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벧에돔의 축복
삼하6:6-12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나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집 성막을 지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 온 후 성막은 실로에 세워졌습니다. 블레셋과 전쟁이 치열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늘 강대국 블레셋에 시달렸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법궤를 가지고 나가 블레셋과 전쟁을 하면 하나님이 이기게 하여 주실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법궤를 가지고 나가서 전쟁하였지만 법궤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은 법궤 때문에 오히려 많은 피해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하나님의 법궤를 보관하기란 부담스러워서 법궤를 도로 이스라엘로 보내고 말았습니다.
법궤는 아비나답 집에 보관되었습니다. 사울왕은 믿음이 없던 왕이라 법궤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울 뒤를 이어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성전을 짓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래서 3만명을 동원시켜서 법궤를 운반하게 하였습니다. 수레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법궤를 실었습니다. 아효가 수레를 끌었습니다. 웃사가 수레 뒤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 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곤의 타작마당에 왔을 때 수레를 끌던 소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뒤에 있던 웃사는 법궤가 떨어질가 두려워 법궤를 손으로 잡았습니다. 순간 웃사는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손을 댈 수 없는 신비한 성물이었습니다.
법궤를 기쁨으로 나르던 3만명은 슬픔에 쌓여 웃사 장례식을 치루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오려던 계획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법궤를 나르기를 두려워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때 법궤를 오벧에돔이 자기 집으로 날라다가 보관하였습니다. 석달이 지났습니다. 불과 석달만에 오벧에돔 온 집에 큰 복이 임하였습니다.
오벧에돔은 법궤를 석달을 잘 모시고 다음과 같은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1. 자신이 복을 받았습니다.
오벧에돔 자신이 석달동안에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12)
2. 자손이 다 복을 받았습니다.
오벧에돔 집이 다 복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12) 그리고 역대상에 보면 오벧에돔 후손들이 모두 하나님의 집을 지키는 봉사자로 복을 받았음을 기록하여 주고 있습니다.
오벧에돔은 후손이 62명이 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능력있고 어떤 일을 하든지 잘 감당하여 내는 능력자들이었습니다. 자손들이 하나같이 다 축복을 받았습니다.(대상26:1-8)
3. 오벧에돔의 소유가 다 복을 받았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12)
4. 형제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 이명이며>(대상26:8)
형제까지 복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석달만에도 엄청난 축복의 역사를 이룰 수 있음을 오벧에돔은 우리에게 확실히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오벧에돔이 석달을 잘 했더니 그렇게 축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1.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법궤를 운반하다가 웃사가 죽자 사람들은 다 법궤를 무서워하였습니다. 심지어 다윗도 법궤 모시기를 두려워 하였습니다.<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그리고 법궤를 보관하기를 즐겨하지 아니 하였습니다.<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10)
남이 즐겨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축복하십니다.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열심히 봉사하며 일하는 랍비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회당지기가 새벽에 문을 열 때면 제일 먼저 나와 기도하였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회당지기가 문을 여는 데 와서 문이 열리기를 그 랍비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랍비님! 이렇게 일찍 기도하러 오셨나요? 귀가 얼 정도로 추운 날씨인데요?> <일찍이라고 그랬나?> <네>
<그런 말하지 말게나. 오늘 새벽 일어났더니 마귀는 벌써 내게 와 있었네. 그리고 너무 추운 날이나 편안하게 더 자라고 말해주었지. 그 때 나는 소리를 질렀지. 나는 아직도 안 일어났는데 너는 벌써 이 곳까지 깨어 와 있지 않느냐? 이 버리장머리없는 놈아! 너는 일찍 일어나 유혹하고 나는 누워 유혹을 당하라는 말이냐? 너는 네 고향 지옥으로 가라고 외쳤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러 뛰어 나왔다.>
다른 사람이 하기 싫은 것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마27:32)
하기 싫어 억지로 한 일이 나중에 복이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갔던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진 후에 복을 받았습니다. 썬다씽은 <십자가 속에는 복이 숨어 있다>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은혜받고 자원하여 십자가를 진 사람들에게는 물론이지만,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진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보상으로 주어졌습니다.
2. 변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벧에돔은 하나님의 법궤를 석달 모시고 살면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후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을 운반할 때 법궤를 따라 예루살렘을 이사를 갔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까지 영원토록 법궤를 지키는 문지기 반차가 되었습니다. 석달만 잘 한 것이 아니라 변치 않고 영원히 잘 하였습니다. 변치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벧에돔을 축복하실 때 석달만 잘 한 것을 본 것이 아니라 그 후도 변치 않고 잘 할 것을 보고 축복하셨습니다.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려 지느니라>(잠24:16)
우리는 의롭게 사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생각하는 의인의 개념을 전혀 달랐습니다. 의롭게 사는 이가 의인이 아니라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나는 이를 의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하면 변치 않고 꾸준히 일하는 사람을 솔로몬은 의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신 이유를 분명히 바울은 지적하여 주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 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 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4:17-22)
믿음은 꿈을 주고, 용기는 시작하게 하고, 끈기는 성취하게 합니다.
성경에서 제일 변치 않고 그 믿음 그대로 살아간 이를 보려고 하면 욥을 보면 됩니다.
욥은 동방에서 가장 의인이었습니다. 가장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최고로 깨끗하게 지냈습니다. 철저하게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 그에게 그럴 수가 있을까 할 정도로 처절한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자녀 10명이 모여 생일 파티를 하다가 한꺼번에 압사당하였습니다.
적군들이 몰려와서 그 많던 재산을 모두 노략질하여 갔습니다. 그렇게 건강하던 몸에 병이 들어 잿더미에 앉아 고름을 빼내고 있었습니다. 아내도 도망하였습니다.
그래서 혼자 잿더미에 앉아 흐르는 고름을 빨아내야 했습니다. 동방 최고의 사람이 동방 최하의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욥은 변치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더라>(욥1:23)
이 때 욥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러나 욥이 말했습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중 하나의 말과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 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 하니라>(욥 2:10)
오벧에돔이 석달만에 축복을 받은 것은 변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변치 않는 믿음 때문에 오벧에돔을 축복을 받았습니다.
3. 이름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벧에돔이 석달만에 축복을 받은 것은 이름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벧에돔이라는 뜻은 <에돔의 섬기는 자>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낳고 아들을 향한 소원을 이름에 넣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늘 섬기는 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섬기는 자가 되라고 이름을 지어 준 것입니다.
오벧에돔은 늘 섬기는 자의 자세로 이름대로 살아왔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법궤를 무서워하여 피하였을때 오벧에돔만은 섬겼습니다. 그래서 석달만에 그렇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름대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름과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이름이 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입니다. 결혼식을 할 때 신랑은 검은 옷을 입고, 신부는 흰 드레스를 입습니다. 왜 그런 색깔의 옷을 입는 것일까요?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신부가 흰 옷을 입는 이유는 남편이 무슨 색깔을 칠하더라도 그대로 받아 드리라는 의미입니다. 흰 색에는 무슨 색이든지 칠하는 대로 칠해집니다.
신랑이 검은 옷을 입는 것은 무슨 더러움도 다 받아 드리라는 것입니다. 검정 색깔에는 어떤 것이 묻어도 검정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어떤 색깔을 우리에게 칠하여도 그대로 그 빛을 내야 합니다.
오벧에돔, 그는 3만명이 다 법궤를 놓아 두고 사라졌지만 그 법궤를 끌어 안고 석달 동안 섬긴 것 하나가 그런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금년이 석달 남았습니다. 남은 석달 동안에 오벧에돔과 같은 은혜가 임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