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예수님의 제자되어 살자

작성자peace(평화)|작성시간23.05.22|조회수57 목록 댓글 0

예수님의 제자되어 살자

요한복음 13:33-34, 잠언 10:12

 

오늘은 스승의 주일입니다. 믿음의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 스승의 본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스승의 주일을 맞아 우리 자녀들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의 아이들, 이제 막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의 기쁨과 능력을 삶을 통해 드러내는 신앙의 선배, 신앙의 본이 되는 스승이 가득한 성도가 되길 힘쓰시기 바랍니다. 지난주 말씀을 준비하면서 재미있는 예화가 있어 소개해드리면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를 뽑기로 마음을 먹으셨습니다. 그래서 신문에 광고를 냈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지원자들 가운데서 올림픽 경기를 통해서 12명을 선발하기로 하셨습니다. 첫 번째 경기는 기도대회였습니다. 지원자들은 모두 기도를 유창하게 잘 했습니다. 발음도 정확하고, 말하는 속도도 잘 조절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높은 이상을 담고 있는 고상한 기도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기도대회를 통해서 우승자나 합격자를 가려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도 가운데에는 진정으로 마음을 쏟는 기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경기는 예배대회였습니다. 지원자들은 예배를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해왔습니다. 아름다운 예배의복을 준비한 사람도 있었고, 음악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예배대회를 통해서도 합격자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예배에 마음이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경기는 교육대회였습니다. 계속된 시험에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잘 준비된 사람들만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공을 들여 포스터도 준비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청각 교육을 위해서 비디오도 빌려왔고, 어떤 사람은 소그룹을 동원하여 연구수업을 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합격자는 없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에 마음이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합격자는 단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올림픽 심판을 맡아 제자를 뽑으려던 예수님은 심신이 너무 지쳐서 쉬면서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강가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강가로 나가셨던 예수님의 눈에 놀라운 모습이 보였습니다.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고기를 잡는데 온 마음과 정성을 쏟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제자로 삼으셨다는 이야기가 있입니다.

 

1. 예수님의 제자

우리 신앙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계속 말씀을 드러왔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편지, 그리스도의 군사, 하나님의 동역자' 모두가 우리 신앙인들을 가리키는 말들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 등도 신앙인을 가리키는 표지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명칭들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인 단어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제자"라는 말일 것입니다. 제자라는 말은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사람을 뜻합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제자"'스승으로부터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제자"(mathetes)라는 말에는 좀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으로부터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예수님의 삶을 배우고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꿈과 비전을 함께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의 삶 전부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하고, 힘들고 고난이 닥친다 하더라도 자기의 생명을 내놓을 만큼 철저하게 예수님께 자신 전부를 위탁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붙여준 이름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이방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 교인들이 바라볼 때, 정말 예수를 닮아가는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붙여준 것입니다. 바로 그런 '그리스도인'을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단순히 예수 믿는다는 것과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다릅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요한복음 13-17장에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사랑하라"는 말씀이 56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그 중 44번이 이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에 쓰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제자들에게 가장 하고 싶어하셨던 말씀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걸 깨달은 사도 요한은 평생을 사랑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는 말년에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했습니다. 나이가 많아 거동이 불편하게 되자 교회의 젊은 청년들에 사도 요한을 부축하여 강단에 모셔놓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사도 요한이 강단에 서기만 하면 늘 "자녀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묻습니다. "선생님 왜 늘 같은 말씀만 하십니까?" 이때 사도 요한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주신 새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34절에서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실제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본문은 예수님께서 겸손하신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섬김의 모범을 보이면서 제자들에게 서로 섬길 것을 명하신 기록입니다. 예수님께서 본문의 교훈을 내리신 시기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며칠 전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떠나가시면 남겨진 제자들이 교회를 이루어 드디어 교회시대가 시작됩니다. 14, 15절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 밝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이 말씀은 주님께서 그때 그 당시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여 세워지는 신약시대 모든 교회 구성원은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15절에 예수님은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성도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서로 섬기며 봉사하는 것이 성도의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그렇게 할 때 교회도 건강해지고 자신도 건강해집니다. 이 이치를 알고 행하면 복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 겸손으로 낮아지신 사랑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신 말씀을 하시기 바로 앞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잡수고 계셨습니다. 이게 제자들과 먹는 마지막 식사였습니다. 이 식사를 마치고 나면 예수님은 군병들의 손에 붙잡혀서 총독 빌라도와 대제사장의 심문을 받으셔야 하고, 결국에는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권력자들의 손에 의해서 십자가라고 하는 가장 처절한 사형방법으로 죽임을 당하셔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착잡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식사를 하시던 도중에 일어서시더니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는 제자들의 발을 하나 하나 씻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자신이 발을 씻겨주는 이 제자들이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할지 너무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하게 기도하고 계실 때에 쿨쿨 잠이나 자고 있을 것입니다. 스승이라고 3년 동안이나 따라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군병들에게 잡혀 끌려가실 때에는 자기들도 잡힐까봐 두려워서 모두 도망칠 그런 못난 놈들입니다.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그는 천한 계집종 앞에서도 주님을 부인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죽은 자리까지 따라가겠다고 다짐하고 맹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주님처럼 잡혀서 고초를 당할 것이 두려워서 주님을 부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베드로의 발을 정성껏 씻겨 주셨습니다. 그 자리에는 가롯 유다도 있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이미 대제사장과 결탁하여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30개를 받고서 예수님을 넘겨주기로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런 배신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예수님과 함께 마지막 만찬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롯 유다가 자신을 팔게 될 것이고, 자신은 그 때문에 십자가에 고초를 당하고 죽으셔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롯 유다의 발까지 씻겨주셨습니다. 성경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가롯 유다의 발을 가장 섬세하게, 가장 오랫동안 씻겨주셨을 것입니다. 가롯 유다의 발을 씻기실 때에는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바로 제자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이고, 그게 바로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자신을 배신할 자까지도 다 씻겨주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더럽고 추하다고 생각되는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풍속에는 종이나 하인이 주인과 주인을 찾아온 손님의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승이시면서도 제자들을 발을 씻겨주신 것입니다. 낮아지신 사랑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13:14) 진정한 사랑은 낮아지는 사랑입니다. 권력을 사용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돈으로 매수한 사랑도 참 사랑일 수가 없습니다. 낮아짐으로 얻어지는 사랑만이 참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낮아짐의 사랑을 실천하셨고, 또 우리에게 "내가 너희 발을 씻겨 낮아짐의 사랑을 보인 것처럼, 너희로 낮아짐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낮아짐의 사랑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낮아짐의 사랑은 나를 배신하고 내게 상처를 준 그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피해를 준 그 사람보다도 더 낮아진 자리에 내려가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사랑, 주님을 부인할 베드로의 발을 씻겨주시고, 스승을 팔아먹은 가롯 유다의 발을 씻겨주신 주님의 사랑이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던 그 때에도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 바로 그런 낮아지신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사랑이 이미 우리의 가슴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주님께서 낮아지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낮아진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3. 끝까지 베푸시는 사랑

요한복음 13: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우리 주님의 사랑은 한 번 사랑하신 택하신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들이 배신해도 사랑하십니다. 그들이 좌절하고 절망해도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나 못난 사람들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 때에 주님 곁을 떠난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고, 또 친히 자기들의 눈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따르던 모든 삶을 내팽개치고 다시 갈릴리 바다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야겠다" 그러니까, 6명의 제자들도 베드로와 함께 갈릴리로 가서 옛생활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 갈릴리 바다에까지 찾아가셨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깨달은 제자들 앞에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렇게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은 "주님 제가 얼마나 못난 놈인지 주님이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주님을 배신한 것도 아시고,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없는 못난 놈인지도 아시지 않습니까? 주님, 저는 그런 놈입니다" 그런 고백입니다. 세 번이나 똑같이 질문해도 베드로의 대답은 늘 같았습니다. 그래도 주님을 베드로를 믿었습니다.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이게 주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배신하고 떠났을 때에라도 주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배신한 제자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믿음과 사랑을 회복시켜주신 주님이 보여주신 '끝까지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주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님의 그 사랑을 본받아 주님처럼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배신하며 나를 버릴 때에라도 내가 너희를 끝까지 참아주며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그런 사랑을 해야 한다." 그게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우리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 사랑은 우리 마음에 따라 사랑해도 되고,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물론 우리들 중에 어느 누구도 주님과 동일한 사랑으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그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면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작은 사랑의 사도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주님의 그 낮아지신 사랑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렇게 낮아지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도 그런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답게 낮아진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에도 주님은 오래 참으시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아니었던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 주님께서는 끝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을 받은 자답게, 우리가 서로 끝까지 참아주며 인내하는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지금은 사랑할 때입니다. 서로 겸손해져서 낮아지고 참아주는 사랑으로 사랑함으로 사랑이 없어 목말라하는 세상에 사랑을 공급하고, 하나님의 참 사랑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