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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교회와 성도

작성자peace(평화)|작성시간22.12.05|조회수56 목록 댓글 0

자랑스러운 교회와 성도

살전 1:1~10

 

가수 패티김은 가요도 많이 불러 유명해졌지만, 사실은 그의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교회 권사님이었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찬송가 앨범을 준비하던 때를 설명하고 있었다. 패티김은 교회 권사였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신앙 고백을 담아 '가스펠' 음반을 제작 발표한 일이 있는데 그 음반에 수록된 곡이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 '나의 사랑하는 책'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등이 담겨있습니다. 85세의 년세에도 아직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금년도 어느듯 마지막 달 12월을 맞이했습니다삶에 감사가 있다면 그것은 건강하다는 신호입니다. 감사가 있는 신앙인이 건강한 신앙인입니다.

1. 데살로니가 교회의 감사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을 할 때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던 중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박해가 심한 데살로니가를 떠나 고린도로 왔던 바울은 교회에 남겨두고 온 초신자들의 신앙에 대하여 많이 염려를 하였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에 대하여 많은 반대와 핍박이 있는 환경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받은 복음을 잘 지키며 자라고 있을까 걱정되어 제자 디모데를 그곳으로 보내어 사정을 알아보고 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의 보고를 받은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우들이 믿음 안에서 잘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과 감사가 넘쳤습니다(딤전 3:1-10). 그래서 바울은 이 교회를 칭찬하고 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이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서갈 수 있도록 교훈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것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교회로서 갖추어야 할 좋은 점들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들려오는 소문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기뻤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나왔습니다. 들려오는 소문이 기쁘고 듬직한 교회가 있는가 하면, 어떤 교회는 소문이 안 좋아 듣는 사람의 마음이 불편하고 걱정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점이 좋았을까요? 그 교회는 믿음, 소망, 사랑이 균형 있게 자라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교회와 성도들이 가져야 할 소중한 덕목입니다. 건강한 교회, 좋은 교회는 이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고 있다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살후 1:3)"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로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고 했습니다. 과연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감사를 쉬지 않게 하고 있습니까?

2. 믿음이 더욱 자라는 성도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날이 갈수록 믿음이 두터워지고 성숙한 교회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교회는 큰 건물이나 아름다운 성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사명과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큰 기선이 가는데 기적 소리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계속 움직여 가야 합니다. 교회는 주어진 본연의 역할을 감당할 때 자랑스러운 교회가 됩니다. 사명에 충실하지 못하고 겉치레만 요란하고 쓸모가 없는 교회라면 자랑이기보다 부끄러운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전도여행 중에 세운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본래 규모도 작고 내세울 것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바울뿐 아니라 모든 동역자에게 자랑스러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소문이 퍼질 만큼 본이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는 교회 안에 자랑스러운 교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랑스러운 교인이 결국 자랑스러운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으려는 교회였습니다. 예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기도에 힘썼습니다. 예수께서 고통당하는 이웃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을 보면서 어려운 이웃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교회에 본이 되었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믿는 자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모름지기 교회는 믿음과 헌신에 있어서 본을 보이며 자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곳에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시고 세우셨습니다. 이 지역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소문이 나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자랑스러운 교회가 되었습니까? 자랑스러운 교인입니까? 본문에 나오는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우리 교회도 자랑스러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이 더욱 자라나야 합니다. 살후1: 3절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은 소문이 각 처에 퍼질 정도의 믿음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 사도의 2차 전도여행 중에 설립되어진 교회입니다. 바울이 교회를 세우고 3주 정도밖에 체류하지 못한 채 떠나야 했기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매우 약한 모습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이 더욱 자랐다는 소식이 바울에게 들려 왔습니다. 믿음은 자라야 합니다. 믿음이 자라는 성도가 많은 교회가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이 크게 자랐습니다. 교회는 크게 자라지는 못했으나 믿음이 크게 자라났습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그 믿음이 커갔습니다. 온갖 어려움에도 교인들이 굴복하지 않고 예수를 더욱 굳게 믿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크게 자라나서 더 큰 믿음으로 자라는 교회가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도 믿음의 역사로 인하여 모범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자라지 못했어도 믿음은 더욱 더 자라야 합니다. 박해와 환난 가운데서도 그 믿음이 커져갔던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이 믿음이 날로 자라가는 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온갖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고 굳게 믿음으로 세워지는 교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가 자랑하는 교회로 세워가야 합니다. 교회가 여러 가지로 소문이 날 수 있습니다. 성도가 많이 모이는 교회라는 소문, 돈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 유명한 사람이 많은 교회, 교회건물이 크다는 소문 등등....그러나 믿음이 좋은 교회라는 소문 보다 더 좋은 소문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것이 다 좋아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11:6절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크게 충성한 모든 사람들은 모두 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를 알려면 얼마나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만큼 믿음은 성장하고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만큼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맺고, 믿음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인격이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를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무조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비난하는 것 같이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잘 믿는 사람을 보면 예수 안 믿는 사람들까지도 감동을 받고 칭찬하고 존경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교회가 좋은 소문이 나야합니다. 특별히 믿음이 좋은 교회라는 소문이 나야 합니다. 당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기초로 하여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에서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사시고 참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의 소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각처에 났던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무슨 일에든지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하시고 부활승천하신 주님께서 분명히 성경대로 재림하실 것을 믿는 믿음의 거장들이 되어 전국 방방곡곡에 우리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이 널리 퍼지기를 바랍니다.

4. 사랑이 더욱 풍성한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살아 역사하는 믿음이 있는 교회는 반드시 사랑의 수고가 나타납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거짓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랑 역시 거짓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여기서 ‘사랑의 수고’라는 말 속에는 ‘수고’ ‘노동’이란 뜻과 함께 아기를 낳을 때 겪는 산모의 ‘산고’와 ‘진통’이란 뜻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참 사랑에는 아기를 낳고 아기를 기를 때 엄마가 지니는 ‘산고’와 ‘진통’과 ‘수고’를 포함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그와 같은 사랑의 수고와 사랑의 산고가 있었습니다. 살후1: 3절입니다.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믿음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면 사랑은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이 사랑은 목숨도 주기를 기뻐하는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십자가의 대속물로 내어주신 그 사랑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의 사랑이 풍성해졌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사랑으로 행하였습니다자랑스러운 교회는 사랑이 더욱 넘치는 교회입니다. 사랑이 풍성해지는 교회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사랑의 수고로 말미암아 자랑스러운 교회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사랑은 교회가 가진 것들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물질이 있으면 가치 있는 물질이 되어 교회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꾼이 되어 교회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약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자랑스러운 교회는 내가 먼저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교회에 사랑이 없다면, 내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되어 우리가 자랑하는 교회로 세워나가야 합니다.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믿음의 역사 위에 사랑의 수고가 나타날 때 일어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힘이 아닙니다. 무기가 아닙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합니다.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만듭니다. 사랑은 갈 수 없는 곳에 가게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은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의 눈물은 방탕아 어거스틴을 성 어거스틴으로 만듭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은 깡패 김익두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목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살인마 고재봉을 죽음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앞에서 변화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사랑의 노래도 많고, 드라마도 많고, 가슴 찡한 사랑의 시도 많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대부분 인스턴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희생입니다.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사랑은 감각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조건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희생적 사랑을 찾기 어렵습니다.

사랑은 수고해야 합니다. 엄마 아기를 출산하면 어떻습니까? 사랑의 수고를 합니다. 처녀 때는 수줍고 부끄러움이 많던 분도 사람들 앞에서 가슴을 열고 젖을 먹입니다. 더러운 것 쳐다보지도 못하던 사람이 아기의 변을 직접 만지기도 하고, 냄새도 맡아봅니다. 걸레한번 빨지 않던 사람이 변이 묻은 옷을 빱니다. 자녀를 사랑하기에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수고가 없는 사랑, 희생이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여기의 수고코푸인데 피곤할 정도로 고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피곤함을 상관하지 않고 수고하게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힘든 수고가 동반되지만 결코 짐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희생적 수고 없이는 참된 사랑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십시오. 당신의 아들 곧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는 희생과 수고를 통해 사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희생을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기에 희생과 수고를 감당하셨습니다. 짐으로 여기지 않고 기쁨으로 감당하였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수고합니까? 만약 짐으로 여겨진다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면 생명을 내어주는 일이 있어도 기뻐합니다. 부디 사랑으로 수고하여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사랑을 외쳐도 사랑의 희생이 없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말과 혀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 죄인을 위하여 자기 몸을 제물로 내 놓으신 것입니다머리에 가시 면류관 쓰시고, 손과 발에 못 박히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죽어 마땅한 우리를 향하신 사랑입니다. 그토록 조롱하고 침 뱉고, 모욕을 해도 묵묵히 참아주신 사랑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빚을 진 자들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 이런 사랑의 수고가 나타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에서부터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내가 불편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한 번 움직여주면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가 됩니다. 사랑의 수고가 넘쳐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인내로 견디는 교회

본문 4절입니다.살후1: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환난과 핍박 중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돌아서지도 않았습니다. 소망 중에 인내를 가졌습니다. 시련을 더욱 견디는 교회가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 고난을 당해도 인내로 견디는 교인들이 있을 때 자랑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버티지 못하고 포기해도 안 됩니다.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사람이 결코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면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싸워서 이기는 교회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견디며 인내하는 교회가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핍박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소망으로 인내했습니다. 참고 견뎠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관심은 대부분 현세적인 문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인사는 마라나타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였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재림과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충만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있는 자는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습니다. 재림과 천국에 대한 소망은 추상적인 망상이 아닙니다. 고난과 환난을 참고 견디는 인내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믿음 좋은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이 건강이 안 좋게 느껴져 병원에 갔다가 암 진단을 받습니다. 처음엔 가족들이 알리지 않고 숨겼는데 우연히 병실 밖에서 가족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자기가 암에 걸린 것을 알았습니다. 이 분이 믿음이 좋은 분이셔서 그 날부터 죽음 준비를 하십니다. 만날 사람 다 만나고 용서할 사람 용서하고, 용서 받을 분에게 용서 받고, 편지 쓸 사람 편지를 하셨답니다. 남에게 빚진 것을 다 갚습니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없나 살펴 다 정리합니다. 유산도 정리하고, 평소에 부담이 있었던 선교사님들에게 선교헌금도 보내고, 유언서도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별로 더 병세가 나빠지는 증상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다른 병원도 가보라고 해서 가 보았더니 오진이라는 것입니다. 그 교회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권사님, 지금까지 인생 정리하시느라 돈도 많이 쓰시고 했는데 후회 안 되시나요?”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네요. 목사님, 제가 지난 몇 달처럼 인생을 진지하게 산적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이것이 바로 종말 신앙이요 재림 신앙인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바로 이 신앙으로 세상을 변화시켰던 것입니다교회의 부흥은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살아갈 때 이뤄집니다. 언젠가 우리 주님 다시 오십니다. 언젠가 오늘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옵니다. 현재의 삶에 빠지지 마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다시 오실 영광의 주님 앞에 설 날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소망 중에 인내하며 주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그 속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부흥이 임합니다. 우리 교회는 믿음이 더욱 자라는 교회가 되어 자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더욱 풍성해짐으로 자랑스러운 교회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인내하며 견디어 우리가 자랑하는 교회로 굳건하게 세워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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