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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칼럼

탐욕을 이기는 말씀(시119:33-48)-시편 이야기 2-53회

작성자peter|작성시간26.06.20|조회수35 목록 댓글 0

탐욕을 이기는 말씀(119:33-48)

 

갈등

1. 18481,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공장의 한 노동자가 강바닥을 들여다보다가 반짝이는 금속 조각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손톱만 한 크기였습니다. 햇빛이 강물 위에 그 조각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황금이었습니다. 그 소식은 빠르게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미국인들이 캘리포니아로 향했어요.“골드 러시(Gold Rush)”입니다. 농부들은 밭을 버리고,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선원들은 항구에 배를 묶어 둔 채 떠나 버렸습니다. 교사들도 교실을 비웠습니다. 사람들은 삽 하나를 들고 서쪽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황금만 찾으면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황금을 찾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황금을 찾으면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큰돈을 번 사람들은 황금을 캐러 갔던 사람들이 아니라 삽을 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쫓아다녔지만, 황금을 손에 넣지 못했어요. 사람들이 황금을 찾다가 재산을 잃고, 가족과 건강을-자기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황금이 사람들을 망하게 한 것이 아니고, 황금을 향한 마음이 사람들을 무너뜨렸습니다. 황금보다 더 위험한 것은 탐욕이었습니다. 우리도 비슷합니다. 사람마다 황금의 이름만 다를 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돈이 황금입니다.

 

2. 누군가에게는 성공-인정-자녀의 성취 등이 황금입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이 하나님보다 황금을 더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오늘 시인도 이 싸움을 하였습니다. 세상과 말씀 사이에서-탐욕과 진리 사이에서, 마음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놓고 씨름하였어요. 시인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33-35,“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시인은 길을 묻습니다. 왜 길을 묻고 있을까요? 길을 모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시인은 이미 하나님의 길을 알고 있습니다. 길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금광으로 몰려갔던 사람들처럼요. 멀리서 황금이 반짝입니다. 사람들의 눈과 마음이 그곳으로 향합니다. 발걸음도 그곳으로 향합니다. 시인은 36,“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시인은 돈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없애 달라고-유혹을 없애 달라고도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위해 기도합니다. 시인은 진짜 전쟁터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 마음임을 알았습니다.

 

3. 탐욕은 지갑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죄나 우상도 마음에 먼저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습니다. 37,“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탐욕은 눈에서 시작됩니다. 눈이 머물면 마음이 따라가고, 이어서 삶이 따라갑니다. 시인은,“제 눈을 돌려 주십시오. 제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 주십시오. 탐욕보다 말씀을 더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기도했어요.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눈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우리를 움직이는 힘은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세상이 약속하는 황금입니까?

 

갈등 심화

4. 탐욕은 단순히 돈을 좋아하는 마음만 아닙니다. 탐욕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탐욕은 우상숭배라고 합니다.(3:5, 5:5)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침몰하는 이유는 대부분 거대한 파도 때문이 아닙니다. 작은 틈으로 들어온 물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몇 방울에 불과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이 차오르고 배가 가라앉습니다. 탐욕도 그렇습니다.“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인정받고 더 성공하고 싶다.”하지만 그 욕심이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맙니다.

 

시인은 그것을 알고 38,“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시인은 탐욕을 이길 힘이 자기 안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말씀을 세워 달라고 기도합니다. 탐욕보다 더 큰 것은 나의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39,“내가 두려워하는 비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들은 선하심이니이다.”탐욕은 두려움의 얼굴을 하고 찾아옵니다.“남들보다 뒤처지면 어떡하지? 실패하고 손해 보면 어떡하지?”그래서 사람들은 더 움켜쥐고-더 모으려고-더 붙잡으려고 합니다. 많이 가질수록 평안해질 것 같은데, 더 불안해집니다.

 

5. 탐욕은 바닷물을 마시는 사람과 같습니다. 처음에 갈증이 나서 바닷물을 마십니다. 바닷물은 마실수록 더 목이 마릅니다. 탐욕도 채워질 것 같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40,“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탐욕은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힘입니다. 탐욕은 버린다고 사라지지 않고, 이보다 더 큰 사랑-더 큰 기쁨이 들어와야 합니다. 더 귀한 보물이 발견되어야 합니다. 어두움을 쫓아내려면 빛을 켜야 합니다. 탐욕을 몰아내려면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와야 합니다. 말씀이 기쁨이 되고, 보물이 되어야 합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시인은 다시 압박을 경험합니다. 41절 이하, 사람들이 자기를 비방합니다. 조롱합니다. 신앙 때문에 무시합니다. 세상은 말합니다.“세상은 돈이 전부야. 말씀만 붙들고 살 수 있겠어?”탐욕은 다수의 목소리로, 말씀은 소수의 길처럼 보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것인가? 세상이 약속하는 황금을 따라갈 것인가? 이 틈에서 시인은 42-43,“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지함이니이다,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따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6. 45,“내가 주의 법도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세상은 말합니다.“더 많이 가져야 자유롭다.”시인은말씀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롭다.”고 합니다. 탐욕은 자유를 약속하지만 사람을 노예로 만듭니다. 말씀은 순종을 요구하지만,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사랑하는 오늘 시인은 우리 앞에 두 개의 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탐욕의 길입니다. 처음에는 황금처럼 반짝입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묶어 버립니다. 다른 하나는 말씀의 길입니다. 처음에는 좁아 보입니다. 손해 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자유롭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은 탐욕의 힘을 이기고 말씀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실마리

7. 아프리카를 탐험했던 선교사 리빙스턴은 거대한 폭포를 보았습니다. 수백 미터 너비의 물줄기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거대한 무지개가 하늘 위에 걸렸습니다. 리빙스턴은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한동안 말을 잊었습니다. (빅토리아 폭포) 웅장한 폭포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작은 웅덩이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거대한 바다를 본 사람은 작은 물컵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더 큰 아름다움을 본 사람은 이전의 것에 대한 집착이 자연스럽게 약해집니다.

 

오늘 시인에게도 그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시인은 탐욕과 싸웠습니다. 눈은 허탄한 것을 바라보려고 하고, 마음은 다른 곳으로 향하려고 합니다. 세상은 더 많이 가지라-더 높이 올라가라-더 움켜쥐라고 말합니다. 시인은 탐욕은 단순히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탐욕은 더 좋은 것을 발견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38) 시인은 탐욕을 없애 달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 경외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시인은 마음은 비워 두는 곳이 아니라 채워지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사라지면 탐욕이 들어옵니다.

 

8. 말씀에 대한 사랑이 약해지면 세상이 들어옵니다. 하나님이 작아지면 욕심이 커집니다. 하나님이 커지면 욕심은 작아집니다. 어린아이가 조개껍데기 하나를 발견하면 보물처럼 붙들고 있습니다. 어느 날 진짜 보석을 손에 쥐게 되면, 아무도 조개껍데기를 빼앗으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 내려놓습니다. 시인이 경험하고 노래한 것도 이것입니다. 탐욕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가치를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는 이유는 세상이 너무 커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너무 작아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탐욕에 자꾸 끌리는 이유는 욕심이 너무 강해서가 아닙니다.

 

말씀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손을 치시지 않고,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십니다. 더 큰 영광을 보게 하십니다. 더 큰 기쁨-더 큰 보물을 보게 하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말씀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소리는 여전히 크게 들립니다. 탐욕은 여전히 마음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으로 끝까지 말씀을 붙들게 만들 수 있을까요? 무엇이 탐욕의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수 있을까요? 1845년 북극을 향해 영국의 탐험선 두 척이 출발했습니다. 프랭클린 원정대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성공을 확신했습니다.

 

9. 그러나 그 배는 북극의 얼음 바다에 갇혀 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식량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추위는 심해지고, 후에 발견된 기록들을 보면 죽어 가는 상황 속에서도 몇몇 대원들은 은식기와 은제품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살릴 음식보다, 무거운 은그릇을 더 붙들고 있었어요. 살 수 있는 것을 버리고 죽게 만드는 것을 붙들었을까요? 인간의 마음입니다. 사람은 때로 생명을 주는 것보다 반짝이는 것을 더 신뢰합니다. 시인도 이 싸움을 하였습니다. 말씀이 생명을 준다는 사실을 압니다. 하나님의 길이 옳다는 사실도 압니다. 그런데 세상은 계속 속삭입니다.

 

말씀으로는 안 된다. 현실은 다르다. 조금만 더 가져야 안전하다. 조금 더 움켜쥐어야 행복하다.”탐욕은 언제나 약속을 하지만, 그 약속은 신기루와 같습니다. 붙잡을 것 같지만 손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41절부터 기도의 방향을 바꿉니다. 시인은 자신이주의 말씀을 의지한다고 노래합니다. 시인은 이제 탐욕과 말씀 사이에서 무엇을 더 믿을 것인가의 문제를 보고 있습니다. 믿음의 싸움은 어느 약속을 믿을 것인가의 싸움입니다.

 

복음 제시

10. 오늘 시인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내 마음을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시인은 탐욕은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마음이기에, 이보다 더 큰 사랑이 들어와야만 이길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작은 사랑이 밀려납니다. 더 큰 보물을 발견해야 작은 보물을 내려놓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에 비유하셨어요. 사람이 그 보화를 발견하자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라 그 밭을 샀습니다. 억지로 버린 것이 아닙니다. 더 좋은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세상을 버리는 것이 아니고,“예수님이 가장 귀한 보화이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과 성공과 인정 속에서 만족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를 더 목마르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보내셨고,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1:14)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참된 생명을 주셨습니다. 탐욕을 이기는 힘은 내 의지가 아니라 가장 큰 보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얻은 사람은 세상 황금보다 더 귀한 보화를 얻은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주님, 세상을 덜 사랑하게 하소서가 아니라,“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입니다. 그때 우리는 탐욕을 이기고 말씀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기대

11.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시인은 우리 앞에 두 개의 길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는 탐욕의 길입니다. 황금처럼 반짝입니다. 행복을 약속하고 성공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묶어 버립니다. 다른 하나는 말씀의 길입니다. 좁아 보이고, 손해 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자유롭게 만듭니다. 시인은 마지막에 이렇게 노래합니다. 48,“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이다.”이제 말씀은 시인에게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 되었습니다. 말씀은 그의 보화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황금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큰 보화를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탐욕보다 말씀을, 세상의 약속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때 시인처럼 우리도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내가 주의 법도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말씀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끝까지 하나님께로 인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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