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눈물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가 얼마나 크고, 무겁고, 더러운 것인가를 깨닫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나요? 날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담당하시고, 처절하게 부르짖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 앞에 가슴 찡한 눈물이 흐르지 않으셨나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은 눈물을 통해서 전달되고, 느껴집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가슴이 메마르고, 우리의 눈에 눈물이 메말랐습니다. 여러분이 주님 앞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눈물 흘린 기억이 언제인지요? 주님 앞에서 나의 더러운 죄를 바라보며 참회의 눈물을 흘린 적이 언제인지요? 주님이 베풀어 주신 놀라운 은혜와 사랑 앞에서 기쁨으로 찬양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언제인가요? 내 눈에 눈물이 말랐다는 것은 그만큼 내 영성의 샘이 메말랐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눈물이 메마른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치십니다.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눅7:32)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 메마르고, 강퍅한 세대라는 의미입니다.
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바로 눈물입니다. 그 눈물은 바로 예수님의 눈물입니다. 천박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눈물이 아닌 주님의 눈물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3년간의 공생애 사역기간 동안 예수님은 3번 우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예수님은 마리아와 가족들을 보시고 우셨습니다.(요11:33-35)
예수님의 그 눈물은 동생 나사로를 무덤에 장사하고 슬픔에 젖어있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고통을 이해하시고, 이해하실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을 공감한다는 표현입니다. 사랑하는 동생이 죽었고, 그 동생을 자기들의 손으로 무덤에 장사해야 했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그 슬픈 마음을 누가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성경에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 동네 사람들이 "보라, 예수님께서 평소 나사로 얼마나 사랑하셨는가!"(요 11:36)라고 소근거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정말로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셨기 때문에 마음에 큰 고통과 슬픔 가운데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고통, 그리고 슬픔을 함께 나누고 계신 것입니다. 마르다의 가족을 사랑하셔서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시고자 눈물을 흘리셨던 예수님! 그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히 4:15) - 이 말씀은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아픔에 동참하여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가 슬픔 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와 함께 슬퍼하시고, 우리가 힘들어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을 때에도 우리 대신 짐을 지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멀리서만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아픔과 슬픔과 고난을 우리를 대신해서 짊어지신 분이십니다. 우리 대신 아파하시고, 우리 대신 슬퍼하시는 그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고통과 슬픔의 짐을 대신 져 주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이웃의 고통과 슬픔의 짐을 나누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우리가 마땅히 담당해야할 연약한 자의 약점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남몰래 흘리는 눈물입니다. 고통 가운데 절규하며 흘리는 눈물에 주님처럼 함께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주님의 눈물이 필요합니다. 우리 주변에 우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녀의 일로, 직장의 일로, 사업의 일로,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가슴 아파하며, 눈물짓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함께 아파하며 눈물 흘리는 것이 하나님의 영적인 가족들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4:15) 이것이 진정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믿음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종종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지 못하고 배 아파 합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파하는 심정을 가지고서는 진정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그 일의 당사자인 것처럼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슬픔 당한 자가 있다면 그 슬픔이 나의 아픔처럼 느껴지고 다가와야 합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공감하는 마음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오라비를 잃어버린 마리아를 위로하시면서 눈물 흘리신 주님, 그 주님의 눈물이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도 흘러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울 때, 그 눈물이 우리의 상처난 가슴을 싸매어 주고, 치유하는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2.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고 우셨습니다.(눅19:41)
수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42절에 나와 있습니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예수님의 눈물은 평화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향한 탄식의 눈물입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성’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의 눈에 비추어진 예루살렘은 더 이상 평화의 성이 아닙니다. 불의 한 자들의 횡포와 폭력이 난무하는 악한 도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무서운 도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예루살렘 성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무너질 것을 보셨습니다.
실제로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의 지휘아래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됩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평화를 잃어버린 하나님의 도성에 대한 비통함의 눈물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과 대한민국을 보신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요?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힘을 가진 자들이 횡포를 부리고, 우상숭배가 극에 달했습니다. 10만명의 목회자에 비해 6배가 많은 60만명의 무속인들이 활보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운세가 유력 일간지마다 게재되고 있고, 유명 무속인들의 광고가 실립니다.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서로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작년에 Again 19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기념하여 많은 교회와 교단들이 이 땅에 다시 한번 대부흥의 역사를 일으켜보자고 대형집회와 많은 행사들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는 오히려 더 혼란하고, 하나님의 공의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세상에 유일한 희망의 등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때에 겸허하게 다시한번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며,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평화를 잃어버린 이 시대의 아픔이 바로 나의 죄요, 나의 가증함이요, 나의 패역함의 결과임을 인정하며 참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흑암 같은 어둠의 시대에 보배로운 사람들을 통해 진리의 빛을 밝히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악할 때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고 인정받는 노아를 택하셔서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를 준비시켰습니다. 어두울수록 빛이 더욱 환하게 비추듯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마음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울어야 할 때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향한 눈물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다시 열방을 향해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애타는 마음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자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3.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기도하며 우셨습니다.(눅22:42-44/히5:7)
예수님은 세 번째로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눈물로 기도하며 우십니다.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을 이미 알고 계신 주님은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던지 의사인 누가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더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22:44)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예수님은 장차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며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셨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사랑의 눈물입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언제나 눈물과 희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사랑은 눈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 뭉클한 감동이 오고, 눈물이 흐릅니다. 최고의 사랑은 바로 아가페의 사랑,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내어 놓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가장 사랑하는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놓으시고, 내가 너희를 이만큼 사랑하노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대가나 값을 지불하지 않았지만 오직 믿음으로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마땅히 주님의 사랑에 반응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님께서 바로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하시면서 심히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셨다면 우리도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몸부림쳐야 하지 않을까요? 최고의 사랑, 최고의 섬김은 바로 내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도보다 더 큰 사랑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이 예배드리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봉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생명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이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바로 생명을 살리는 것,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사도행전의 비전은 바로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여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4. 지금은 주님의 눈물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성경에 쓰임 받는 위대한 종들은 눈물 골짜기를 지나며 눈물로 주님을 만난 자들입니다. 다윗은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56:8) 라고 눈물로 탄식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눈물로 기도하는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히스기야는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심히 통곡하며 눈물로 간구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해 그림자를 10도 물러가게 하시는 증거를 보여주시고 생명을 연장시킵니다.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눈물입니다. 마음이 힘들고 곤고하십니까? 삶이 힘들고 지쳐있습니까?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 속에 직면해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눈물로 아뢰십시오. 진정한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오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내가 기도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눈물로 간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에게 다가오셔서 모든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 주십니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는 항상 너에게 있고, 나는 너를 끝까지 사랑하리라. 나는 너를 영원히 지켜 주리라.” 이 놀라운 사랑을 덧입고 사는 저와 여러분이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나사로의 죽음을 함께 아파하시며 우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평화를 잃어버린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통곡하셨듯이 우리들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도록 기도하며,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앞에 두고, 통곡하며 기도하셨듯이, 우리들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눈물로 기도하는 생명의 살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 126:5,6절은 말씀하십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마치 ‘길을 닦는 자’와 같다. 공장을 세우면 금방 제품이 생기지만, 길을 닦으면 바로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다. 열매가 없다는 사실이 눈물 나는 일이지만 그래도 길을 닦는 사람이 많을수록 장래는 희망이 있다. 우리교회는 우리는 아직 길을 닦고 있습니다. 우리성도들은 아직도 눈물로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면서 복음의 씨를 뿌리면 반드시 단을 거두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를 위해 흘리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눈물은 가슴 아픈 자를 위로하며, 병든 자를 치료하며, 절망 가운데 소망을 주는 기적을 일으키는 줄 믿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기도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아 드릴 때, 주님이 기억하셔서 용서해주시고, 은혜 베풀어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