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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칼럼

요셉을 모르는 새 왕과 산파들(출1:1-22)-감히 애굽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산파들의 이야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눠

작성자peter|작성시간22.05.28|조회수824 목록 댓글 0

요셉을 모르는 새 왕과 산파들(출1:1-22)

 

 

갈등

1. 지난 시간까지 창세기를 나누었습니다. 성전 건축을 앞두고, 하나님의 새 창조를 기대하면서 뜻깊은 시간을 보냈어요. 창세기를 절반 즈음 나눌 때, 작년 4월 중순 건축을 완공하고 입당을 했습니다. 오늘부터는 출애굽기입니다. 출애굽기를 나누는 동안 성전 건축 후 개척기를 보내고 자립하는 교회로 올라서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떠났듯이 개척기를 떠나보내고 개척하는 교회를 돕는 교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출애굽기 강해를 마칠 때까지는 또 다시 기적이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부터 신명기를 모세 오경이라고 불러요. 모세가 기록한 다섯 가지 책이란 말이에요. 지금 우리는 다섯 책을 구분하고 있지만, 모세가 기록할 때에는 구분하지 않고 이어서 기록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의 히브리어 성경은,“그리고(또는 now 지금) 이들은”이렇게 시작합니다. 창세기 50장, 지난 시간에 나눈 것처럼 야곱과 요셉의 죽음 후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때는 요셉이 죽은 후 300년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6,“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요셉의 후예들에게 이때 큰 변화가 있었어요. 그 변화는 7,“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였더라.”하나님께서 아브라함부터 요셉까지 족장들에게 약속해주셨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전해줍니다. 5절, 야곱 시대에 70명에 불과했습니다. 요셉의 후예들이 이후 크게 번성하여 민족 규모로 자랐어요.

 

2. 이스라엘이 번성하는 것을 당시 애굽의 왕이 알았습니다. 8절 그 왕의 이름은 모르고,“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라고 합니다. 이 새 왕은 힉소스 족을 몰아낸 애굽의 18왕조 아멘호텝 2세로 추정됩니다. 요셉을 모른다는 것은, 요셉에 대해 정보를 몰랐다는 말이고요. 또 요셉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았다고 해도 그것을 무시했다는 말이에요. 애굽은 요셉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창세기에서 우리가 충분히 나눴습니다. 300여 년이 지났다고 해서 요셉이 행했던 일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이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을 크게 경계하고, 자유민들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전락시켰습니다. 게다가 남아들을 몰살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애굽 왕은 왜 이렇게 이스라엘을 가혹하게 대했을까요?

 

갈등심화

3.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이 이스라엘을 갑자기 자기들을 노예로 삼고 위협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을까요? 그들이 애굽 왕을 크게 두려워습니다. 13-14절,“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모세가 태어날 즈음,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루에 출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당시 이스라엘 인구가 200-300만 정도로 추산하면 하루 100명 이상은 태어났을 것으로 봅니다. 아이들 출산을 돕는 산파들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15, 십브라와 브아 두 명만 나오고 있지만요. 둘이서 매일 100명 이상 낳는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요셉을 모르는 왕은 산파들에게 엄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16,“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그런데 히브리인 산파들이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렸다고 합니다. 이 여인들이 무슨 배짱으로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애들을 살릴 수 있었을까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을 노예로 삼고, 남자 영아들을 살해하는 때에 말입니다. 이 여인들은 무기를 들고 싸우는 독립군도 아니었어요. 이 간 큰 여인들-산파들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실마리

4. 요셉을 모르는 새 왕, 아멘호텝 2세는 이스라엘이 번성하자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누가 애굽의 왕이었더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9-10,“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이스라엘 민족이 자기 땅에 와서, 한 민족으로 자라고 계속해서 성장해 갈 때에, 애굽 왕이 이스라엘을 경계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왕은 자유민이었던 이스라엘을 하루아침에 노예들로 전락시켰어요. 11절,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했습니다. 영화 십계나, 이집트 왕자를 보면 잘 볼 수 있어요.

 

이스라엘에게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요셉이 살아있을 때부터 그동안 이스라엘은 안전했습니다. 애굽의 곡창 지대-나일강 삼각주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며 결혼하고 아이들을 엄청나게 낳았어요.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의 위기를 보면, 사람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사람의 말은 다 믿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에게(교회)는 위기가 기회가 됩니다. 12,“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이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게 되었습니다.”교회사를 보아도, 교회가 박해를 받을수록 성장했습니다. 박해가 없고 잘 살 때, 타락했고요.

 

5. 왕은 이스라엘에게 더 무거운 짐을 주었어요. 14절, 흙이기기와 별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을 시켰는데 모두 엄하였습니다. 사람은 개인이나 국가나 이기적입니다.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는 사랑하지만 남은 업신여깁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타락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성이라고 말씀합니다.(딤후3:2) 애굽 왕은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번성하는 것을 막으려고 특단의 조치를 취했어요. 출산할 때에 산파들이 남자 아이면 죽이라고 명령했어요. 이때 감히 산파들이 왕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이 산파들의 용기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17, 21,“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산파들이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이들을 살린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 산파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경건과 같습니다. 경건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기도하고) 사는 것입니다.(야고보서를 보세요, 경건이 무엇인지 잘 가르쳐줍니다) 기도만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경건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에요. 요셉이 보디발 아내 앞에서 행했던 것과 같이요. 내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할 수 없다고 보디발 아내 앞에서 당당하게 선포하잖아요. 요셉의 용기가 이 마음-이 삶에서 나온 것입니다.

 

6. 산파들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 애굽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요셉이 보디발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처럼요. 하나님을 경외하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간 큰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산파들이 애굽 왕에게 당당히 말했습니다. 19,“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달리 건강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습니다.”산파들의 말을 듣고 왕이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이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사람이 용기가 없고 당황하면 지혜를 얻지 못하는데, 산파들은 침착하게 답변했어요. 110:10,“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하나님은 그를 경외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와 함께 하시고, 그들을 지켜주십니다. 21절, 산파들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습니다. 참 놀라운 일이 이때 일어났습니다.

 

복음

7.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이시고,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창조 전부터 종말 때까지, 이후 또 영원히 언제나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의 말씀도 언제나 동일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고 400년 뒤에 이뤄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의 경우는 그랬어요. 여인의 후손으로 이 땅에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는 창3:15의 말씀은 1,500년이 지나서 주님의 성탄과 더불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고 합니다.(벧후3:8)

 

우리의 시간개념으로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 말이지만, 하나님께는 실제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 때가 임박했습니다. 아직 모세가 탄생되기 전이지만요. 모세가 나고, 그가 80세가 되어야 출애굽은 시작됩니다. 다음 시간에 모세의 출생에 대해서 나눌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급하지만, 이스라엘은 아직 80년을 더 기다려야 출애굽이 시작되었어요. 이스라엘은 급해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정하신 때에 가서-가장 좋은 때에 그가 약속하신 것을 이루십니다. 모든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가 생각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이뤄집니다.

 

기대

8. 오늘 본문을 나누며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약속이 이뤄지기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으며 기다리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산파들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요셉처럼, 야고보처럼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이들처럼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살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무릎만 꿇으면-기도만 하면 안됩니다. 삶이 동반되어야 해요.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에요. 산파들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면, 우리를 지켜주시고 또 우리의 집안을 흥황하게 하실 것입니다. 산파들의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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