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말씀&칼럼

십자가에 달리신 그 날(눅23:44-56)-성금요일 예배 메시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현장의 이야기 그 의미와 적용을 나눠요.

작성자peter|작성시간25.04.19|조회수61 목록 댓글 0

십자가에 달리신 그 날(눅23:44-46)

 

갈등

1. 오늘은 성금요일 밤입니다. 한 장의 그림처럼, 한 장면의 멈춘 영상처럼, 이 밤은 어두움 속에 서 있는 골고다 언덕을 우리 눈앞에 가져다 놓습니다. 바람은 잔잔하지만, 공기는 묵직합니다. 그 언덕에는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고, 가운데 한 남자가 머리를 떨군 채 조용히 죽어가고 있었어요. 햇살이 내리쬐던 하늘은 갑자기 먹구름으로 덮였습니다. 정오, 햇빛이 가장 밝아야 할 시간인데 세상은 이상하게 어둡고, 침묵이 무겁게 내렸습니다. 누군가는 조용히 땅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눈을 피한 채 자리를 뜨고, 몇몇 여인은 눈물 젖은 얼굴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말을 잃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그 어둠의 언덕으로 올라갑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죄의 대가가, 우리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곳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제, 그 어둠 속에서 시작된 한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셨는지, 그 밤은 어떻게 사랑의 밤이 되었는지, 함께 귀를 기울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 44-45절,“때가 제육시즘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2.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과 상황을 정확하게 전해줍니다. 이 복음서의 저자 누가는 의사였어요. 다른 누구보다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며 구체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육시는 당시 시간으로는 정오였습니다. 정오에-한 낮에 세상은 어두워졌습니다. 구시-오후 3시까지 세 시간 동안 일식도 아닌데 어두웠습니다. 오후 세 시가 되자 누가는 성소의 휘장-성소와 지성소 사이-이 찢어지고 46절,“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예수님은 성금요일 해가 뜨기 전에 유대 종교인들에게 의해 빌라도의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주님을 사형 선고를 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고, 오전 9시에 사형장인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에 주님이 달리셨어요. 주님이 오후 3시에 운명하시는 순간,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주님이 숨지시는 것을 보던 사형집행 책임자인 백부장이,“이 사람은 진정 의인이었도다.”다른 본문에는 백부장이,“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15:39, 마27:54) 성금요일에 빌라도의 재판과 예수님에게 사형 선교, 즉결 처형으로 이어진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누가가 후세에 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3.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 마지막 주인공이 등장했습니다. 50-51절,“공회 회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하나님은 모든 일을 즉흥적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오래전에 계획을 세우고 때가 되면 미리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택하여 준비시켰다가 주님이 정하신 때에 사용하세요. 사53:9,“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되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는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장차 어느 부자가 주님의 장례식을 치를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에 이어 장례식 이야기입니다. 팔레스타인은 예나 지금이나 날이 덥기에, 아무리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이라도 24시간 안에 장례식을 치릅니다. 오늘 죽으면 오늘 장례식을 치르든지 적어도 내일 장례식을 치릅니다. 성금요일 저녁 해가 지면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장례식은 운명하시고 바로 진행되었습니다. 주님은 집도 없었고, 그의 장례식을 책임질만한 사람들이 주변에 아무도 없었어요. 이 일을 감당할 사람은 당시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나 재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무덤이 이미 준비된 사람이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을 예비해두셨습니다.

 

4. 이사야가 예언했던 부자는 유대의 아리마대 출신 요셉이었습니다. 그는 공회-유대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산헤드린 공회 의원이었습니다. 요즘 국회의원과 비슷합니다. 상류층의 특권을 아리마대 요셉이 52-53절,“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요셉이 당당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주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빌라도는 제지하지 않고 허락을 했어요. 요셉은 자신이나 가족들을 위해 미리 준비해두었던 무덤을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드렸습니다. 참 특별한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예수님의 장례식을 치른 것은 아리마대 요셉이었고 55-56절,“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주님의 남자 제자들은 주님이 잡히신 후 두려워서 모두 도망쳐 숨었어요. 여성 제자들 몇이 두려움 속에서 주님의 무덤 위치를 파악하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했습니다. 이 제자들은 주님이 이날 세상을 떠나실지 몰랐습니다. 아무 것도 준비할 시간도 여력도 없었어요. 다음 날이라도 향품과 향유를 주님 몸에 바르려고 했습니다. 주님이 죽으신 후 하나님이 이렇게 하게 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실마리

5. 누가가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 날을 이렇게 전해준 것은, 예수님의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단순한 정치적 처형이나 종교적 음모의 결과로 보지 않았어요. 그는 이 모든 일의 중심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구속 계획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44절,“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였다.”45절,“휘장이 한가운데 찢어졌다.”46절,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이 모든 장면은 하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주님의 죽으심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이며,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다.”로마 백부장의 고백-이 사람은 정녕 의인(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은 하나님의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전해질 것이라는 상징입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의 저자이기도 해요. 그는 복음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해지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누가는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침묵하거나 조롱했지만, 로마 사람인 이방인인 백부장은 귀한 신앙고백을 남겨주었습니다. 누가는,“십자가는 모든 민족에게 열려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혼돈 속에서도 하나님은 조용히 일하십니다. 누가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세상의 중심무대에서뿐 아니라, 침묵하고 충성된 사람들을 통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6. 누가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전했습니다. 주님의 죽음은 우연이나 실패가 아닌, 성경의 예언을 성취한 하나님의 뜻이다. 복음은 이방인에게도 열려 있다. 백부장의 고백은 복음의 보편성과 확장성을 상징합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도망쳤고, 어둠이 덮였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가는 그 어둠 속에서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누가는,‘보라,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이다. 이것이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의인의 길이다. 그리고 이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고 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리마대 요셉과 여성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비록 실패를 해도, 하나님은 구속 역사를 진행하십니다. 주님 곁에 있어야 했던 열두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서 도망쳤어요. 베드로는 주님의 이름을 세 번이나 부인했고, 유다는 주님을 배신하여 팔았고, 다른 제자들은 침묵하고 숨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예수님의 장례를 아무렇게나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평소 조용히 믿음을 지켰던 아리마대 요셉(니고데모와 함께), 그리고 여성 제자들을 통해 예언을 성취하시고, 장례를 존귀하게 치르셨습니다.

 

7. 하나님의 일은 눈에 띄는 자들만 아니라 때로는 조용한 믿음을 가진 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작은 사랑과 헌신도 하나님 나라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여자 제자들은 죽음의 현장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 위치를 기억했고,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향품을 준비하려 했습니다. 이 향품과 향유는 원래 살아계실 때 준비되었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 들은 그럴 시간도, 기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사랑도 받으셨고, 그들을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눅24:1-10) 하나님은 낮은 자들을 들어 높이십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도 들판의 목자들이 첫 증인이었고, 부활의 첫 증인은 여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천대받던 여성들을 통해 복음을 세상에 드러내셨어요. 하나님은 세상이 중심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밀어내시고,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마이너러티)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남자 제자들이 떠난 자리에서 아리마대 요셉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대체 가능한 순종자들을 통해 계속 이뤄집니다. 여인들이 무덤을 기억하고 향품을 준비했습니다. 그들의 진실한 사랑은 침묵 속에서 빛나고, 하나님은 그것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가장 낮고 약한 자들을 들어 복음의 증인으로 세우십니다.

 

복음 제시

8. 예수님은 십자가에서,“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하고 운명하셨습니다. 주님은 고통 속에서도‘아버지’를 부르며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셨어요. 주님의 이 기도는 시31:5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죽음조차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당하신’것이 아니라‘맡기신’것입니다. 이는 복음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주님은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요10:18,“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아버지라는 호칭은 단절이 아닌, 연결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 화해의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이 말씀은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가장 위대한 사랑의 선언이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든 인간에게 참된 평안을 주는 복음입니다.

 

기대

9.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깊은 어둠 속에 서 있습니다. 십자가 아래, 해는 빛을 잃고, 침묵은 무겁고, 무덤은 차갑게 닫혔습니다. 그 어둠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누가는 그 끝자락에 조용한 움직임을 기록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용기를 내어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했어요. 갈릴리에서 따라온 여인들은 무덤의 위치를 기억하고, 향품을 준비합니다. 제자들은 아직 숨어 있지만, 하나님은 부활의 아침을 조용히 준비하고 계십니다.“무덤은 닫혔지만, 하늘은 아직 닫히지 않았습니다.”“죽음은 선포되었지만, 생명은 침묵 속에 싹트고 있습니다.”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고백은 절망의 유언이 아니라, 소망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씨앗을 부활로 꽃피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어두운 밤에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작은 사랑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십자가 뒤에는 반드시 부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금요일에 우리는 무덤 앞에 서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둠은 길지라도, 빛은 반드시 다시 떠오를 것입니다. 그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며, 우리도 조용히 향품을 준비합시다.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다시 살아나신 주님과 같이 우리도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은 대로 기도합니다.

 

 

모든 공감:

6김신구, Joshua Lee 및 외 4명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