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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칼럼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막12:1-12)-예수님의 비유 시리즈(포도원 농부 비유)

작성자peter|작성시간21.11.03|조회수469 목록 댓글 0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막12:1-12)

 

갈등

1. 예수님의 비유 시리즈를 나눕니다. 오늘은 포도원 농부 비유를 통해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나눕니다. 1,“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포도원은 우리나라 벼농사와 같이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음료-물이 부족한 곳이기에 포도를 통해 주 음료로 사용했던 때 이야기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평범한 농부라기보다 우리나라 만석지기와 같이 엄청난 땅을 소유한 대지주입니다.

 

대규모 농장을 소유하고, 소작농을 통해 포도원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산울타리로 자기 소유의 경계를 표시하고, 포도를 추수한 후 즙을 짜는 틀도 만들었어요. 포도원을 관리하고 관망하는 망대까지 다 갖추었어요. 농부들의 수고에 따라 포도 생산이 결정되었고, 주인은 멀리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2절, 때가 되었습니다. 추수 기간이 되었어요. 1년 동안 포도 농사를 잘 지어서 추수하였으니 소작농들에게 세를 받을 때가 되었습니다. 주인이 타국에서 들어올 수 없는 형편이라, 종을 보내어 세를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2. 당시 땅 주인들은 예루살렘에 사는 경우도 있었고, 외국에 사는 이도 있었고, 외국인도 있었습니다. 한 종을 보냈더니 3,“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소작농들이 주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겁 없이 일을 큰 사고를 쳤습니다. 신기한 것은 포도원 주인이 소작농들의 악한 행위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어요. 주인은 아무 말 없이 두 번째 종을 보냈습니다. 농부들은 두 번째 종에게도 세를 보내지 않았어요. 4,“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농부들의 태도가 점입가경입니다. 주인이 보낸 종을 무시하고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한 것은, 주인에게 행한 것입니다.

 

이쯤 되면 포도원 주인은 소작농들에게 벌을 주고 그들에게 세를 받아야 하는데 이번에도 주인은 아무 말이 없이 세 번째 종을 보냈습니다. 세 번만이 아니에요. 그 후에도 종들을 계속해서 보냈어요. 종들을 보낼 때마다 소작농들은 5,“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농부들의 자세는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고 주인이 보낸 종들을 험하게 대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소작농들이 무엇을 믿고 이렇게 악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갈등 심화

3. 농부들의 이런 만행에도 불구하고 포도원 주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가 이어집니다. 이제 한 사람을 더 보내겠다고 합니다. 그가 농부들을 심판하기 전에 보내는 마지막 남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6,“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그동안 종들을 보내며, 종들이 당한 일을 보고도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에게 관대합니다. 관대할 뿐만 아니라 이제 그가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겠다고 하고 있어요. 포도원 주인은 그가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며, 농부들이 내 아들은 존대할 것이라고 기대까지 하였습니다.

 

과연 포도원 주인은 이후에 아들이 어떻게 될 것을 알지도 못하고 아들을 보내려고 했을까요? 게다가 농부들이 자기 아들을 존대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과연 정상인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런저런 의문과 질문을 무시하고 포도원 주인은 그가 사랑하는 아들을 결국 농부들에게 파송했어요.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기대한 것과 같이 존대했습니까? 7-8,“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4.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농부들의 생각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매우 근시안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포도원 주인의 아들만 죽이면 포도원이 자기들 것이 될 것이라고 착각했어요. 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요. 그들은 주인의 아들을 죽인 후에 그들에게 다가올 심판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이었습니다. 이 어리석은 농부들은 욕심 때문에 상속자인 포도원 주인이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고 말았어요. 포도원 주인이 아들을 보냈을 때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었습니다.

 

포도원 주인 혼자만 모르고 이처럼 처참하게 자기 아들이 죽게 내버려 두었습니까?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이 그가 사랑하는 아들을 죽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후에야 주인이 그동안 그토록 미뤄오던 악한 농부들을 처단했어요. 9,“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농부들을 진멸하였고, 포도원은 다른 사람들에게 소작을 주었다는 이야기에요. 왜 포도원 주인은 종들의 희생은 물론, 그가 사랑하는 아들까지 희생하면서까지 악한 농부들에게 그렇게 오래 참으시고 관용을 베풀었을까요?

 

실마리

5. 이 비유는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픽션이에요. 이렇게 순수하고 관대한 포도원 주인-기업인은 세상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비유는 역사에 실제 일어난 사건입니다. 오늘 비유는 이스라엘 역사 이야기에요, 또 인류 전 역사 이야기입니다. 좁게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인들과 예수님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전해주고 있어요. 주님은 비유에 있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함이 드러납니다. 단 아홉 절의 말씀으로 인류사를 요약해주셨어요.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농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온 각 시대의 선지자들이에요.(세례 요한까지) 포도원 주인의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도록 율법-말씀을 주셨습니다. 농부들이 포도원 주인과의 계약대로 일하듯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따라 살아야 했어요. 그렇게 사는 것이 인류가 행복하기에.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뜻-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살던 때보다 그렇지 못한 때가 많았어요.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선지자-나비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자(대변인)입니다.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할 때는 나라가 평안하고 안전했어요.

 

6. 다윗 왕 때와 히스기야, 요시야 왕 때.(3대 왕) 히스기야 왕은 유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유약한 리더십 가운데도, 이사야 선지자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유다 왕국은 평안했어요. 당시 세계를 호령하며 위협하던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위협하며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한다마는 소용없는 일이라고. 잔인한 정복자 산헤립의 군대는 화살 하나도 쏘지 못하고 18만 명의 대군이 하루아침에 전멸되었어요.(성전, holy war) 산헤립 왕 혼자 살아서 귀국하였다가 부하들에게 암살을 당합니다. 이 사건이 세계 최초의 대제국, 앗수르 왕국이 멸망하는 계기가 되는 신비한 역사가 되었어요. 하나님이 만국을 통치하심을 멋지게 드러내셨어요.

 

3대 왕과만 같았다면 이스라엘 나라는 영원했을 것입니다. 나머지 왕들은(남북왕조 모두, 솔로몬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말았어요. 오늘 비유의 농부들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심히 때리고, 상처를 내고 능욕하고,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이고 말았습니다. 여러 악한 왕들 가운데 유다의 요아스 왕은 성전에서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죄를 범했습니다. 대하24:19-20,“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이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7.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한 가지였어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말씀과 같이 선지자들의 경고를 듣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으므로,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요. 이 엄중한 경고에도 대하24: 21-22,“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성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더라,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요아스 왕은 태후, 아달랴의 반역 때 형제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제사장 여호야다 부부가(고모부-고모) 구사일생으로 살려낸 왕자.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은 잘 지내다가, 그가 죽고 타락하고 말았어요.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종들을 계속 보내듯이, 하나님은 오랜 세월 인내하시며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한 후, 150년 동안 남유다 왕국에 선지자들을 계속 보내시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셨어요. 왜 하나님은 이렇게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 만큼 오래 참으실까요? 오늘 비유와 가장 비슷한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는 성경의 본문은 창세기2-3장의 선악과 이야기입니다.

 

복음 제시

8.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을 향하여, 내 사랑하는 아들은 존대하리라고 기대한 것처럼. 하나님은 태초의 인간들에게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두고 기대하셨습니다. 농부들에게 어떤 믿을 것이 있어서 포도원 주인이 자기 아들을 존대하리라 기대하였을까요? 하나님은 최초 인간들에게 무엇을 기대하시고 선악과를 두셨습니까? 여기에 엄청난 복음이 있습니다. 선악과를 만들면 사람들이 먹을 줄 아시면서도, 하나님은 인간을 자유의지가 있는 인격적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어요. 선악과가 없었다면 인간은 기계적 존재, 로봇-AI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사람들이 오늘 비유의 악한 농부들처럼 양심도 없고, 비열한 존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나님은 특별한 계획을 준비하셨습니다. 3:15,“내가 여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여자의 후손이 오늘 본문 6절, “이제 한 사람이 남았다.”고 말씀한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일은 쉽게 결정한 것이 결코 아니에요. 누가복음에 보면,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포도원 주인이 크게 고민했습니다. 눅20:13,“어찌할까?”이 말씀은 하나님의 탄식을 전해줘요.

 

9. 선지자들을 보내고 또 보내고 수도 없이 보내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을 어찌할까? 하는 탄식-감정 표현입니다. 그래도 그들을 버릴 수 없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에요.(그의 완전한 인격)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시고 10-11,“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주님이 시118:22-23을 인용하시고 이 말씀이 이뤄지는 날-성취의 때가 도래한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시편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버림받고 이방 땅에 포로로 붙잡혀 갔다가 돌아와서 부른 노래에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포로에서 돌아와 머릿돌이 되었다는 의미에요.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건축자들이 돌을 버렸지만 그 돌이 새로운 건물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선언하셨어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예수님이십니다. 건축자들은 포도원의 농부들이고요. 농부들은 포도원이 있어야 하고, 건축가들은 돌이 있어야 하는데 돌을 버렸으니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씀이에요. 포도원 주인이 돌아올 때 농부들이 진멸된 것처럼,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을 주님이 예언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새로운 건물-새로운 공동체의 머릿돌이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10. 그동안 유대 종교인들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 새로운 공동체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종교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교회 공동체에게요.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유대 종교인들이 깨달았습니다. 12,“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자기들이 포도원 농부들인 줄 알았으면 회개해야 하는데, 그들은 회개는 하지 않고 주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어요.(회개치 못하는 죄인들의 모습-더 악을...) 그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기대

11. 우리는 포도원에서 일하는 농부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맡기셨어요. 우리가 그 일을 하면서 소작농이 주인에게 세를 바치듯이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직업에 충실해야 합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504주년 기념 주일이고 교회창립 5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우리교회 창립이 10월 31일, 종교개혁 기념일과 같아요. 이 시대 개혁교회의 모델이 되라고. 종교개혁가들은 직업을 소명이라는 말과 같이 사용하였어요. 지금 나의 직업이 하나님의 부르심-소명이라고요.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또 오늘 5주년을 보내고 6주년을 향해 또 나아갈 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달려갑시다.

 

6절,“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창립 5주년을 맞은 우리 교회가‘남은 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자기를 희생해서 인류를 구원하신 것처럼,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이 희생제물이 될 줄을 알면서도 우리에게 그 아들을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웃과 민족, 열방을 향해 나아갑시다. 이 마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 교회에게 주신 1차 소명, 포항 땅을 거룩하게 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2차 소명, 통일 후 선봉에 서는 하나님의 군대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말씀으로 축원합니다.(오늘 찬양: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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