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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한 가지 소원

작성자peace|작성시간11.05.04|조회수157 목록 댓글 0

내가 바라는 한 가지 소원 

271~ 6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소원을 품고 삽니다.

연로하신 어르신들의 소원은 편안히 잠자다 하나님 나라 가는 것입니다.

부모의 소원은 자식들이 잘되는 것입니다. 아프신 분들은 건강하게 사는 것이 소원입니다.

목사의 소원은 무엇일까요?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비전을 이루어가는 교회로 든든히 서가는 것입니다. 이 민족의 소원은 통일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소원이 없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소원이 무엇이냐 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위한 소원이냐 입니다. 소원은 있어도 잘못된 소원을 품으면 돈여자와 결혼을 합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소원을 품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스타킹이 됩니다. 그리고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는 소원을 가지면 소세지가 같은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소원을 품고 사는 자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아무런 기대나 소원이 없는 자에게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품고 있던 한 가지 소원을 보여줍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27:4)

 

다윗이 하나님 앞에 소원할 것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가 지금 처하고 있는 상황을 보십시오. 2절에 보면 악인들이 그의 살을 먹으려고 찾아옵니다. 그를 지키고 보호해야 할 군대가 반역을 일으킵니다.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이런 상태에 직면했다면 무엇을 소원할까요? 마땅히 하나님 나를 괴롭히고 죽이고자 하는 악한 대적자들을 물리쳐 주세요. 저 원수들을 물리쳐주세요.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해주세요얼마나 구할 것이 많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다윗이 바라는 소원은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간구했던 소원입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 있지만 다윗은 자신의 안전이나 승리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의 한 가지 소원은 바로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바로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입니다. 이새의 아들 가운데 가장 부족한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넘치는 축복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주님만을 사모하며 사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다윗의 신앙생활의 중심은 왕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성전을 자신의 모든 통치와 삶의 중심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그가 왕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다윗성으로 모셔오는 일이었습니다. 법궤가 성으로 들어올 때 그는 왕의 체면이나 자존심까지 다 내려놓습니다. 바지가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모든 신하와 백성들 앞에서 춤을 춥니다. 그만큼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를 최고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은 궁궐에 거하면서 법궤가 장막 안에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성전 세우는 것을 사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전쟁을 통해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에 허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최선을 다해서 성전 지을 준비를 합니다. 넘치도록 최고의 예물을 올려드립니다. 그래서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모든 준비를 해줍니다.

 

이처럼 다윗은 항상 성전을 최고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시편 23편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심을 고백하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23:6)

그의 평생의 소원은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로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세상에서는 악인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대적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자기와 동행하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막아주시고, 물리쳐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오직 그의 소원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최고의 칭찬을 받는 비결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을 품어야 합니다.

모든 소원이 하나님 앞에서 응답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2-13)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의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뤄야 합니다. 여기서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영생을 얻었습니다.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상속자가 됐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성화의 삶을 말합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의 소원을 품고 사느냐 입니다. 사람은 어떤 생각, 어떤 소원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서 말과 행동이 결정됩니다. 만약 내가 음악가가 되겠다는 소원을 품으면 먼저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닮기 위해서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학교에 진학을 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성공적인 음악가로서의 삶을 위해 달려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어떤 마음의 소원을 품고 사는냐가 중요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의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소원을 품고 살라고 부탁합니다. 우리들이 소원을 품되 자신의 유익이나 기쁨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을 품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을 품어야 하나님이 기쁨으로 응답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소원을 이루는 비결을 알았습니다. 시편 37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37:4)

 

내 마음에 소원을 품는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을 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소원을 이루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시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내 소원을 이루시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당연하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을 품게 됩니다.

 

내 안에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면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한 소원을 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려고 배를 탑니다. 배 삯을 지불하고, 태연하게 배 밑에서 잠을 잡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풍랑을 통해 그를 깨우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선원들이 네가 어찌 여기서 잠을 자고 있느냐?’ 책망을 받습니다. 그 결과는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을 보내는 혹독한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요나가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이 성이 멸망하리라외치자 왕부터 모든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요나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방법으로 움직이면 수고하고도 얻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고 애를 쓰지만 소원의 항구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내 안에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욕망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고생만하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요나처럼 시련을 당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을 보십시오. 역대하 1장에 보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일천 번제를 드립니다. 일천번제는 학자의 해석에 따라 다릅니다. 한 마리씩 천 날을 드렸다는 해석과, 한꺼번에 천 마리의 소를 잡아 드렸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또는 당시에 아침, 저녁으로 제사를 드린 것으로 보아 500일 동안 드리지 않았느냐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드렸느냐 방법이 아니라 그 마음의 중심입니다. 오늘날도 소 한 마리를 잡는 것이 얼마나 큰일입니까? 그런데 일천 마리의 소를 잡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고 싶은 열망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아버지 다윗의 위업을 계승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왕국을 만들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그런 솔로몬의 마음의 중심을 기억하시고 하나님께서 밤에 나타나셔서 솔로몬에게 묻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 원하느냐?’ 그러자 솔로몬은 즉시로 대답합니다.‘백성을 바르게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이 시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가장 원하는 한 가지 소원을 말하라면 여러분 즉시로 말할 수 있는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까? 이것은 준비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솔로몬의 그 마음의 소원을 기뻐 받으시고,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귀와 수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소원을 품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 와도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용맹해서가 아닙니다. 가장 강한 군대를 가졌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를 따르는 충성된 신하들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다윗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1)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어둠을 밝히시는 빛이심을 믿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해주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원수들 앞에서도 상을 베푸시는 생명의 능력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누구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미 골리앗과의 대결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기 편이 되어주심을 경험했습니다.

 

우리의 소원을 이루는 비결은 바로 사람을 의지하거나 세상의 경험이나 지식을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소원을 성취합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 역시 다윗과 같은 담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반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1-32)

우리가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셨는데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목숨까지 던지신 분이 무엇이 아까워서 당신의 자녀들이 구하는 것을 외면하시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믿음입니다. 우리들이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사람 가운데 이방인으로서 최고의 칭찬을 받은 분이 있습니다.

그는 로마의 백부장입니다. 자기 하인 가운데 한 사람이 중풍병이 걸렸습니다. 백부장은 하인 하나쯤은 무시해도 됩니다. 만약 죽어도 다른 사람으로 채우면 됩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하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침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애기합니다.

백부장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마음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서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백부장이 뭐라고 말합니까? “예수님 내 수하에도 신하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옵니다. 예수님이 어찌 저희 집까지 오시겠습니다. 주님이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할 수 없으니 그냥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 신하가 나을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예수님은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백부장을 보고 놀랍게 여기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8:10) 그리고 백부장에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아멘!

 

주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했던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은 그의 믿음대로 하인의 중풍병을 치료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백부장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분량대로 역사하십니다.

오늘 다윗은 악인들이 살을 먹으려고 달려들고, 군대가 대적하여 포위해도, 심지어 전쟁이 일어나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태연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자는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믿음대로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기쁘게 여기십니다. 그는 항상 예배하기를 기뻐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리기를 기뻐하는 자에게 그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서혜경 씨가 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는 어머니의 뒷받침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로 미국에 갔습니다. 어린 나이에 낯설고 물 설은 이국 땅에서 삶은 너무나 외롭고 어려웠습니다. 수없이 울기도 했습니다. 주일 오후가 되면 서울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오는 전화인데 매주일 똑 같은 말입니다. “혜경아 잘 있었냐? 안 아프지, 교회 다녀왔냐?" 서혜경은 엄마에게 거짓말 할 수 없어서 교회를 다녔습니다. "교회 다녀왔냐?" 이 말이 그가 성인이 된 후에 하나님의 음성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가 인생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온 맘과 정성을 다해 예배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어디로 가든지 형통케 하시는 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마음에 품고 있는 지속적인 소원이 무엇인지요? 하나님의 성전에서 주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고라 자손의 고백처럼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84:10)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과 사랑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소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로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빛이시요 구원자시요 내 생명의 능력이 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다윗이 평생동안 가슴에 품고 살았던 한 가지 소원-하나님의 성전에 살면서 주님의 아름다움을 사모했던 그 마음의 소원이 바로 우리 모두의 소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다같이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입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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