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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칼럼

내 아들아 나도 안다(창48:1-22)-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 이야기

작성자peter|작성시간22.05.07|조회수153 목록 댓글 0

내 아들아 나도 안다(창48:1-22)

 

 

1. 창세기 시리즈-요셉 이야기를 나눕니다. 요셉 이야기이지만 47장부터 50장까지는 야곱의 이야기와 중첩됩니다. 요셉이 야곱을 20여 년 만에 만난 후 야곱이 유언을 남기고(47장),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고(오늘 본문 48장), 이어서 야곱이 죽기 전에 열두 아들(지파) 한 명, 한 명에게 유언 및 축복을 하고 죽은 이야기(49장), 50장은 야곱의 장례식, 요셉의 인생 이야기 요약과 요셉의 죽음 및 장례식으로 마칩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중첩되며, 그렇게 잘나가던 요셉도 아버지가 간 길을 따라 세상을 떠난 이야기입니다. 이때 요셉의 나이가 56세 정도였어요. 그가 110세를 살았으니 인생 절반을 지나는 때였지요.

 

요셉이 한때는 세상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온갖 고생을 하다가, 한때는 저렇게 잘나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잘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때가 되면 누구나 이 땅을 떠날 채비를 해야 합니다. 창세기는 이런 이야기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에게 아버지 야곱이 병들었다는 소식이 들리며 시작됩니다. 야곱의 임종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요셉은 아버지에게 혼자 가지 않고 두 아들을 데리고 갔어요. 야곱은 아들과 손자들이 오자 2절,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기력을 다해서 일어났습니다.

 

2. 야곱은 3절, 요셉에게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루스는 벧엘의 옛 이름이에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에서 두 차례 나타나셔서 동일한 약속을 주셨어요.(28장-형이 두려워 외가로 도망가는 길에, 35장-서원을 갚을 때) 그 약속은 4,“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게 되게 하리라.”이 약속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도 주셨고(17장), 아버지 이삭에게도 주셨던(26장) 것입니다. 하나님은 3대에 걸쳐서 가나안 땅이 그들의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실 것이고, 그들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성취되어간 이야기가 출애굽기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세요. 찬송 가사처럼요.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주 오 신실하신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말씀, 아들 이삭에게도, 손자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주시고, 끝내 모든 약속을 지켜주셨어요. 성경이 무엇이냐고 한 마디로 말하면,“약속과 성취”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말씀하시고 그 약속을 어떻게 지키셨는지를 증거해주는 것이 성경이에요.

 

3.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삭의 하나님-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의미는 모든 산 자의 하나님이세요. 야곱은 자신을 찾아온 아들 요셉에게 특이한 주장을 합니다. 5,“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느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야곱은 왜 여기서 자신의 손자 둘을 다른 아들들과 같이 내 것이라고 주장했을까요? 또 므낫세가 장자이고 에브라임이 차자인데, 순서도 바꿔서 말하고 있어요. 질서가 깨뜨러지는 모습입니다. 야곱이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었어요. 임종을 앞두고 허투루 말하는 부모가 없습니다. 지난 시간에 유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만.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이 내 것이 될 것이라는 선언은 요셉에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이후 열두 지파를 형성하는데 요셉은 한 지파가 아니라 두 아들을 통해, 두 지파를 형성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대신 레위 지파가 빠지고요. 레위 지파는 제사장 가문으로 각 지파에 흩어져 영적인 지도를 담당하게 됩니다. 야곱이 요셉의 장자인 므낫세를 먼저 부르지 않고 에브라임을 부른 것도 뭔가 예언적인 냄새가 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예고해주고 있어요. 그 실제가 이어서 나타납니다.

 

4. 야곱이 두 손자를 보고 9,“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말했습니다. 과거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눈이 어두울 때-앞을 보지 못하실 때,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야곱의 역할이 바뀌었어요. 이제는 자신이 눈이 어두워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육신의 눈으로는 구분하지 못하였어요. 10절, 이스라엘-야곱이 두 손자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아주었습니다. 야곱의 감정이 복받쳐 올랐습니다. 11절, 요셉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합니다.“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다.”고요.

 

요셉이 죽은 줄 알고 20년을 지냈었으니 아버지의 마음이 지금 얼마나 감격스러웠습니까? 그 후 다시 17년이 지나고 죽음을 앞두고, 다시 이 말을 거듭하였어요. 좋은 일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평생 잊어도 안 되고요. 이 은혜는 너무 크고 놀라운 것이었기에, 더욱 잊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야곱이 손자들을 축복하고자 하자 요셉이 두 아들을 아버지 가까이 나아가서 13절, 아버지의 오른손으로는 므낫세를 왼손으로는 에브라임에게 손을 얹어 축복을 하도록 준비했습니다. 혈통으로 장자와 차자를 구분해서요. 그런데 야곱은 14절, 팔을 엇바꾸어 얹었습니다.

 

5. 야곱의 오른손은 차자인 에브라임에게, 왼손은 장자인 므낫세의 머리에 놓고 축복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런 자세로 축복을 하자 요셉이 당황했습니다. 17절, 요셉의 마음이 기쁘지 않았어요. 요셉이 개입해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려고 했어요. 18절, 아버지여 이렇게 하지 마세요 므낫세가 장자이니 그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으시라고 했어요. 아버지 눈이 어두워 잘못을 한 것이라고 지적을 했어요. 누구라도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이때 야곱이 요셉의 말대로 하기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중요한 말을 했어요. 19,“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야곱이 임의로 축복을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렇게 축복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 축복 가운데 이뤄졌습니다. 이 일은 축복을 하는 야곱이 너무 잘 알고 경험한 일입니다. 역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역사의 주관자는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영원히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대신하지 못해요. 우리는 종말이 오기까지 여러 가지 제한안에 살아갑니다.

 

6. 시간도-건강도-능력도요.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초월하세요. 하나님은 어떤 것에도 제한받지 않는 완전한 분이십니다. 야곱이 태어나기 전에, 모태에 있을 때에도 이삭 부부에게 야곱의 미래를 예언하셨고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이제는 야곱이 손자들을 향해 예언을 선포하게 하시고, 후에 그대로 이뤄졌어요. 20절, 야곱이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는데, 훗날 므낫세는 작은 지파로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로 자랐습니다. 남쪽 유다는 유다 지파가, 북쪽 이스라엘은 에브라임이 통치하였어요. 사람들은 세상일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통치하신다고 표현합니다.

 

야곱은 요셉의 후손들이 400년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 대해서도 예언을 선포했습니다. 야곱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입에 말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입술을 사용하신 것이에요. 21절, 나는 죽지만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고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다.(너희는 요셉 시대 사람들이 아니고 한참 후의 후손들) 22절, 요셉이 후손들이 다른 형제들보다 땅을 더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두 지파-두 몫을 차지할 것입니다. 세겜 땅을 특정한 것도 특이하고요. 하늘로부터 온 예언은 정확합니다. 이 땅에 요셉이 묻히게 됩니다. 출애굽 때 그의 유골을 갖고 가서 그곳에 매장을 합니다.

 

7. 오늘 본문을 나누면서, 우리는 인생의 여러 면을 생각하게 됩니다. 한 세대가 가고, 또 다음 세대가 오는 이야기부터. 한 세대를 보내지만, 나도 다음 세대를 통해서 보냄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구적으로 이 땅에 머물지 못해요. 시간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유한성이 절망을 주기보다는, 제한된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고 몸부림하고 분투하게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참 행복한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소리를 때로 들어보세요. 그들의 언어를 들어보세요. 요즘 제 귀에 들리는 세상 사람들의 탄식 두 마디가 들립니다.

 

무엇일까요? 하나는‘불안하다’는 말입니다. 평안이 없다는 말이에요. 돈이나 집이나 차나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고요. 또 하나는‘나는 어느 때나 가야 행복하지?’하는 탄식입니다. 제가 이 말을 듣는 순간,‘아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의 공통된 언어-탄식’임을 느꼈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아요. 얼굴이 어둡지 않고 밝아요. 우리가 긍정적이라 그런 것이 아니고요. 영적인 세계를 실제 경험하며 사는 사람은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아요.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8. 세상의 행복 기준으로는 죽을 때까지 행복하지 못합니다. 이런 표현을 하는 사람들에게 해 줄 말이 있어요. 하나님께 나올 시간이 가까웠군요.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관계 회복이 이뤄지면 행복도 회복됩니다. 단순한 진리에요. 하지만 세상은 이것을 모르기에 방랑해요. 이런 사람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합시다. 우리 교회에 나오지 못해도 괜찮아요.

 

선교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오지 못해도 복음을 전하듯이, 타 지역에 살지만 복음이 필요하면 전하면 됩니다. 가까운 교회에 나가도록 권하고, 그곳에서 양육이 안 되면 우리가 지금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비대면 교인이 될 수도 있고요. 복음을 전한다고 지금 당장 듣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들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날까지 기다리고, 축복합시다. 하나님의 때에 그들도 이 진리를 알고 우리와 같이 누릴 수 있도록 이 시간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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