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자로오신 예수님
(마 20:20-28)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의 계절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시다가 베들레헴 마굿간을 통하여 지구를 방문하셨습니다. 그 놀라우신 하나님이 왜 지구를 방문하신 것일가요? 어느 선교사님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는데 공항이 온통 난리였습니다. 바닥이 붉은 카페트가 깔려 있고, 공항 전체가 꽃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중 나왔습니다. 누군가가 귀빈이 온다는 것을 직감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교황이 공항 도착 시간이었습니다. 로마 교황이 한번 방문하는 데 그렇게 요란하였습니다. 그런데 저 하늘나라 영광 가운데 계시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지구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분은 조용히 마굿간에 오셨습니다.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그것도 짐승들이 잠자는 마굿간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오늘 봉독한 본문에는 섬기는 자가 위대한 자임을 가르쳐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봉독한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섬기는 자로 오신 예수님>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높아지려는 욕망
인간은 누구나 높아지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니체는 "생물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는 권력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높아지려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이에 대한 예수님의 뜻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12제자들에게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17-19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3일에 살아나리라" 아멘. 이렇게 주님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더불어 예수님께 나아와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여 주시기를 요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십자가를 지려고 하시는데 높은 자리를 탐내고 있으니 착각을 해도 보통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셨고 제자들은 "마실 수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마시려는 고난의 잔을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곧 축배를 들 것이라고 착각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신 있게 그 잔을 마실 수 있다고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그의 어머니와 더불어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주시기를 청하였다는 말을 제자들이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두 형제에 대하여 분개했습니다. 본문에서 사용된 '분히 여겼다'는 말은 매우 강한 분노를 가르킵니다.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은근히 높은 자리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가 그 자리를 가로채려고 하자 분개하였던 것입니다. 제자들 사이에 소요가 일어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6-2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아멘. 여기서 주님은 진정 위대한 사람은 섬기는 사람임을 말씀하셨습니다.
2. 기독교는 섬김의 종교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의 섬김을 받아야 할 하나님의 아들이요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섬기는 자의 본을 보이셨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는 자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위로 하나님을 섬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섬기고 사랑해야 하지만 특별히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섬김을 받으려 하는 사람이 아니고 남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요 12:26).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씀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은 한 마디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섬긴다는 말의 헬라어는 “디아코니아(Diakonia)”입니다. 여기서 온 말이 영어로 집사라는 말의 “디콘(Deacon)”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교회 역사상 최초로 일곱 집사를 세웠습니다. 그 기준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을 듣는 사람으로 일곱을 택하여 안수하여 섬기고 봉사하며 구제하는 일을 맡겼습니다(행 6:1-7). 그 중의 한 사람이 스데반 집사로 기독교 역사에 최초로 순교한 평신도입니다. 이 말씀과 제도를 기초로 교회의 모든 직분은 섬김과 봉사의 직분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본받는 삶이요 제자된 본분입니다.
3. 기독교의 섬김은 세상 질서와 다릅니다.
“섬긴다”는 말은 본질적으로 낮은 자가 높은 자를 대하는 기본적인 행위로서 높은 사람의 필요를 위해 낮은 사람이 수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이나 윤리는 차원이 다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온 인류의 구세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친히 섬기는 자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존귀와 영광과 대우를 받아야 할 주님께서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셔서 섬기는 주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본받아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셨습니다. 세상의 질서와 윤리는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섬김을 받고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높은 자리일수록 큰소리치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간 나라들은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장관을 “미니스터(minister)”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니스터”의 근원은 바로 헬라어 “디아코니아(Diakonia)” 즉 “섬기는 자”입니다. 그래서 목사도 영어로 ‘미니스터’라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타락하면서 지위가 높은 자리일수록 권력을 휘두르고 섬김을 받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국민들의 투표로 선택된 국회위원이나 지자체장이나 의원은 뽑아준 주민이나 국민들의 공복(公僕)이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거할 때에는 모두가 국민의 충복(忠僕)이 되어 섬기겠다고 철통같이 약속하고 90도로 몸을 굽히다가 장 자리에 오르면 부정부패를 일삼고 국민들을 우습게 여기고 교만하기가 말할 수 없습니다. 또 대통령도 모든 국민을 섬기는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은 봉사생활을 통하여 내 마음 안에 사랑이 구체화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섬기는 일을 통하여 나를 만들어 가고 너를 만들고 천국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봉사는 스스로 낮은 자리에 임하는 것입니다. 섬김을 통하여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나 자신이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봉사의 삶은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많은 봉사자들이 ‘남을 위해 봉사하면 제 기분이 오히려 좋아져요’라고 말하는 데는 그것은 남들과 함께 협력할 때 우리 뇌에서는 도파민(Dopamine)이라는 화학물질이 활발히 분비된다. 이 도파민은 마약처럼 중독성 있는 행동을 할 때 분비되는 것으로 황홀한 느낌을 유발한다. 또 어떤 분들은 자기 내면의 아픔을 치유받기도 한다. 하나님은 봉사의 삶을 통하여 나의 몸과 마음을 그리고 영혼을 건강하게 하십니다.
4. 기독교는 섬기는 윤리입니다.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섬기는 자가 된 것입니다. 섬기는 자는 낮고 천한 자가 아닙니다. 가장 존귀하고 아름다우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진정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은 낮은 자리에서 남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높은 자리라고 교만하고 남을 무시하거나 갑질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사탄 마귀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섬기라고 직책을 부여받은 천사들이 교만하여 섬김을 받으려고 하다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영입니다. 세상에서 주님의 몸된 교회가 타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에서 다투고 나누어지는 이유가 바로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서로 섬기려고 앞장서는 교회는 절대로 타락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이제부터 하나의 성직자가 되어 섬기는 자가 됨을 의미합니다. 마틴 루터는 “만인사제직(萬人司祭職)”을 종교개혁의 중요한 핵심으로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가 성경이 말하는 성직자냐?”고 할 때 안수받은 사제나 목회자만 성직자가 아니고 세례받아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백성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이요 성직자라는 것입니다.(벧전 2:9) 제단에서 성례를 집행하고 설교하는 사제나 목회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도, 가장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가족을 돌보는 주부도, 남의 냄새나는 구두를 손질하는 사람도 성직자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정신을 깨닫고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갱신하고 날마다 새로워져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누가 하늘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냐?”는 문제를 가지고 다투었을 때 예수님은 철저하게 섬김과 희생의 도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수록 섬김과 봉사가 몸에 배어야 합니다. 섬기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 행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5. 예수님은 친히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본문 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세상을 호령하고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종의 자리에서 섬기 위함이었습니다. 빌 2:6-7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말씀했고 8절에는 “사람의 모양을 가지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고 낮은 자와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만 섬김의 도리를 말씀한 것이 아닙니다. 친히 섬기는 자의 본을 보여 주셨고 실천하셨습니다. 본문에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와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님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23절에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25절에 이방인들은 집권자들이나 권력자들이 높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지만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셨고 26-27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28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앞에 무슨 좋은 자리 타령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뿐 아니라 더 실제적인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신 말씀이 요한복음 13장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하셨습니다. 만찬 후에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가식적이거나 교육을 위해서 한 번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섬김은 예수님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고금을 막론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짜 교인이 된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용하여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섬김을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중세기에 종교지도자들이요 오늘날 이단의 교주들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를 방문했을 때 직업란에 미니스털(minister)라고 적었습니다. minister는 장관이라는 뜻도 있고 성직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성직자나 장관은 모두 섬기는 자라는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공항 직원은 한국에서 장관이 온 줄로 알고 상부에 신고를 했습니다. 결국 그 나라에서는 한국의 장관의 비공식 방문인 줄 알고 후히 대접을 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도 영문을 모른 채 후한 대접을 받고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목사나 장로는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장관이나 대통령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본분을 지켜 섬길 때 진정 존경을 받습니다. 섬기는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 많이 섬겨야 합니다. 성도들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십시다. 예수님이 섬기는 자의 모델입니다. 2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만 하시지 않고 몸소 섬기는 삶을 실천하셨습니다.
6. 섬기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본문 26-27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크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입니다. 권력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짓밟고서라도 올라서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복음은 크고자 하는 사람은 섬기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와 교회의 진리입니다. 한국 최초의 선교사였던 아펜젤러가 배재학당을 세우면서 교훈을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라고 했습니니다. 한국 최초의 선교사였던 아펜젤러가 배재학당을 세우면서 교훈을 그렇게 정하고 자신도 그렇게 살다가 젊은 나이에 순교하였습니다. 역사에도 보면 세상을 빛내고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은 특징은 남을 섬기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얼마든지 출세하고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인물인데도 스스로 남을 섬기고 봉사하는 자리에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이들은 보기에는 약한 것 같으나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에이브라함 링컨, 위대한 선교사들, 21세기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처, 남아공의 넬슨 대통령, 테레사 수녀와 같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섬김과 헌신은 역사에 길이 남을 별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온갖 권세와 힘을 과시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 보상을 다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겸손히 섬김의 도를 실천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만 아니라 하늘에서 그 상이 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의 스타가 되어 영원히 빛을 발할 것입니다. 마10:41-42절,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장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어떤 장로님이 하늘나라에 갔답니다. 입구에서 예수님이 반갑게 맞이하면서 ‘아직 갈 길이 머니 식사하고 가자’고 하며 중국집으로 안내하는 것이었습니다. 배고픈 차에 잘되었다 생각하는데 같은 교회 출석했던 집사님 한 분이 장로님보다 먼저 와서 탕수육을 먹고 있더랍니다. 순간 장로님이 생각하기를 ‘아, 저 집사님이 탕수육을 먹는 것 보니 나는 더 맛있는 것을 먹겠구나.’ 생각하고 기다리는데 짜장면이 나오더랍니다. 그것도 양이 얼마 안되는 보통으로 … 배고픈데 곱빼기나 주지 …실망한 장로님이 예수님께 “아니, 저 집사님한테는 탕수육을 주고 장로인 나에게는 겨우 짜장면을 주십니까?”하고 항의했더니 예수님이 그 장로님 귀에다 대고 “아무게 장로! 그냥 먹어! 지금 자네 교회 담임목사는 배달 나갔어!”하더랍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마18:4)”라고 하신 것은 낮아지기가 쉽지 않다는 뜻일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 받은 집사, 권사, 장로, 목사의 직분은 요즘 하고 있는 저의 감독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서 말하는 팀장, 차장, 부장 … 같은 직위나, 이등병-하사-대위-대장 같은 계급이 아닙니다. 차츰 차음 높아지는 것이 직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굽혀 섬겨야 하는 것이 직분이고, 더 낮은 종이 되어야 하는 것이 직분입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이 그들의 어머니를 통해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의 좌우편에 앉기를 원하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러자 세베대의 아들들은 “할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마신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러면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약속대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주신 잔을 마셨습니까?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약속대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주신 잔을 마셨습니다. 전혀 다른 방법으로 십자가를 지고 전혀 다른 방법으로 주님이 주신 잔을 마셨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사도행전 12:2). 이스라엘 왕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야고보를 죽인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열두 제자 중 가장 먼저 순교했습니다. 야고보는 너무 일찍 순교했기 때문에 초대교회에서 하나님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야고보에게 주신 십자가는 순교의 십자가였으며 예수님께서 야고보에게 주신 잔은 순교의 잔이었습니다.
7. 요한과 야고보에게 주신 잔
반면에 사도 요한에게 주신 잔은 야고보와 달랐습니다. 사도 요한은 열두 사도 중 가장 장수하셨는데 전승에 의하면 100세까지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주신 십자가와 사도 요한에게 주신 잔은 100세까지 장수하면서 초대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2:9,에서 사도 요한을 교회의 기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복음을 전해서 초대 교회를 세운 초대 교회의 기둥이었으며 말년에는 ‘밧모’ 섬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다 생을 마쳤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같은 형제로 같은 제자의 길을 갔지만 야고보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고 사도 요한은 100세까지 장수하면서 초대 교회를 세우고 돌보고 다스린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말할 때 순교만이 최선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 순교하고 다 죽어버리면 하나님 일은 누가 합니까? 만약 초대 교회 때에 열두 사도가 야고보처럼 교회를 세우기도 전에 다 순교했다면 기독교는 거기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70억의 인구가 있지만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많은 사람들을 다 각각 다르게 만드신 것입니다. 사람은 얼굴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지적인 능력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일을 하는 데도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고 다양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주의 일을 할 때 시대와 장소에 따라 순교자도 필요하지만 오늘날에는 전문 지식인이 필요하고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고 있는 연예인과 유명한 운동선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사업을 힘 있게 후원할 수 있는 돈 있는 재력가도 필요합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십자가는 순교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주신 잔은 순교의 잔이 아닙니다. 물질이든지, 의술이든지, 운동이든지, 예술이든지, 우리의 재능을 하나님 뜻을 이루는 데에 사용하면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주신 잔을 마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란한 행사성 집회보다 묵묵히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 하는 성도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잘하실 수 있는 그 일로 십자가를 지시고 그 일로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져야 할 십자가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잔은 순교나 고난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은사로 섬기고 봉사하는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섬기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섬김의 삶의 모범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