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작성자peace(평화)|작성시간23.01.10|조회수113 목록 댓글 0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43:14-21

 

2023년 새해를 맞아 금년에는 매 주일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몇 년동안 코로나 19롤 인하여 자주 만나지를 못햇습니다. 어떤 분은 가끔 만납니다. 이제는 매 주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 주일 만나는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은 가끔 만납니다. 매 주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가 즐겁고 기쁨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편 기자는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90:14) 했습니다. 아침에 어떤 마음을 가졌는 지, 입에서 어떤 말을 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 (143:8) 이 아침에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께 돌려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이다" (88:13) 따라서 합니다. "아침에 승리하자" 아침에 승리해야 합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는 말을 합니다. 일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좋은 일도 많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도 그 어느 때보다 많았습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교회적으로, 가정적으로 그 어느 해보다 더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세계적으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해서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지금도 그 전쟁은 끝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테러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든 싫든 이제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특별히 지난 날 있었던 아픈 일, 힘든 일, 실패한 일, 슬픈 일은 모두 깨끗이 잊어버리시기 바람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과 희망을 가지고 송구영신(送舊迎新)을 하시기 바람니다. 묵은 것은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할 수 있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1. 야곱을 부르신 하나님

간사하고 꽤많은 야곱이 어느 날 이스라엘로 바뀌게 됩니다. 돌 벼개를 벼고 해 저문 들녁에서 외로운 밤을 만났던 야곱은 하나님이 동행하시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그네길을 20년 살았지만 그는 아직도 야곱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속고 속이는 파란만장한 나그네길을 살면서 수많은 사연을 겪었고 이제 하나님 앞에 새로운 단계, 이스라엘이 되는 또 다른 한 밤을 만나게 됩니다얍복강이라는 강가에서 인간의 야망도 다 버리고 모아놓은 재산과 함께 욕심도 버리고 자기 중심적인 이기심과 감정의 두려움도 다 버리고 하나님과 단 둘이만 만나는 그런 한 밤을 지나면서 그의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겨루었다"는 뜻입니다. 얍복 강가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붙잡고 축복하지 않으면 놓지 않겠다고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더 이상 야곱이라고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라" 해서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겨루었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과 다투어서 깨지지 않을 사람이 없는데 야곱이 깨졌다는 말입니다. 환도뼈가 부러져서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고, 하나님과 겨루어서 결국 항복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지만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자기 중심적인, 그리고 세속적인 삶을 그리고 육신에 져서 세속에 빠져 자기에게 묶여 있는 수 많은 시간들을 지나고 어느날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경험을 지나 한 인생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어느 날 이스라엘을 바꾸어 "여수룬아" 하고 부르십니다. 야곱이 나이가 많아 120세가 되었을 때 어느 날 바로 앞에 섰습니다. "그대 나이가 몇입니까" "내 나이가 120인데 지난 세월을 보니 수고와 많은 세월 고생을 했지만 그 지난 세월 아무것도 아니고 이제는 하나님 뜻대로 사는 나이120이 되었습니다" 하는 고백을 보면 여수룬이라고 하는 말의 가치는 하나님 앞에 똑바로 간다, 바르게 간다, 바르게 섰다는 얘기를 여수룬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야곱이 변해서 이스라엘이 되고, 이스라엘이 변해서 여수룬이 되는 인생의 과정을 우리에게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을 붙잡으신 후에 그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와 날마다 동행하셔서 이런 저런 사건과 어려움을 통해서 이스라엘로, 여수룬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손길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쯤 와 있는지 아실 것입니다. 내가 지금 외로운 밤을 지내고 있는 야곱의 단계인지, 얍복강에서 이스라엘이 되는 경험을 겪은 상태인지, 아니면 여수룬이 되어서 똑바로 서서 가려고 삶을 정돈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지는 하나님이 아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야곱, 이스라엘, 여수룬을 하나님께서 붙잡으시고 저를 통해서 새 일을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믿고 전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이 말씀은, 과거에도 많이 들었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이것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행하실, 옛적 일과는 비교가 안 되는 새 일에 대한 묘사가 그려내는 내용은 메말라 죽어 있는 상태에 생명의 물이 쏟아짐으로 다시 생명이 회생하는 것입니다. 본래적 뜻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 때에 광야와 사막을 완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특별한 보호와 배려를 베풀어 주실 것에 대한 약속이지만, 미래적으로는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새롭게 하시는 사역은 신약에서도 계속 됩니다. 고후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새해에는, 모두가 새로운 피조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내가 들어가는 곳곳이 정말, 사막이 변하여 옥토가 되고 길이 없는 곳에 길이 만들어지는..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역사에 내가 도구로 쓰임 받게 되기를 소원합니다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위대하신 하나님, 곧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9-20절을 보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하나님께서는 새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이 생각할 때에는 바벨론 제국에 포로가 되어 잡혀간지 벌써 70년이 다되어 갑니다. 바벨론 제국에 포로되어 간 후에 많은 어려움도 겪었으며, 낙심되었고,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바벨론 제국에서 해방되어 조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장차있을 포로생활에 대하여 내어다 보면서 하나님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심을, 위대하신 하나님은 지난 과거에 행하신 큰 일보다 더 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니 그를 바라 보라고 외침니다. 그러면 새 일, 신선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하나님이심니까?

2. 이스라엘의 구속자요 거룩한 자(14-15)

하나님은 침체되어 믿음과 소망도 다 잃어 버린 바벨론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제 포로 상태에서 해방되리라는 것을 점차적으로 확신시켜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강한 위로를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들에게 매우 격려가 되었던 그 존귀한 칭호를 여기에서 친히 취하시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말씀하심니까? 그것은 바로 "여호와 그들의 구속자" 라는 말씀입니다.(14) 하나님은 우리의 구속자가 되십니다. 이 구속이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가알"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노예를 해방할 때 대가(代價)를 지불하여 구해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가알이란 말은 잃은 권리를, 대가를 지불하던지 복수하여 되찾아 주는 것을 말합니다. 토지가 팔렸어도, 형제가 되찾아 줄 수 있습니다. 노예로 팔렸어도 가까운 사람이 속전을 지불하면서 자유인이 되고, 토지 경작이 가능해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중에 구출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바벨론에게 사로잡힌 노예가 된 유다 백성들을 포로에서도 건져내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속전을 지불해시는 하나님이심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되었지만, 우리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아들로 하여금 속죄의 제물로 삼으시고 우리를 속량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구속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이시며(14), "그들의 거룩한 자" 이심니다(15). 그러므로 그는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모두 지키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15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왕이시라 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창조자"로서 그들로 하여금 무()에서 백성으로 되게 하셨습니다(그것이 곧 창조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15절을 보면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출애굽을 진두 지휘하셨고, 광야 생활을 하게 하셨으며, 가나안을 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 인도 책임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셨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기만 하였다면 그들은 항상 안전하고 평안합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역시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왕이 되십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요,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이끌어들이시는데,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고, 큰 물 가운데로 지름길을 내신 하나님이십니다.

3. 과거의 역사를 보라.(16-17)

16-17절에 과거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바다에 큰 길을 내시고 거센 물길을 뚫고 한 길을 내신 이, 그들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거꾸러뜨리시고, 꺼진 심지처럼 사그라뜨리시려고 병거와 기마를 출동시키시고 군대와 용사를 출동시키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여기서의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어떠한 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홍해 구원 사역에 대해서 언급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로운 구원이 이전의 출애굽 사건과 같은 방식을 취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 점은 출애굽 사건을 이스라엘이 창조된 사건으로 보는 1-3절에 이미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16-17절에서 출애굽 사건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홍해 바다 구원에 대해서만 언급합니다. 이사야가 먼 과거에 있었던 홍해 바다 구원에 대해서 언급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 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실 구원이 과거의 홍해 구원과도 같이 확실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하나님이 과거에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것과 같이, 이제는 그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고, 큰 물 또는 거센 물결가운데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드셨다는 16절의 설명은 출애굽기14:21-22의 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바다 가운데 길을 내셨고,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 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애굽 군대의 궤멸에 대해서 언급하는 17절은 출애굽기14:23-28의 바로의 군대 몰살 사건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런데 17절은 흥미롭게도 하나님께서 애굽 군대를 "이끌어 내어서" 꺼져 가는 등불처럼 순식간에 몰살시키셨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래 애굽 군대를 광야로 이끌어 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게 한 자는 바로이지만(14:5-7), 이사야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이끌어 내어" 멸망시키셨다고 표현한 것입니다(14:4, 8; 38:3-6).첫 번째 출애굽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한 분에 의해서만 된 일입니다. 이 점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다음의 말씀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4:14). 그 까닭에 이사야는 16-17절에서 기적적인 구원의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냥 결과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입니다. 16-17절의 이러한 언급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권능이 어떠한 것인지를 강조하는 효과를 갖습니다. 기적적인 방식으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다시금 구원하실 하나님의 권능이 어떠한지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거기에 감추어져 있습니다아울러 이 두 절은 강대국의 어떠한 군사력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맞서지 못함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33:16-17; 44:6-7; 46:9). 그러므로 16-17절은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장차 그들을 바벨론으로부터 해방시킬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출애굽 사건이 중요했던 것처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었는가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더욱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천에하나 만에 하나 우리를 불러서 구원해주셔서 천국 백성 삼아주신 줄 믿습니다.

3. 새 일은 무엇인가요?(18-21)

16-17절이 18절 이하의 말씀을 주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설명하고 있다면, 18-21절은 그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16-17절만을 볼 경우,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은 조상들이 옛적에 경험했던 출애굽 사건과 같은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18절에서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 것이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훈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새롭게 하실 일이 옛적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획기적인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이 과거의 출애굽을 단순히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님을 암시합니다.(New Exodus). 19-20절을 보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이 흐르게 하신다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과거의 출애굽 해방이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고 그 바다를 마른 땅처럼 건넌 사건을 통해서 마무리되었다면,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새로운 출애굽은 반대로 하나님께서 광야, 곧 마른 땅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만드시는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다 가운데 길" 을 낸(16) 바로 그 능력이 "광야에 길" 을 낼 수 있으며, 그 길은 가장 큰 역경을 뚫고 행군할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메마른 땅을 물로 만드신 그가 가장 메마른 땅에 물을 대실 수 있습니다. "그의 백성, 그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뿐만 아니라 "들짐승 곧 사람과 및 타조도 마시게" 할 정도로 풍성히 물을 대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존경할 것입니다. 그러나 광야에 길이 있을 수 없으며, 사막에 강이 흐를 수 없다는 통념을 송두리째 뒤엎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기적이 지상 세계에서 도무지 경험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리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광야에 길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물이 없으면 모두 목말라 죽는 것을! 그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길도 만드시고, 사막에 강물도 흐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19절에서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도무지 주께서 하실 새 일의 가능성을 현실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시는지를 한눈에 알게 해준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해서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로운 구원이 놀라운 일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누구도 믿기 어려운, 그리고 누구도 감히 예측할 수 없는 기적적인 구원이 그들 앞에 전개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구원은 들짐승들 조차도 하나님을 공경할 정도로 깜짝 놀라운 일이 될 것입니다. 주께서 광야에 물을 대고 사막에 강을 내어 그가 택하신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마음껏 마시게 하시는 것을 보고서, 시랑과 타조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20). 주께서는 들짐승으로 하여금 그의 놀라운 일로 인하여 그를 공경하고 찬양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21절 말씀을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지으십니다. 제일 원인이신 그가 처음 창조와 새 창조의 최고의 목적이심니다. "여호와는 자기를 위하여 만물을 만드셨고," 특히 그의 이스라엘로 "그의 백성이 되게 하며 그의 이름과 찬양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 2023년을 새로운 각오로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하시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동행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새 일, 즉 신선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과거를 과감히 털고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