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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칼럼

하나님의 의(롬3:21-31)-6월 7일 주일예배 메시지

작성자peter|작성시간26.06.08|조회수29 목록 댓글 0

하나님의 의(3:21-31)

 

갈등

1.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전범 재판이 열렸습니다. 전범들이 하나둘 법정에 섰습니다. 법정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판사석 위에는 법이 서 있었고, 피고석에는 죄인들이 서 있었습니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놀라운 장면이 반복되었어요. 피고들은(독일군, 나치 정권의 정치인, 관료, 의사, 법조인, 기업인을 비롯해 나찌에 협력했던 각국의 부역자들) 저마다 자신을 변호했습니다.“저는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저보다 더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저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전범들은 자신의 죄를 줄여보려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법정은 비교하는 곳이 아닙니다. 누가 더 나쁜가를 따지는 곳이 아니라, 누가 법 앞에 의로운가를 판단하는 곳입니다.

 

법정 안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의가 아닙니다. 법이 인정하는 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를 주장합니다.“그래도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낫습니다.”“나는 교회도 다닙니다.”“나는 나름 선하게 살아왔습니다.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모든 비교는 사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입니다. 오늘 본문은,“누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는가?를 물어요. 놀랍게도 사도 바울은 인간의 의가 아니라하나님의 의를 이야기합니다. 로마서 1장부터 3장까지 바울은 마치 검사처럼 인간의 죄를 하나씩 드러냅니다.

 

2.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유대인도-이방인도 모두 죄 아래 있습니다. 종교인도-도덕적인 사람도 모두 죄 아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바울이 시14:1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선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얼룩이 없는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햇빛 아래 섰을 때 온갖 얼룩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두운 방에서는 깨끗해 보였어요.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는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빛 앞에 서는 순간 감춰졌던 죄가 드러납니다.

 

교만이 보입니다. 욕심과 미움-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던 마음이 보입니다. 율법은 이것을 보여줍니다. 율법은 죄인을 의롭게 만드는 사다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죄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거울은 얼굴의 때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씻어주지는 못합니다. 율법도 죄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죄를 없애지는 못해요. 하나님은 완전히 의로우시고, 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합하고, 나는 불완전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까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 사이에 놓인 이 깊은 간격을 누가 메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내세울 수 있을까요?

 

갈등 심화

3. 사람들의 문제는 죄만이 아닙니다. 더 깊은 문제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는 마음입니다. 27,“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자랑할 데가 어디냐? 사도 바울이 죄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자랑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이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는 것이자기 의입니다. 사람들은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습니다.“그래도 나는 착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교회도 다녔습니다. 헌금도 했습니다. 봉사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손에 쥔 작은 공로 하나를 하나님 앞에 내밀려고 합니다. 빚을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사람이, 지갑 속에 있는 얼마의 돈을 꺼내며 빚을 갚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죄는 이렇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야 할 만큼 우리 죄는 무겁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피를 흘리셔야 할 만큼 죄는 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끝까지 자기 의를 붙들고 있어요. 절벽 끝에 매달린 사람이 자신을 붙들고 있는 밧줄이 썩어 있는데도 놓지 못하는 것처럼요. 그 밧줄은 곧 끊어지고 맙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끝까지 붙잡습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붙들었습니다.

 

4. 그들을 할례를 붙들고-또 민족적 자부심,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붙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29,“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하나님은 특정 민족-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유대인도 죄인이고, 이방인도 죄인이에요. 높은 산 정상에 올라간 사람도. 깊은 골짜기에 있는 사람도. 하늘에서 보면 모두 땅 위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죄인입니다. 누구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를 내세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두 갈래 길 앞에 서게 됩니다. 자기 의를 붙들든지, 하나님의 의를 붙듭니다. 자기 의를 붙드는 사람은 끝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합니다. 더 열심히 해야 하고, 더 잘해야 하고, 더 의로워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붙드는 사람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어떻게 죄인이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실 수 있을까요? 어떻게 자랑할 것 없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그 놀라운 비밀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실마리

5. 바울은 절망의 긴 터널 한가운데서 뜻밖의 말을 꺼냅니다. 21,“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캄캄한 밤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먼 수평선에서 등대를 발견하는 순간과 같습니다. 몇 날 며칠 동안 폭풍 속을 떠돌았습니다. 구름이 하늘을 덮었습니다. 별도 보이지 않고, 나침반도 고장 난 것 같았습니다. 선원들은 방향을 잃었습니다. 어디가 육지인지, 어디가 암초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 멀리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 하나가 깜빡입니다. 등대입니다. 아직 항구에 도착한 것은 아닙니다. 폭풍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선원들은 확신합니다.

 

살 길이 있다.”사도 바울이 말하는이제는이 바로 그런 말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하나님께 도달하기 위해 애써 왔습니다. 율법을 붙들었습니다. 선행을 쌓았습니다. 종교적 열심을 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하나님께 이를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이제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인간의 의가 아닙니다. 더 많은 노력도 아닙니다. 더 큰 열심도 아닙니다. 더 완전한 율법 준수도 아닙니다.“하나님의 의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높은 절벽 아래에서 하늘을 향해 사다리를 세우고 있었어요. 한 칸 더 올라가 보려고 애썼습니다. 조금 더 선하게 살아 보려고 했습니다. 조금 더 의로워지려고 몸부림쳤습니다. 사다리는 언제나 짧습니다.

 

6. 절벽은 너무 높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올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내려오셨습니다. 죄인이 의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를 준비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길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길을 내셨어요. 사도 바울은 아직 그 길의 이름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선언합니다.“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죄인을 의롭게 하실 수 있을까요?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받아들이실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자기 의를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어요.

 

자기 의는 하나님께 가는 다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가로막는 벽입니다. 사도 바울은 22,“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거대한 강이 흐릅니다. 강 건너편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강 이편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강을 건너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힘으로 헤엄칩니다. 어떤 이는 나무를 엮어 뗏목을 만듭니다. 또 어떤 이는 돌을 던져 징검다리를 놓아 보려 합니다. 그러나 강은 너무 크고 넓고, 물살은 거셉니다. 모두가 중간쯤 가다가 지쳐 버립니다.

 

7. 어느 날 누군가 강 위에 튼튼한 다리를 놓았습니다. 사람들이 만든 다리가 아닙니다. 강 건너편에서 보내 준 다리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더 빨리 헤엄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다리를 믿고 건너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 놓인 깊은 간격 위에 하나님께서 친히 다리를 놓으셨다고 합니다. 그 다리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늘 값을 지불하며 살아가요. 물건을 사려면 돈을 내야 합니다.

 

집을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성공하려면 수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는 값을 내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마치 평생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사람이 법정에 서 있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전 재산을 내어 그 빚을 모두 갚아 버린 것과 같습니다. 판사가,“당신의 빚이 모두 청산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채무자는제가 갚은 것이 없습니다.”그때 판사가,“다른 사람이 대신 갚았습니다.우리가 죄 값을 지불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지불하셨어요. 우리가 의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의를 준비하셨습니다.

 

복음 제시

8. 사도 바울은 복음의 핵심을 로마 교회에 편지합니다.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법정 안에 판사가 앉아 있고, 피고석에는 죄인이 서 있습니다. 증거도 분명합니다. 죄도 분명합니다. 판사는 의로운 재판관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판결해야 해요. 만약 죄인을 그냥 풀어준다면 그는 사랑이 많은 판사일 수는 있어도 의로운 판사는 아닙니다. 반대로 죄만 따지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의로운 판사는 될 수 있어도 사랑의 하나님은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그냥 덮어두지 않으셨습니다. 죄를 분명하게 심판하셨습니다. 그 심판이 예수님께 쏟아졌습니다. 마땅히 우리가 서야 할 자리에 예수님께서 서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께서 받으셨어요. 법정에서 판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죄인 곁으로 내려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그의 형벌을 내가 대신 받겠습니다. 그의 빚을 내가 대신 갚겠습니다. 그의 죽음을 내가 대신 감당하겠습니다.”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셨기에 의로우십니다. 동시에 죄인을 용서하셨기에 사랑이십니다.

 

9. 사도 바울은 26,“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우리는 의롭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의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갈 수 없었어요. 예수님께서 길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를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구원은 내가 이룬 업적이 아닙니다. 받은 은혜입니다. 자랑할 것이 없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기대

10.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평생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 앞에서도, 가족들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도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조금 더 의로워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오늘 로마서 3장은 우리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의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를 받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공로를 붙든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든 사람입니다. 십자가는 이렇게 선언합니다.“네가 하나님께 올라온 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위해 내려갔다. 네가 죄 값을 갚은 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위해 값을 치렀다. 네가 의를 만든 것이 아니다. 내가 너에게 의를 선물로 주었다.”

 

이제 우리는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그의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합니다. 오늘도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낙심하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복음의 문 앞에 가장 가까이 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를 가진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일 사람을 찾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딸이다. 내가 너를 의롭다 하노라.이제 두려움 대신 담대함으로, 정죄 대신 감사함으로, 자랑 대신 은혜로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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