 말했어요. 10가지 주제 가운데 순종하기가 가장 어려운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심은 유대인들만을 위함이 아니었어요. 온 인류를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범위는 유대 지경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7. 하나님의 통치는 온 세계 만민들에게 미칩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하나님은 선인만이 아니라 악인에게도 해와 비를 내려주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악인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에요. 악인들이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세요. 이것이 복음이에요. 엄청난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주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고 문안하라고 하십니다. 46-47,“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기대

복음을 듣고 받은 우리는 세리들보다 나은 사랑을 해야 합니다. 이방인들보다 넓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영접하고 문안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허공에서 구름을 잡는 듯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예수님은 듣는 이들이-예나, 산상수훈 설교단 아래에서나 오늘 이곳에서나-분명하게 들을 수 있게 말씀하셨어요.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 자들은 세리보다 나아야 한다. 이방인들과는 차별이 되어야 한다고요. 우리가 복음을 듣고 변화되고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지와 인식의 세계도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탈북자들의 이야기가 어제 신문에 보도 되었어요. 탈북을 왜 하게 되었느냐고 기자자 물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남한 드라마를 보고 남한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8. 드라마를 보면서 남한에 대한 인지-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해요. 북한에서는 남한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건물이나 자동차는 전시용이라고-실제가 아니고 세트장이라고 세뇌를 시킨답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볼수록, 저 많은 자동차들과 저 높은 많은 빌딩들이 세트장인가? 공항에 있는 수많은 비행기들도 전시용인가? 우리 드라마를 보면서 북한의 가르침이 거짓말이라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북한에서 배우고 세뇌된 것들이 얼마나 잘못되고 허무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인지와 인식에 변화가 오자, 탈북을 시도했어요. 본인이 먼저 나오고 이어서 한 명씩 아버지, 어머니, 오빠까지. 그들의 인지와 인식이 바뀔 때 탈북과정의 고통도 있었지만 끝내 자유를 누리는 새 삶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복음을 들음으로 우리의 인지와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수준으로 복음을 낮추면 안됩니다. E. 스탠리 존스는 미국 감리교 선교사로 인도에서 50년 이상, 오랫동안 사역을 했습니다. 그는 인도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면서 다른 종교를 비난하지 않았어요. 순수하게 예수님의 복음만을 전했어요. 그는 마하트마 간디와도 교제를 하고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존스가 남긴 명언이 있습니다.“인도인들에게는 예수님과 기독교가 같지 않다.”그가 인도에서 오래 살아보니, 인도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오늘날 기독교를 동일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9. 얼마나 참담한 말입니까? 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총칼을 들고 식민 통치를 하면서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수탈하면서, 한쪽에서는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했어요. 이것을 보던 인도인들이 기독교에 반감을 갖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한국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했다고 생각해보세요? 똑같은 일이에요. 오늘 한국교회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음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과 오늘 교회가 다르지 않고 같은 동일체가 됩니다. 우리가 잘못된 옛 생활, 옛 습관, 옛 종교에서 완전히 떠납시다.

 

금요일 저녁 나눴던 말씀을 기억하시죠? 하나님의 나라는 전략에 달려 있지 않고 태도에 달려 있다고요. 산상수훈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전략을 말씀하지 않고 태도를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주신 율법을 바로 알고, 주님이 산상수훈을 통해서 풀어주신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바로 알라고 하십니다. 이런 참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이 시간 일어나서 다같이 찬양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시다.(찬양: 주님 같은 반석은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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