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상대성과 절대성
(시공간은 아인슈타인이 만들어 낸 추상적 개념인가? 아니면 실재하는 물리적 실체인가?)
패러데이가 새롭게 발견한 항목들 가운데서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장(場)의 개념을 물리학에 도입한 것이다.
맥스웰은 외르스테드와 패러데이가 알아낸 사실을 수학적으로 말끔하게 정리하였는데, 최종적으로 유도된 방정식에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마치 라스파리안 헤어스타일(여러 가닥의 로프 모양으로 땋아 내린 머리 모양, 자마이카의 흑인들 사이에서 유행함)처럼 서로 얽혀 있었으므로 그때부터 이들을 합쳐서 ‘전자기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이로부터 발생하는 힘은 ‘전자기력’이라고 부른다.
맥스웰은 자신이 유도한 4개의 방정식을 분석한 끝에 전자기장의 변화나 교란은 파동의 형태로 전달되며, 전달속도는 시속 6억 7천만 마일(초속 30만km)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데 그 속도는 이미 알려져 있는 빛의 속도와 정확하게 일치했으므로 빛은 곧 전자기파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모든 경우에 파동의 속도란 바로 매질에 대한 속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빛(전자기파)의 전달속도 역시 빛을 매개하는 매질에 대한 속도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빛의 매개체는 지금까지 본 적도 없고 실험장치에 감지된 적도 없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존재해야만 했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존재가 확인되지도 않은 빛의 매질에 일단 ‘발광 에테르(간단하게 에테르)’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 일제히 현상수배에 나섰다.
뉴턴이 주장했던 절대공간과 빛의 매개체인 에테르는 매우 유사한 개념이다. 이들은 모두 운동을 정의하는 기준계로서, 절대공간은 가속운동을 정의하고 에테르는 빛의 운동을 정의한다.
바다에서 파도를 향해 헤엄을 치면 파도가 다가오는 속도는 그만큼 빨라진다. 반대로 파도를 등지고 헤엄을 치면 파도가 다가오눈 속도는 느려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에테르 속에서 광원을 향해 다가가거나 멀어져 가면 빛이 나에게 다가오는 속도는 시속 6억 7천만 마일보다 빨라지거나 느려질 것이다. 그런데 1887년에 마이컬슨과 몰리가 이런 조건에서 실험을 반복한 결과, 빛의 속도는 관측자나 광원의 운동상태에 상관없이 항상 시속 6억 7천만 마일을 유지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아인슈타인은 가장 단순한 해법을 찾았다. “에테르가 관측되지 않는 이유는 에테르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험결과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가능해진다. “빛은 다른 파동들과는 달리 매질 없이 전달되는 특이한 파동이다. 빛은 언제나 혼자 여행하며,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도 지나갈 수 있다.”
“맥스웰의 방정식에 정지상태의 기준이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애초부터 필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빛의 속도는 이 세상 만물에 대하여 시속 6억 7천만 마일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다. “대체 빛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희한한 성질을 갖는다는 말인가?”
속도란 물체가 이동한 거리를 이동하는 데 소요된 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다시 말해서 ‘공간을 측정한 양(이동한 거리)’을 ‘시간을 측정한 양(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으로 나눈다는 뜻이다.
(뉴턴에게 있어서 공간은 절대적인 실체이며 절대불변의 무엇이고, 시간 역시 외부의 어떤 기준에도 상관없이 항상 동일한 속도로 흐른다고 여겼다. 이런 관점에서 빛의 성질을 파악하려면 당연히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시간과 공간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공간과 시간을 전제로 하고 빛의 기묘한 성질을 파악하면 그 해결점이 보인다.)
지금까지 얻은 결과를 간단하게 요약해 보자. 시간과 공간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가? -시간과 공간은 빛의 속도가 관측자의 운동상태에 상관없이 항상 일정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각 관측자의 운동상태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빛의 속도가 누구에게나 일정하게 보이려면 한 관측자가 측정한 거리와 시간 간격은 그에 대해 움직이고 있는 다른 관측자의 측정값과 달라야 한다. 이것이 바로 특수상대성이론의 출발점이었다.
뉴턴은 시간을 따라가는 이동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이동은 아무런 상호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들 사이에 너무나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이 이루어 낸 가장 큰 발견은 바로 이것이다.
정지해 있는 주차된 자동차는 공간상의 이동이 전혀 없는 대신 시간을 따라 미래로 이동하고 있다. 정지해 있는 자동차와 그 안에 앉아 있는 운전자, 도로, 그리고 그들에 대해 정지해 있는 당신과 당신이 입고 있는 옷 등은 시간이 완벽하게 일치된 상태에서 일제히 시간을 따라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공간을 가로지르면 달리기 시작하면 시간을 따라 이동하던 운동의 일부가 공간의 이동에 사용된다. 다시 말해서 시간만을 따라 이동하던 자동차(정지상태)가 시공간에서 방향을 바꿔 시간과 공간으로 동시에 이동(주행상태)하고 있는 것이다. 주행 중인 자동차는 시간을 따라 이동하는 속다가 느려졌으므로, 이는 곧 자동차의 시계가 길에 서 있는 당신(그리고 길에 대하여 정지해 있는 모든 것)의 시계보다 느리게 간다는 뜻이다.
임의의 물체의 속도(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을 조합한 속도)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광속(빛의 속도)과 같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속도는 아무리 빨라도 광속을 초과할 수 없다. 왜 그런가? 정지해 있는 물체는 시간을 따라 광속으로 움직이는데, 여기에 공간이동이 추가되면 시간 쪽으로 향했던 광속운동이 공간 쪽으로 일부 할당되며, 공간을 이동하는 속도가 광속에 도달하면 시간을 따른 이동은 전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즉 광속으로 움직이는 물체는 나이를 전혀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특수상대성이론의 효과는 물체의 공간이동속도가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시간이동속도와 공간이동속도의 상복적인관계는 항상 성립한다. 물체의 속도가 느리면 특수상대성이론은 상식의 세계인 뉴턴의 고전역학과 거의 같아지지만, 둘 중 항상 옳은 이론은 특수상대성이론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빛은 매개체 없이 스스로 진행하고 관측자나 광원의 운동상태에 상관없이 항상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다. 이것은 이론과 실험을 통해 확실하게 검증된 물리법칙이다.
겉으로 보기에 움직이지 않는 물체가 정말로 완전히 정지해 있는지를 비교판단할 기준이 이 우주 안에는 없다는 뜻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물체의 운동속도가 변하지 않는 경우, 즉 등속운동만을 다룬 이론이다. 가속운동가지 고려한 상대성이론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15년에 ‘일반상대성이론’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하였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수많은 물리학자들은 회전운동을 특수상대성이론의 범주에서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고, 결국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회전운동을 하면 바깥쪽으로 힘이 작용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뉴턴과 마흐의 대결에서 뉴턴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전 우주적으로 절대적인 개념을 새로 도입하였다. 절대적인 시공간의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뉴턴의 역학에서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 개념이었던 것처럼,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시공간이 절대적인 개념으로 등장한다.
서로에 대해 움직이고 있는 관측자들은 사건의 동시성(둘 이상의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는지, 아니면 시간차를 두고 일어났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의견일치를 볼 수 없다.
(시공간을 상상한다는 것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비유적으로 삼차원으로 환원하여 생각해볼 수는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스냅사진으로 찍어 순차적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열하면 정육면체를 이룰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것은 정육면체와 평행으로 붙은 바로 그 스냅사진이다. 그러나 시공간 속에서는 그 정육면체의 단면을 스냅사진처럼 평행으로만 자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측자들의 상대속도에 따라 단면은 평행으로도 자를 수 있고 사선으로도 자를 수 있다. 상대속도의 차가 클수록 각도의 차이는 더욱 커진다. 다시 말하자면 절대적인 시공간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따라 상대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즉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 물리량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모든 만물이 다 상대적임을 주장하는 이론이 아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빵을 자른다 해도, 거기에는 두 사람이 완전히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빵 전체의 생긴 모습에 대해서는 두 사람 다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자른 빵의 단면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자신이 잘라 낸 모든 단면들을 한데 보아서 원래의 빵을 재구성한다면 두 사람 모두 동일한 결과를 얻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로에 대하여 상대운동을 하고 있는 두 명의 관측자들이 흐르는 시간을 따라 시공간을 순차적으로 자른 뒤에 그 단면들을 모두 겹쳐서 원래의 시공간을 재구성했다면 그 결과는 다를 수가 없다. 이들이 시공간을 자르는 방법은 다르지만, 빵의 전체적인 형태가 불변이었던 것처럼 시공간 자체는 관측자들의 상대운동과 아무런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시공간의 절대성)
어떤 물체가 시공간 속에서 직선궤적을 그리려면 그 물체는 공간 속에서 직선경로를 따라갈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균일한 운동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운동의 방향과 빠르기가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등속직선운동을 의미한다.
만일 어떤 물체가 시공간에서 직선경로를 따라가고 있다면 그 물체는 가속운동을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시공간에서 직선이 아닌 다른 궤적을 그리는 물체는 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가속운동은 시공간에서 직선이 아닌 곡선궤적으로 나타나며, 이것이 바로 가속운동의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공간에 나타나는 궤적의 기하학적 생김새는 가속운동의 여부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역할을 한다. 운동의 기준은 공간이 아닌 시공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지하고 있다 여기는 물건도 시공간에서는 등속운동 중이다. 우리들은 모두 시공간에서는 광속으로 운동하고 있다.)
<공간과 시공간에 대한 개념의 변천사>
뉴턴 :공간의 실체이다; 가속운동은 상대적이지 않다; 절대적 관점 |
라이프니츠 :공간은 실체가 아니다; 모든 운동은 상대적이다; 상대적 관점 |
마흐 :공간은 실체가 아니다; 가속운동은 우주의 전체적인 질량분포에 의하여 상대적이다; 상대적 관점 |
아인슈타인(특수상대성이론) :시간과 공간은 모두 상대적이다; 시공간은 절대적인 실체이 다. |
마흐는 우주에 퍼져 있는 물체들이 회전하는 물통의 수면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였으나, 그 힘의 크기와 주변 물체들 사이의 구체적인 관계를 밝히진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만일 마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 힘은 어떻게든 중력과 관계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특수상대성이론과 중력을 모두 포함하면서 마흐의 원리에 해답을 주는 더욱 강력한 이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중력을 고려하여 특수상대성이론을 일반화시키면 회전할 때 느껴지는 힘의 크기를 결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희망 사항이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모든 물체와 모든 종류의 신호들은 제아무리 빠르다 해도 빛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은 뉴턴의 중력이론과 정면으로 상충되는 듯이 보였다.
뉴턴의 주장에 의하면 중력은 전달되는 데 전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중력의 전달속도는 무한대가 되고, 두말할 것도 없이 무한대라는 속도는 광속보다 빠르다는 뜻이므로 중력과 특수상대성이론은 양립할 수 없는 이론처럼 보였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200여 년 전에 뉴턴이 피핼 갈 수밖에 없었던 핵심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중력은 어떤 과정을 거쳐 방대한 영역으로 전달되는가? 지구로부터 무려 1억 5천만 km나 떨어져 있는 태양이 어떻게 지구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태양은 지구와 접촉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중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생기는 원인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1907년의 어느 날, 아인슈타인의 머릿속에 물리학의 역사를 바꾸는 엄청난 생각이 떠올랐다. “중력과 가속운동은 서로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똑같은 현상이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실체의 다른 모습에 불과하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에 의한 힘과 가속운동에 의한 힘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백방으로 궁리하던 끝에 결국 구별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두 가지 현상을 구별할 방법이 이 우주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는 곧 그 두 가지가 동일한 현상임을 뜻한다. 중력과 가속운동은 완전히 똑같다. 이리하여 아인슈타인은 전 세계의 물리학계를 향해 중력과 가속운동이 물리적으로 동일하다는 등가원리를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중력과 가속운동은 동일한 현상이므로, 만일 당신이 중력의 영향을 느낀다면 그것은 곧 당신이 가속운동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인슈타인의 견해에 의하면 지구의 중심을 향해 자유낙하하고 있는 물체만이 가속운동을 하고 있지 않다. 질량이 0일 때 비로소 가속운동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이 떠올렸던 운동의 기준이었다. 뉴턴이 땅바닥에 한가롭게 앉아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 뉴턴과 지구가 사과를 향해 위로 달려 올라간 셈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등가원리는 다음의 사실을 강변하고 있다. -“아무런 힘도 느끼지 않는 관측자만이 자신이 정지상태에 있음을 주장할 수 있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중력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하여 등속운동하고 있는 관측자들이 바라보는 시공간에 대해서 기술했고,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중력을 개입시켜 (중력이 곧 가속운동이므로) 관측자들이 서로에 대하여 가속운동하고 있는 경우의 시공간을 기술하였다.)
가속운동을 한다는 것은 매 순간마다 속도가 변한다는 뜻이고 시간단면의 돌아간 정도는 상대속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으므로, 가속운동이 개입되면 시간단면들은 더 이상 평행하지 않고 매 순간만다 돌아간 각도가 달라질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속운동을 하고 있는 관측자의 시간단면(어느 한 순간에 바라본 공간)은 휘어져 있다는 것이다.
중력과 가속운동은 완전히 동일한 현상이라고 했으므로 가속운동으로 인하여 공간이 휘어진다면 중력에 의해서도 공간은 휘어져야 한다.
이와 같이 물질과 에너지의 존재는 시공간의 굴곡을 결정하며, 그 근처를 지나가는 모든 물체들의 경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공간의 굴곡에 따라 좌우된다.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의 왜곡이 중력장에 의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의 전달과정을 설명하는 수학적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중력의 전달속도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중력은 시공간의 곡률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다. 따라서 중력의 전달 속도는 ‘새로운 물체나 에너지가 등장했을 때, 그로 인한 공간의 곡률 변화는 시간상으로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공간의 굴곡은 뉴턴의 중력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즉각적으로 전달되지 않고 정확하게 ‘빛의 속도로 전달된다.’ 중력이 전달되는 속도는 한 치의 에누리도 없이 빛의 속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수학적으로 우아하고 논리체계가 확고하며 중력과 관련된 문제들을 모두 해결한 최초의 ‘완벽한 중력 이론’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매 순간마다 공간의 정지화면을 그려 넣은 시간단면도가 관측자의 운동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주장한 특수상대성이론에서도 한번 주어진 시공간은 영원히 그 형태를 유지하는 절대적인 개념이었다. 그러나 일반상대성이론이 등장하면서 사정은 또 달라졌다. 시간과 공간은 물체의 운동을 야기한다. 그리고 물체가 움직이면 공간은 또 다른 형태로 왜곡되고···. 이런 과정이 끝없이 계속된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추상적 공간(현대적 의미로는 시공간)을 운동의 기준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때마다 검증방법으로 대두되어 왔다. 그렇다면 최종결론은 무엇인가? 아직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지만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시공간이 운동의 기준이라는 아인슈타인의 결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시공간은 무형의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