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에 새긴 사랑
이사야49:8-17
여러분은 어떤 이유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어떤 분은 부모가 믿어서 신앙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분은 친구의 전도를 받아서, 어떤 분은 교회의 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이 계기가 되어서, 어떤 분은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먼저 믿어서 등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단점이 다 있습니다. 아무리 존경하는 분들도 막상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허물과 단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알면 알수록 실망의 이유가 더 커집니다. 존경이 컸다면 실망도 그만큼 큽니다. 때로는 사랑이 지나쳐서 실망할 때 증오가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을 다시한번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보십시오.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 분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신지.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지를 다시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사랑을 알려주시고 참 행복의 비결을 알려주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예수님께 탄복하면 우리 인생에 서두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평신도로 섬길 수도 있겠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성직자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이런 직업을 가질 수도 있고, 저런 직업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 길을 각자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맞는 꼭 필요한 사명을 주실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아주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살면서 일의 열매를 많이 거둘 수도 있고, 적게 거둘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탄복하는 사람들은 그 성과가 어떻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개인과 우리 공동체가 정말로 예수님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1. 여러분의 삶이 예수님 때문에 행복합니까?
여러분의 학업이 예수님 때문에 즐겁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생활과 직장 생활이 예수님 때문에 행복합니까? 여러분의 봉사가 예수님 때문에 행복합니까? 여러분의 찬양이 예수님께 드려지므로 한없이 기쁩니까?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사람의 생활은 다릅니다.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사람의 봉사와 찬양은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 참된 진리를 모른체 주님곁 을 떠나갔지만 내가 만난 주님은 참 사랑이었고
여러분, 인생의 불행은 고독하다고 생각하는 데에 있습니다. 사랑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곁에 사람이 많은데 아무도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고독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불행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랑이 없는 게 아닙니다. 사랑을 몰라서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모르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후배나 제자들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오랜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서 나를 기억창고 속에 간직해 준 것만도 저는 고마운데 전화까지 걸어서 안부를 물어주고, 또 좋은 기억들을 말해 주는 것을 들을 때 마다 한편 저는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대부분의 후배들이 저에게 처음 묻는 질문이 이것입니다. “목사님, 저 아무개인데....기억 안 나시죠?” 그런데 제가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저렇게 설명을 하면서 “내가 너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면 그 졸업생은 깜짝 놀라면서 자신이 수많은 학생들 중에서 선생님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매우 감동을 하는 것을 봅니다.
2. 본문해석
오늘 이사야 본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늘어놓는 이야기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14절입니다.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 “하나님, 나를 버리셨죠, 하나님 나를 잊으셨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그 물음 속에는 낙심이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런 질문을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붙잡혀 갔습니다. 바벨론 왕 고레스 가 칙령을 내려서 포로 해방을 선포할 때 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70년을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고통 가운데 해방시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해 주시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0년, 20년, 30년 50년... 세월이 지나도 포로해방은 멀리 건너간 이야기 처럼들렸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에 포로로 붙잡혀 와서 노인이 된 사람들을 제외하고 예루살렘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죽어 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예언자들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우리를 잊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끝나 보니까 70년이지, 끝나기 전 70년은 기약이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희망이 사라져가는 시대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기대하고 신뢰하는 신앙이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 때 이사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젖먹는 엄마와 자식의 관계에 비유하며 희망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엄마는 자신이 낳은 젖먹는 자식을 잊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어쩌다가 정말 어쩌다가 엄마들 중에서도 자식을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그의 택한 백성을 긍휼이 여기시고 버리지 않으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3. 사랑의 불완전 요소
바울은 「사랑장」이라 불리우는 고린도전서 13장을 기록하면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13:13). 이처럼 사랑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것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낼수 있는 자율적(自律的)인 요소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사랑이 아닐 때 그 어떤 것도 완전할수 없습니다. 모든 사랑이 자기의 조건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오늘 있던 사랑이라도 시간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져가는 불완전한 현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가이없는 사랑(어버이 사랑)
양주동(梁柱東)선생은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한 노래말에서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 손발이 다닳도록 고생하시네 /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 어머니의 사랑은 가이없어라'고 하였습니다.
(1)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이유가 있거나 조건이 따르지 않습니다. 여기 "여인이 어찌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고 한 이 말 속에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애정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끝도없이 주고, 죽는 순간까지 남김없이 다 내어주는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내리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2) 용서하는 사랑
부모는 자식의 잘못을 몇 번이라도 용서합니다. 혹시 다른 사람이 그것을 들추어내면 한사코 이를 감싸 줍니다. 어쩌다가 자식의 과오가 드러나면 그것은 자기 때문이라고 변명해주며 그 책임을 부모가 가로맡고 나옵니다.
예수님의 탕자 비유에는 집에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에게 자기의 죄를 자백하며 품꾼의 하나로 인정해 달라고 하는데 그 아버지는 아들의 과오를 용서해주고 오히려 당당한 지위를 회복시켜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눅15:20-24).
(3) 좋은 것을 주는 사랑
마태복음 7:9-11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이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필요로 하는 것을 미리 알고 언제나 이를 공급해 줍니다. 자녀에게 반드시 주어야 될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거기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신앙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모할 보배라고 하였습니다(시19:10).
그래서 그는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그 법도를 따라서 살 것을 당부하였습니다(왕상2:2). 요한 3서 1:4에는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4) 완전한 사랑
본문 성경을 기록한 이사야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를 소개하면서 그것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으로 비교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15절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부모의 사랑에는 불완전한 점이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16절에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버이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에 있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먼저 공통점은 부모의 사랑이 사랑 중에서는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근접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적인 한계 때문에 무한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과는 근원적인 차이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사랑
(1) 무조건적인 사랑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주신 것을 두고 하나님 사랑의 극치라고 하였습니다(요3:16). 그것은 인간들의 요구나 조건에 따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조건없이 행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범죄로 인하여 멸망받을 인류를 사랑하시고 측은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9에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정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속죄의 사랑
범죄한 인간은 영원한 멸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롬6:23). 히브리서 9:27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죄와 심판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속죄의 은혜를 입혀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3:23-24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1-2에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3) 여호와 이레의 사랑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좋은 것을 준비해 주십니다. 오히려 인간이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미리 예비해 놓으시고 때가 되면 현실적으로 나타내 주십니다. 이 사실을 체험한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창22:14). 요셉은 훗날 그의 형제들 앞에서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어 놓으신다고 간증하였습니다(창50:20).
세상의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서 가이없는 사랑을 베풀고 있으나 자기의 능력 밖에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완전한 사랑으로 자녀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보장해 주시는 전능하신 아버지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혹시 하나님을 잊는다 해도, 저와 여러분들은 혹시 하나님을 버린다해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잊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태복음 1:21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의 별명이 임마누엘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 잠깐 동안 세상에 오셨다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부활승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심과 같이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오늘도 내 맘속에 함께 내주하시고 동행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4. 손바닥에 새긴 사랑
하나님께서 나를 잊지 않고 버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기만 해도 충분한데 황송하게도 하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6절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기셨다고 까지 말씀하십니다. 손바닥에 글씨를 쓴 정도가 아니라 조각칼로 새겨 넣듯이 새겨 넣으셨다고 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손바닥에 새겼고” 하나님께서 한 손에 새겨 놓고 보시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양손의 손바닥들에 새겨 놓고 기억하신 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소중한 존재들이란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했던 하나님과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차이가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내가 생각하는 나와 하나님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나를 “내 까진 것 ”정도로 값어치 없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를 향한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이 아니라 손바닥들에 잔뜩 나를 새겨 놓으시고, 나를 기억하시며, 나를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나를 “하나님의 손바닥들 이곳 저곳에 기록해 놓으시고 늘 보시며 좋아하신다” 내가 이렇게 존귀한 존재이다.
5. 제사장의 에봇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제사장들은 그들만이 입는 옷이 있었습니다. 그 옷 이름을 에봇이라고 합니다. 그옷에는 여러가지 특징이 있는데 특별히 에봇의 가슴에는 12개의 보석을 달았습니다. 네모 반듯반듯한 보석으로 위에서부터 가로로 3개씩 4줄을 달았습니다.
첫 줄이 “ 홍보석 황옥 녹주옥” 보석입니다.
둘째 줄이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 보석입니다. 영어로 보면 더 실감이 납니다. “emerald(에머랄드),sapphire(사파이어), diamond(다이야몬드)” 어떻습니까?
셋째 줄이 “호박 백마노 자수정” 보석입니다.
넷째 줄이 “녹보석 호마노 벽옥” 보석입니다.
이 모든 보석들을 가장자리를 금으로 두른 테두리 안에 있게 했습니다.(출28:17-20) 더욱 중요한 것은 보석에다가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한 보석에 한 지파의 이름씩 도장 새기는 법으로 파서 이름을 12보석에다가 새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보석흉패를 의복중의 가장 중심이 되는 가슴에 달았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내 존재와 내 이름을 보석으로 존귀하게 여기시고 하나님의 중심, 가슴에 품고 잊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8:29입니다.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께 영원히 기념할 존재들입니다. 제사장의 복장에는 또 한군데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봇의 어깨 부분입니다. 에봇의 어깨에도 호마노란 보석이 양쪽에 한 개씩 두 개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쪽 어깨의 보석에 6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머지 다른 어깨의 보석에 다른 6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12지파의 이름이 제사장의 옷 어깨 보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석은 금테에 물렸습니다. 보석에 새긴 이름이 에봇의 어깨위에 있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어깨는 힘을 상징합니다.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온힘을 다해 능력가운데 나를 붙잡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8:12입니다. “12 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 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이름이 잊혀 지지 않고 영원한 기념이 되게 하란 말씀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인 저와 여러분들의 이름과 존재가 하나님께 그런 존귀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발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은 잊으실 지라도 아들 예수의 피가 발라진 것은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은 버리실지 몰라도 아들 예수의 피가 발라진 것은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험한 세상을 살면서 때로 지치고 힘들어 넘어질 때 낙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생각하는 나만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나를 기억하는 것이 힘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도 않으시고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오늘 이사야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 이 말씀과 이 믿음이 항상 힘이 되고 축복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