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아는 사람
시편 116:12~14
옛 말에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우리 인간들의 심성을 잘 표현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 원수는 없고 은혜만 있는 사람도 없고, 은혜만 있고 원수는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이 살기 힘들고 어려운 까닭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고 누리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에 원수만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은혜를 잊고 원수만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하나도 바뀌지 않아도 만일 우리가 변한다면, 다시 말해서 우리가 원수를 잊고 은혜만 기억하는 사람이 된다면 세상도 좋아지고 우리의 마음도, 삶도 좋아질 겁니다.
1. 은혜를 알면 우선 내가 행복해 집니다.
왜냐하면 감사함이 행복함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이하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는 것과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똑 같은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항상 기뻐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2. 은혜를 알면 은혜를 베푼 사람이 행복해 집니다.
은혜를 알면 은혜의 상승효과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은혜를 알지 못하면 은혜의 급감효과가 일어날 겁니다. 은혜를 베푼 사람의 마음 속에 ‘다 소용없어’라는 부정적인 마음을 심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50:23에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감사가 하나님을 행복하게 하고 그 때문에 감사로 제사를 드린 자에게 하나님이 작심하시고 복에 복을 더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은혜를 아는 것이 세상과 사람을 좋게 만듭니다. 은혜를 모름이 세상과 사람을 나쁘게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를 돌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 저도 있고 여러분들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하나님을 행복하게 한 기막힌 말씀입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아멘.
이 시편의 기자에게는 좋은 일만 있었을까요? 은혜만 있었을까요? 시편 16편을 잘 읽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있습니다. 3절의 말씀을 보면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라는 표현이 있고, 10절에 보면 “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고백하고 노래하는 이 시편 기자의 삶에도 우리 못지 않은 어려움과 역경과 고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삶이 고통스러웠으면 ‘스올의 고통’이라는 표현을 썼겠습니다. 스올은 음부와 지옥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셨던 은혜만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설교를 준비하며 저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이 감사했습니다.
저는 제법 가난했었습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하는 염려가 많았습니다. 무엇을 입고 싶어도 입을 수 없었고, 무엇을 먹고 싶어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고, 무엇을 마시고 싶어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배불러서 살찌까봐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마음대로 다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삶에 여유가 생기면서 어리석어지고 교만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언젠가 제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디 가서 밥 세끼 못 먹을까?’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지 않으시면 당장이라도 세끼는 고사하고 하루에 한 끼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옛날에 설렁탕 집에 써 붙이 대중음식점이라는 말을 이해 못하며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 그릇에 오천 원을 받는 냉면 집이 대중음식점으로 이해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이 저는 감사합니다.
저는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이 기도하라 하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건성으로 하지 않습니다.
지난주간에 이어서 이번주간에도 건강 검진를 받았습니다. 대장내시검사를 받으면서 죽 대신에 누룽지만 계속 먹었습니다. 속을 비워야 내시경 검사를 하는데 먹기는 쉬워도 비우는 것 어려웠습니다. 그냥 비우는 것이 아니라 약과 함께 2리터 물을 먹는 것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일용한 양식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생기니 감사의 지경이 갑자기 넓어졌습니다. 감사의 지경이 넓어지니 덩달아 행복의 기경이 넓어졌습니다. 정말 범사가 감사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2, 좋은 만남을 주신 하나님이 감사했습니다.
좋은 부모를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이 새삼 감사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도 시절,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도 저 때문에 고생을 마다 않으시고 키워주신 좋은 부모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이 오늘 문득 감사했습니다.
좋은 아내와 자식을 주신 하나님이 감사했습니다. 제 아내는 제게 너무 좋은 아내입니다. 제 자식은 제게 너무 좋은 자식들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냥 줄이렵니다. 제 행복과 감사의 가장 큰 부분은 제 아내와 제 자식입니다. 가정입니다.
좋은 스승과 친구들을 주신 하나님이 감사했습니다. 저는 참 좋은 사람들 만나는 복을 유난히 많이 받았습니다. 좋은 목사님과 좋은 스승을 만나는 복을 받았고, 좋은 동역자들과 좋은 후배들을 복을 저는 받았습니다. 제가 좋은 동역자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게 좋은 동역자들을 만나는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3, 좋은 삶의 지혜를 주신 하나님이 감사합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좋았던 것이 믿음을 통하여 삶의 지혜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지식과 다른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우등상을 타본 적이 없었고, 소위 일류 명문이라는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별로 똑똑하지 못했으나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통하여 얻게 된 지혜로 말미암아 누구 못지 않게 형통한 삶을 얻게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저에게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 저는 감사합니다.
4. 구원의 하나님이 감사합니다.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모든 감사를 다 합친 것보다 뛰어난 감사는 죄 사함과 구원에 대한 감사함니다. 저는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을 압니다. 정말로 압니다. 그런데 그 죄가 저에게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목사로서 하는 상투적인 말이 아닙니다. 정말 저는 그것을 압니다. 그 어떻게 할 수 없는 죄를 예수님이 사하여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저의 저된 것은 그러므로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저는 없습니다.
저는 시편 32편에서 다윗이 고백한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다윗은 시편 32편 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저는 다윗의 마음을 압니다. 저도 그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혹 다른 복을 못 받았다고 하여도 이 복 하나만으로도 저는 평생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시편의 기자가 본문 13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이 말씀을 통하여 이 시편의 기자가 스올의 고통이라고까지 표현한 고통과 불행을 격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구원의 복이었습니다.
남이 받은 이런 저런 복을 혹 나는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복은 보편적인 복입니다. 이 구원이 복이 감사할 수 있으면 범사가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 시편의 기자와 같이 말입니다. 스올이 고통이 우리를 감싸도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를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시편의 기자는 1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저도 남은 평생 쓸데없는 욕심 부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제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으며 살고 싶습니다. 부족하지만 그것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 때문에 또 누리게 될 구원의 복을 이 땅에서도 누리며 세상에서 천국을 살다 하나님 앞에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