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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공동체

작성자peace(평화)|작성시간23.03.16|조회수46 목록 댓글 0

위로의 공동체

고후1:1-11

 

오늘도 예배하러 나오신 성도여러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께로 주워지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의 시국은 우리 모두가 서로 격려하고 위로해 주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내 백성을 위로하라! 내 백성에게 희망을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0: 1"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51: 3에도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66:13에도 하나님께서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두 번째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두 번째 편지가 곧 오늘부터 다시 시작되는 고린도 후서 입니다. 이 고린도라는 도시는 (18:11)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때 맺어진 인연으로 디도 유스도와 회당장 그리스보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오는 선교의 역사가 있었던 곳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어떤 자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는지에 대하여 몇 가지로 말씀합니다.

1,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자.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 입니다. 바울은 본문 (4)에 말하기를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 라고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과 고난에 처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곳에는 은혜가 있고 평강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고후6:10)말씀에서 말씀하기를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기뻐하고 가난한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면 이런 의미의 말씀입니다. 즉 사람들 보기에는 내가 상황적으로 가난해 보이고 망하는 자 같이 보이며 소망이 없는 자 같이 보이나 나는 오히려 주님의 위로를 마음에 기쁨이 있고 또 남을 부요케 하는 넉넉한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자를 은혜와 평강이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요즈음의 시국은 우리 모두가 서로 격려하고 위로해 주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내 백성을 위로하라! 내 백성에게 희망을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0: 1"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51: 3에도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66: 13에도 하나님께서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했습니다상한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가혹한 시련이 매일 매일의 생활을 어둡게 할 때나 슬픔이 우리를 압도할 때에 우리는 어디에서 위안과 도움을 찾을 수 있습니까? 인간의 지혜와 친구나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의 보살핌이 우리에게 필요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그들의 격려와 후원이 도움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영혼의 내적인 상처와 아픔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음을 곧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상한 마음들을 치료할 수 있는 오직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을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고후1:3)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마음을 짓누르는 슬픔 아래서 힘들게 싸우는 이가 있다면 "당신의 짐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십시오. 그리하면 주님이 당신을 붙드실 것입니다"(55:22). 당신의 슬픔을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분만이 아픈 영혼을 낫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정하신 시간에 그분만이 아픈 영혼을 낫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정하신 시간에 그리고 주님의 지혜에 따라 당신의 상한 마음을 주님이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루만져주고 치유해주며 회복시켜주는 곳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를 통하여 상한 마음을 치유받고 또 다시 다른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여 기도해주며 같이 울어줌으로 치유의 사역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2. 교회는 위로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5) 인생을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고난이 찾아 올 때가 있습니다. 환란과 같은 어려운 환경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별이나 사별과 같은 슬픈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잘 되던 일이 갑자기 실패한다든지, 사람에게 배신과 버림을 당하는 등 쓰라린 사건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인생의 많은 위기가 찾아 오고 고통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일을 만날 때 인내력으로 또는 정신력과 같은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가 너무 벅찹니다. 억지로 참아낸다고 해도 마음 속에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어서 계속 우리 자신을 괴롭힙니다. 또 다른 사람을 찌르는 가시가 되어 주변의 사람들에게 까지 괴로움을 안겨줍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만나 괴롭거나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한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혼자서 전전긍긍하며 방황하지 말고 속히 하나님의 위로와 만져주심을 받기를 기대하고 위로의 하나님을 찾아 만나야 합니다. 바울에게도 혼자 감당하기에 벅찬 고난이 있었습니다. 능력의 사람, 기적의 사람, 한 시대를 변화시킨 위대한 지도자 바울에게도 극한 환난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큰 환란을 만났습니다. (8-11)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고 바울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부의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일관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욕심을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글은 잘쓰는 데 말이 서툴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설교가 서툴다는 것입니다. 목회자인 바울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참 마음이 괴로웠을 것입니다. 교회 외적 환란-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아시아에서 많은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어떤 환난을 당하였는지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라는 말을 볼 때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8). 살 소망이 끊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나아가는 길을 완전히 잃은 상태를 말합니다. 희망이 없는 상태입니다. 마음에 사형선고를 당하였다고 했습니다(9). 큰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0). 바울도 내우 외환의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어려움을 겪은 경험들이 있습니까? 혹 아무도 나의 아픔을 아는 사람이 없어, 결국 나는 나 홀로 서 있는거야라고 탄식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극한 고난으로 괴로워하십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 찬양합니다.(3)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오히려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왜 이런 고통스럽고 어려운 상황에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있을까요? 원망과 좌절 탄식을 하지 않고 찬양할 수 있었을까요?

3. 위로의 하나님(4-6)

바울은 극한 고난 가운데 자비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위로라는 말은 파라클레시스로 곁으로 부르다.는 말입니다. 낙담한 상태에 있거나 환난 중에 있는 자를 찾아오셔서 곁에서 격려하고 용기를 복돋아 주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단순한 동정이 아닙니다. 어려움 당한 사람을 향해 마음 아파하는 것이 동정이라면 위로는 힘을 가진 사람이 돕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힘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옆에 계셔서 걱정을 덜어 주고 후원을 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 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하나님의 위로는 어떤 위로입니까?(4-6)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위로입니다(4). 하나님이 위로 하지 못할 만큼 큰 환난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넘치는 위로입니다.(5) 나의 마음이나 사람을 통해 주시는 위로 이전에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주시는 위로입니다. 우리는 위로의 원천이신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는 항상 구원과 관계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는 "지금 네가 당하는 고난은 진짜가 아니라."든지, "곧바로 너의 고난을 완전히 제거해 주겠다."라든지, 아니면 "결국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니 염려하지 말아라." 하는 종류의 위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거의 죽음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사망에서 자신을 건지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910절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엄청난 위기와 환난을 주신 것은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는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 즉 부활과 영생, 구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주는 일시적 위로와는 다릅니다.

4. 환난 가운데서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위로자가 없다고 한탄하였습니다.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69:20)" 다윗은 성공한 왕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위에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진정한 위로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가슴을 녹여 주고 어루만져 주고 같이 마음 아파해주고 번민을 풀어줄 진정한 위로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진정한 위로자가 되십니다. 실패한 모세를 위로합니다. 아브라함을 위로합니다. 위기에 처한 야곱을 위로하여 세웁니다. 낙심자 엘리야 위로하여 다시 사명을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위로자입니다. 황폐한 곳을 위로하십니다(51 : 3).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위로하십니다(66:11,13). 위로의 결과는 광야가 에덴 같고, 사막이 여호와의 동산 같이 되고(51 ; 3),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고(51 : 3, 52 : 9), 두려워 안 하게 됩니다(51 : 12). 하나님만이 참된 위로자임을 안 바울은 9절에서 하나님만을 의뢰하노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도 건지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과거의 큰 위험에서 여러번 건지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미래의 구원에 대해 확고한 소망을 가지게 되기 바랍니다. 환난 받을 때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럴 때 우리를 위로해 주고 같이 있어주고 세워주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여러분이 감당하기 어려운 환란에 처했을 때 진정한 위로자는 누구일까요? 여러분은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그리고 위로를 받고 마음의 상처가 깨끗이 치료되었습니까? 지금 마음에 큰 고통을 안고 혼자 괴로와하는 분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다가오시는 하나님께 마음의 상처를 내어 보이며 온전히 치유받기를 바랍니다.

5. 위로 받았으니 위로하며 살아야 합니다.(4)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곁으로 다가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치유해 주셔서 건강하게 하시고는 이제 우리를 통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서로 위로하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와서 치유받아 건강하게 되고 그 은혜를 기억하여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싸매어주는 일에 적극적인 치유공동체 위로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환난 중에 있는 자신을 위로한 하나님이 그로하여금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라고 하나님의 뜻을 소개하고 있습니다(4). 하나님이 환난 중에 위로하는 것은 자신만 위로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중에 위로 받은 것도 고린도 교회를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4). 바울은 자신이 받은 환난이 오히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위로하고 구원하기 위해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6) 바울은 자신이 받은 환난 가운데 위로를 받는 것도 자신과 같이 고난을 받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위로로 역사하여 고난을 견디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6). 우리도 이제는 위로의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을 당하십니까? 왜 나만 이런 병에 걸려야 합니까? 왜 우리 가정은 이런 어려움이 오고, 왜 이렇게 고생을 하여야 합니까? 하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의심하고 회의에 빠지지 마십시오. 성경은 우리가 환난받는 이유를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고난받는 다른 사람의 위로를 위해서입니다(6). 그리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6). 저들로 우리를 보고 고난을 견디게 하기 위해서입니다(6) 우리는 이제 위로의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위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의 시편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위로를 받습니까? 고난 속에 위로의 체험을 받은 자의 위로는 힘이 있습니다. 나의 약함, 나의 실패가, 나의 약점이 다른 사람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의 가난함이 고통이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401절에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사람에게 다가가서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고독한 사람, 죽어 가는 사람에게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위로가 있는 곳에 사막이 오아시로 변합니다. 미움과 질투, 원망과 불평이 있는 곳이 희락과 평강으로 변합니다. 증오가 있는 곳에 용서와 사랑이 넘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에게 위로를 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도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위로를 우리의 이웃에게 전하는 위로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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