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말씀&칼럼

내 영혼의 나침반(시119:1-16)-시편 이야기 2-51회

작성자peter|작성시간26.06.06|조회수39 목록 댓글 0

내 영혼의 나침반(119:1-16)

 

갈등

1. 19148.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험 가운데 하나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배 이름은 Endurance(지구력, 인내)였습니다. 목표는 남극 대륙 횡단. 탐험대원들 수십 명이 동행해서, 거대한 얼음 바다를 향해 출발했어요.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극의 얼음이 배를 포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얼음벽은 끝없이 펼쳐졌고 하늘과 땅의 경계마저 사라졌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이면 방향 감각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동쪽도 보이지 않았고 서쪽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도 뒤도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온 세상이 하얀 안개와 얼음으로 뒤덮였습니다.

 

그때 탐험대원들이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음식도 아니고 연료도 아니었습니다. 나침반이었습니다. 방향을 잃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얼음보다 무서운 것은 길을 잃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휴대전화기는 컴퓨터가 되었고, 수많은 지식이 이것을 통해서 쏟아져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점점 더 방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옳은 길인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 사람들이 열심히 살지만,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모릅니다. 오늘 시편 시인은 그 질문 앞에 우리를 세워 놓습니다.

 

2.“나의 인생의 진짜 나침반은 무엇인가?시인은 오늘 복이라는 단어로 노래를 시작합니다. 1,“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사람들은 복을 생각하면 건강을 떠올립니다. 좋은 직장-많은 재산-성공을 떠올립니다. 시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진짜 복은 방향을 잃지 않는 삶이라고요.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방향이 틀어져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큰 배라도 항로를 잃으면 난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실패가 아니라 방향 상실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따라갑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따라-세상의 유행을 따라갑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 질문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시인은 노래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걷는 사람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우리는 그 길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알아요. 그러나 실제 삶은 다릅니다. 시인은 5,“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이 말은 아직 자신의 길이 흔들리고 있다는 노래입니다. 7절과 8에서는 더욱 절박해집니다.“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3. 이상하지 않습니까?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인데도 두렵습니다. 순종하려고 하는데도 흔들립니다. 결심했는데도 넘어집니다. 알고 있는데도 길을 잃습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 나침반 없이 걷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주일에는 결심합니다. 이번 주에는 말씀대로 살아야지. 기도해야지-사랑해야지. 막상 월요일이 되면 세상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말씀보다 현실이 더 크게 보입니다. 하나님의 길보다 내 생각이 더 옳아 보아요.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방향을 잃어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알지만, 그 길을 끝까지 걸을 힘이 없습니다.

 

갈등 심화

4. 시인은 9,“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청년들만이 아니라, 모든 인생들의 질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바르게 살 수 있을까?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배가 항구를 떠날 때는 누구나 목적지를 압니다. 선장은 항로를 알고 있어요. 나침반도-지도도 있습니다. 문제는 바다 한가운데서 시작됩니다. 밤이 오고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파도가 갑판을 덮칩니다. 별도 보이지 않습니다. 육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순간 사람들은 방향보다 눈앞의 파도에 집중하게 됩니다.

 

저 파도를 넘겨야 한다. 지금 이 위험을 피해야 한다.”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항로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지 않습니까?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는 분명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말씀대로 거룩하게 살겠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삶의 파도가 밀려옵니다. 사업 문제-건강 문제-가정 문제-관계의 상처-걱정과 염려가 밀려옵니다. 어느새 우리는 방향보다 문제에 집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현실이 더 크게 보여요. 하나님의 약속보다 눈앞의 상황이 더 크게 보입니다. 시인은 그 위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0,“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5. 전심으로 찾는다는 것은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나침반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잠깐 확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바라보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길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떤 길이 옳은지 압니다. 어떤 선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지도 압니다. 문제는 아는 것과 사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건강을 위해 운동하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운동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도를 들고 있으면서도 반대 방향으로 걷는 사람과 같습니다. 시인은 11,“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여기서 말씀은 손에 들고 있는 책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새겨진 방향입니다.

 

배의 나침반은 선장의 손에 들려 있지 않습니다. 배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폭풍이 와도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성경책이 책장에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말씀이 입술에만 있는 것으로도 부족해요. 말씀이 마음 깊은 곳에 새겨져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주일에는 은혜를 받습니다. 말씀을 듣고 결단합니다. 월요일이 되면 세상의 소음이 몰려옵니다. 화요일이 되면 염려가 밀려옵니다.

수요일이 되면 분노가 올라옵니다. 목요일이 되면 유혹이 다가옵니다. 금요일이 되면 피곤함이 덮쳐옵니다. 그렇게 말씀은 점점 희미해지고 세상의 목소리는 점점 커집니다. 마치 자석 가까이에 놓인 나침반 바늘처럼 말입니다.

 

6. 나침반은 북쪽을 가리켜야 합니다. 그런데 강한 자석이 가까이 오면 방향이 틀어집니다. 바늘은 움직이고 있지만, 북쪽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영혼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향해야 할 마음이 세상의 성공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할 눈이 사람들의 평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 발걸음이 내 욕심을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깊은 갈등입니다. 우리는 방향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방향을 알면서도 자꾸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이라는 나침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길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실마리

7. 시인은,“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노래했습니다. 모든 인생들이 어떻게 하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끝까지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까?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까? 시인의 답은 단순합니다.(모든 답은 항상 이렇습니다)“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인은 지금 성경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있으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극을 탐험하던 새클턴의 탐험대가 방향을 확인할 때 나침반을 배 창고에 보관해 두지 않았어요. 선장의 침실에 넣어두지도 않았습니다. 배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서 계속 확인했습니다. 폭풍이 몰아칠 때마다 확인했습니다. 안개가 짙어질 때마다 확인했습니다.

 

얼음이 길을 막을 때마다 확인했습니다. 나침반은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성경책은 가지고 있습니다. 집에도 있습니다. 차 안에도 있습니다. 휴대전화기 안에도 저장되어 있습니다.(문자로, 음성으로) 문제는 그것이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시인은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다고 노래했어요.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히브리어는 보물처럼 숨겨 두었다는 말입니다. 농부가 가장 귀한 씨앗을 창고 깊은 곳에 보관하듯이. 사람이 가장 소중한 보물을 가슴에 품듯이.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은 곳에 저장해 두었습니다.

 

8. 시인이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한밤중에 산을 오르는 등산객이 손전등을 배낭 속에 넣어 두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등불은 손에 들려 있어야 합니다.(지리산이나 한라산 등 높은 산 등반시 반드시 필요) 나침반은 주머니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둠이 찾아와도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만 두는 말씀이 아닙니다. 책장에 꽂아 두는 말씀-예배 시간에만 듣는 말씀이 아닙니다. 말씀이 내 생각 속에 들어와야 해요-내 판단 속에 들어오고-내 선택 속에 들어오고-내 마음속에 새겨져야 합니다. 시인은 방향을 잃지 않는 사람의 비밀을 말합니다. 그 사람은 특별히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특별히 똑똑한 사람도-의지가 강한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 사람입니다.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결국 마음에 가장 깊이 담긴 것을 따라 살아갑니다. 시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아요. 12,“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시인은 이미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가르쳐 달라고 기도합니다. 말씀은 한 번 배우고 끝나는 과목이 아닙니다. 깊은 바다와 같습니다. 해변에 서서 바다를 한 번 바라보았다고 해서 바다를 다 안 것이 아닙니다. 십 년을 바라봐도 또 새로운 모습이 있습니다. 이십 년을 바라봐도 또 다른 깊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5주에 한 번 읽고 읽어도) 묵상할 때마다 깊어집니다. 걸어갈 때마다 더 넓어집니다. 시인은 먼저 배우기 시작합니다.

 

9. 13,“주의 입의 모든 규례들을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배운 말씀을 입으로 고백-선포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자꾸 말합니다. 손자가 태어나면 손자 이야기를 해요. 좋은 맛집을 발견하면 그 이야기를-주식이 올라가면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말씀도 그렇습니다. 말씀이 마음속에 살아 있으면 입술에서도 흘러나옵니다. 14,“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말씀은 의무가 아닙니다. 기쁨이 되었습니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보물을 찾으러 갑니다.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즐거워합니다. 그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말씀의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재물보다 말씀을 더 기뻐하기 시작합니다. 15,“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묵상입니다. 이 말은 원래 양이 풀을 되새김질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양은 풀을 한 번 삼켰다가 다시 꺼내어 오래 씹습니다. 그래야 영양분이 몸속으로 들어갑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듣고 끝나면 삶을 바꾸지 못합니다. 마음속에서 되새기고 또 되새겨야 합니다. 16,“내가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시인의 영혼은 다시 방향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의 눈이 파도에서 말씀으로, 문제에서 하나님으로, 세상의 소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복음 제시

10. 오늘 시인의 노래를 읽으며, 누가 과연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사랑하고-누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누가 한 번도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솔직히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말씀을 알면서도 흔들립니다. 말씀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잊어버립니다. 방향을 알면서도 자꾸 다른 길로 갑니다.

 

오직 한 분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따라 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않으셨고,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길 잃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나침반을 주신 분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참된 길이 되신 분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완벽하게 붙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기대

11. 사랑하는 여러분. 나침반은 폭풍을 없애주지 않습니다. 안개를 걷어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방향을 잃지 않게 해 줍니다. 우리의 삶에도 여전히 문제는 있습니다.

걱정도 있고, 상처도 있고, 유혹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걷는 사람은 길을 잃지 않습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 한 주간도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눈앞의 파도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매일 영혼의 나침반을 점검하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명의 길, 복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주의 말씀은 내 영혼의 나침반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