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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칼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눅14:25-33)-예수님이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내 제자가 되려면 말씀하신 내용과 의미, 적용을 나눔

작성자peter|작성시간23.09.18|조회수572 목록 댓글 0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14:25-33)

 

갈등

1.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열두 제자처럼 주님이 직접 부르시고 순종하여 따르던 자들이 있었어요. 여제자들 그룹도 있어서 주님과 늘 동행했습니다. 주님이 움직이실 때마다 최소한 20명은 되었습니다. 다수는 주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자신의 병을 고침받기 위해 몰려왔어요. 예수 선생은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고,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네! 입소문을 타고 유대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갔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명설교를 듣기 위해, 다른 이들은 주님이 행하시는 여러 기적을 보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설교나 그가 행하시는 일은 세상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이날도 예수님이 앞서가시는데, 어디서 왔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사람들은 오늘은 주님이 무슨 말씀으로 가르치실지, 어떤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실지 기대했습니다. 한동안 길을 가시다가 주님이 가던 길을 멈추고 몸을 돌이키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오늘 주님이 무슨 일을 행하실 것인지 서로 이야기하며 기대감에 부푼 눈빛으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침묵하시던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 26-27,“무릇 내게 나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는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인 자기 목적을 기대하며 주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적잖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를 미워하고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은 내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사람들에게 뜬금없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주님은 군중들 앞에서 열두 제자들을 확실하게 가르치시기 위해 말씀한 것인가요? 그렇지 않아요. 주님은 26, 수많은 무리들을 향하여 그들 모두가 듣도록 이 말씀을 하셨어요. 공동번역 성경은,“예수께서 동행하던 군중을 향하여 돌아서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주님은 이 말씀을 몇몇 제자들에게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셨어요.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의도가 무엇이었을까요?

 

갈등 심화

3. 예수님은 제자의 자격을 말씀하시며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망대를 세우는 이야기입니다. 망대-타워를 건축하는 사람이 그 비용을 미리 계산하고 공사를 시작하지 않느냐? 만일 예산을 마련하지 않고 공사를 시작하면, 건물 뼈대만-기초만-세우고 말 것이다. 그러면 보는 사람들이 다 비웃어, 이 주인이 공사를 시작하고 끝내 마치지 못했다고 할 것이다. 도로 가에 공사를 하다가 멈춘 부도가 난 업체들이 종종 보이는 것처럼요. 주님의 비유는 언제나 쉽고 간단합니다.

 

또 다른 비유는 전쟁 이야기입니다. 두 임금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니아가 싸우듯이요. 전쟁이 시작되면 군사력을 따져봅니다. 아군은 숫자와 적군의 숫자나 군비 등을 점검하지요. 아군이 만 명이고, 적군은 이만 명이 성을 향하여 진격해옵니다. 이때 적군을 맞이하는 임금이 적군의 절반의 군사들로 전쟁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지휘관들과 논의합니다. 우리가 적군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성 위에 있으니 싸울만하다 하면 전면전을 치를 것입니다.

 

4. 만일 우리가 성을 차지하고 있지만 두 배나 되는 적군을 맞이하여 승산이 없다고 논의하면, 성을 향하여 가까이 진격해오기 전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비유의 내용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은데, 예수님이 자신을 따를 제자의 자격 이야기를 하시다가 이 두 비유를 말씀하셨어요. 주님이 말씀하신 두 비유가 주님의 제자가 되기 원하는 이들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실마리

5. 성경해석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일은 문자적 해석입니다. 사람들 간의 대화도 마찬가지에요.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는지, 왜 그렇게 말하는지-화자(speaker)의 의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있어요. 예수님이 나를 따르는 제자는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를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문자대로 이해하면 오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주님이 누구를 미워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님만 사랑하고 다른 모든 이들, 가족까지도 미워하라고 하지않으셨어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같은 맥락을 전해주는 10:37을 보면 됩니다.“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주님은 부모나 자녀들을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고, 나보다 더...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실제 우리가 주님보다 다른 이를 더 사랑하면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가 돌아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6.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언제나 우선되어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말씀합니다. 일의 우선순위, 가치의 우선순위가 세상이나 혈통이나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12:1) 이때 아브라함이 하나님보다 고향을 더 좋아했다면 고향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친척과 아버지 집을 더 사랑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어요.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어요. 하나님이 부르신 지 25년 만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랜 기다림 끝에 선물로 주신 아들 이삭을 이후 약 17년 뒤에 번제로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스러운 일이었어요. 아브라함은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놀라운 순종을 했습니다. 그는 40여 년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확실하게 신뢰했어요. 하나님께서 내게 이 무거운 짐을 주시는 뜻이 있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그는 큰 고통과 부담 속에서도 결단했습니다. 아들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로요.

 

7.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진짜 아들을 죽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가 순종하는지 보시려고 시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진심을 보시고, 아들을 죽이지 말라 수풀 속에 양을 예비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인정한다고 선언하셨어요.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게 하리니...천하 만민이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약속하셨습니다.(22:17-18) 엄청난 복을 주셨어요.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가 되려면 대가 지불을 해야 함을 두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망대를 짓는 이야기와 전쟁을 대비하는 임금 이야기에요. 건축이나 전쟁은 함부로 덤빌 수 없습니다. 엄청난 비용과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르겠다고 몰려왔는데, 나를 따르는 삶은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주님은 사탕발림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따르게 하지 않으셨어요. 주님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주님을 따르는 길이 어떤 것인지 알고 나를 따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8. 예수님은 산상수훈-주님의 가장 아름다운 설교집, 하나님의 나라 윤리를 선포하시면서 결론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예수님은 부모와 가족만 아니라 내 목숨까지도 더 사랑하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망대와 전쟁 비유를 말씀하시며 33,“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나의 모든 소유까지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이것입니다. 역사에는 자기 목숨을 선교를 위해서 드린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순교자들이 세계에 이어지고 있어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자기 소유를 다 드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성 프란시스 등) 얼마 안 되는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이분들이 주님의 참 제자들이었어요. 주님은 이 말씀을 열두 제자만 듣기를 원하지 않으셨어요. 그를 따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요. 주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는 누구든지요.

 

복음 제시

9.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짐이 무거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생각해보면, 우리의 십자가는 너무나 가볍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감당할 십자가가 얼마나 무겁고 어려운 것인지 아셨어요. 주님은 그것을 아시면서도,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며 순종하셨어요. 주님은 하나님의 이 뜻을 따라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습니다.(10:9-10) 참 놀라운 주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은혜를 힘입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기대

10.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에도 제자들을 부르셨지만, 부활-승천하신 후에도 지금까지 그의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제자는 옛 사도들과 같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그의 나라를 전파하는 모든 이들을 말해요. 주님은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오늘 우리에게도 대사명-대위임령을 주셨습니다. 28:19-20,“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주님 앞에 사람들은 관객-무리, 혹은 군중과 제자들로 구분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자신이 관객인데 제자로 오해할 수 있어요.

 

내가 관객 또는 무리인지 제자인지는 오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비추어보면 드러납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요즘 많이 어렵습니다. 목회 데이터 연구소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2012년 한국 개신교는 전국민의 22.5%였는데, 점점 줄어들어 2032년에는(9년 후) 10.2%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총신대 신현우 교수는,‘교인의 숫자가 감소하는 위기는 참 교회를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밭에 알곡은 남고, 가라지는 빠져나가는 것은 교인의 숫자로 보면 교세가 약해지는 비극의 시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가라지가 걸러지는 정화의 시대일 수 있다.’

 

11. 지금은 침례교 목회자가 된 시인과 촌장 출신 하덕규는 가시나무 새를 불렀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한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중략)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하덕규 목사님이 작사 작곡한 이 노래는 과거 수많은 상처로 인해 마약 중독에 빠져 있었고 자신의 죄 많은 일상과

 

하나님 말씀 사이에서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영적 갈증을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시나무 넝쿨 속에 피 흘리는 예수님의 형상이 스쳐 가면서 악상이 떠올랐고, 10분 만에 이 곡을 완성했습니다. 이 노랫말처럼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서 주님의 쉴 곳이 없지는 않습니까? 내 자아가 너무 강해서, 주님의 제자가 되는데 걸림돌이 되지 있지는 않나요?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 찬송하며 기도합니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지 않게 하시고,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하소서.(오늘 찬양: 주는 완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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