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내 남자 중국 연태에서 안마 시술소를 찾아갔다. 홍등가처럼 입구에는 붉은 등이 양 옆으로 걸려 있고 음침한 불빛을 따라 들어가자 인민복 비슷한 차림의 여인들이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는 남자 안마사를 원하며 한 명은 발마사지, 나머지 세 명은 전신 마사지를 받고 싶다는 말을 했으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중국어나 좀 배워 둘 걸 하는 빈말을 오늘도 습관처럼 중얼거리며 짧은 영어에 손짓 발짓까지 동원해서 어렵게 전달하였다. 네 개의 침대가 나란히 놓인 방을 배정 받았다. 잘 정돈된 하얀색 이불과 깨끗한 시트가 중국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 준다. 업소에서 제공한 반바지와 반소매의 윗옷으로 갈아입고 일탈의 해방감에 희희 낙낙하며 네 여자가 가지런히 누웠다. 시선이 머무는 벽면에는 풍경화 한점이 낯설지 않게 걸려 있고 그 아래쪽으로 정수기와 티브이가 놓여 있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뜨거웠던 한낮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잠시 후, 발마사지만을 받겠다는 나한테는 물이 담긴 세숫대야를 든 젊은 남자가 들어오고, 전신 마사지를 원한 친구들에게는 오일류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앳된 아가씨들이 주르르 나타났다. 두 나라 언어들이 뭐라 뭐라 서로 언성을 높여보지만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우리는 남자 안마사를 원했는데 왜 여자 안마사가 오느냐고 항의 했고, 그들은 당신들이 원하는 남자 안마사들은 다른 방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오래 기다려야 하며 여자 안마사도 잘 하는데 왜 별스럽게 그러느냐. 대충 짐작하건데 이런 내용인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손바닥을 펴서 사내 “男”자를 써 보이는 헤프닝도 있었으나 결국 그들을 돌려보내지 못하고 친구들은 원하지 않은 여자 안마사에게 몸을 맡기게 되었다. 굳이 남자를 고집한 이유는 음양의 조화 론도 한 몫을 하지만 아무래도 여자 보다는 남자가 힘이 더 세다는 판단에서다. 안마도 마약처럼 일종의 중독성이 있어서 보다 더 자극적인 지압으로 강도를 높여야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천정의 밝은 형광등을 소등하고 촉수 낮은 벽 등을 켰다. 커튼이 내려진 실내는 약간 야릇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장난 끼 발동하여 내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내 남자'라는 호칭으로 친구들에게 소개 했더니 '남자 복 많은 년은 엎어져도 가지 밭 이다‘라는 야한 농담이 돌아온다. 따라 웃지 않는걸 보니 전혀 우리말을 못 알아듣는것 같았다. 언어불통이 이럴 때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침대 아래쪽으로 다리를 내리고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근 채 눈을 감고 누웠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구가 얼마인데 한국도 아닌 중국에서 일면식도 없는 아들 같은 이 남자에게 내 몸을 만지게 허락하는지. 내 전생에 무슨 선업이 있고 당신 전생에 무슨 죄업이 있어 이런 관계로 만나게 되었는지. 인연의 오묘함에 만감이 교차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닳아 간다. 반세기 넘게 부려먹었으니 몸인들 온전할 리 있으랴만 아픈 곳이 왜 그리들 많은지. 허리가 아프다 뒷목이 뻐근하다 어깨가 결리고 무릎이 쑤시고 손목이 시리기도 하단다. 다행히 나의 몸은 아직 큰 불평 없이 뇌의 지령에 잘 따르고 있기에 안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곳의 안마는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사우나 입장료 수준이지만 돈을 떠나서 내 한 몸 편하자고 사람을 사는 일이 내게는 낯설고 서툴다. 한 남자의 아내로 한 가정의 며느리로 몇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복잡다단했던 지난 세월, 이 정도의 호사쯤은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다며 자신을 합리화 시켜보지만 마음이 가볍지는 못하다. 어쨌거나 나의 육신에게 오늘은 노고에 대한 답례를 톡톡히 하게 되었다. 말이 발마사지이지 전신 마사지와 마찬가지로 안마사의 능숙하고 유연한 손길은 정수리에서에서부터 시작 되어 온 몸을 훑어 내려온다. 입에서 시원하다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오게 만든다. 남자와 여자, 피부와 피부의 접촉, 어색하고 민망하다.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나는 계속 눈을 감고 있다. 아무리 감정의 전원을 끈다 해도 나이를 무시하고 잔류는 흐른다. 속칭 내 남자는 정부(情夫)가 색탐하듯 어깨와 팔을 거쳐 다리의 허벅지까지 거리낌 없이 열심히 문질러댄다. 그는 단지 업무에 충실할 뿐인데 나는 불량한 생각으로 얼굴을 붉힌다. 동상이몽이라던가. 그는 몸이 춤을 추고 나는 상상이 춤을 춘다. 남자의 손길을 자청해서 즐긴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치료 차원이라면 나는 환자요 그는 의사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를 치료받고 있다는 말인가. 우리 사회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안마 시술소, 그곳을 찾아가는 남성들의 심사를 조금은 이해하는 순간이다. 안마사들은 손님의 얼굴 표정을 살펴가며 힘의 강도를 조절 한다고 한다. 웬만큼 아파도 나는 찡그리지 않았다. 대신 시원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시원하다는 것은 바람이 불어 시원한것이 아니라 좋다 만족한다는 칭찬의 의미라는 걸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나의 추임새에 신이 난 그는 척추 전체를 위 아래로 마사지 할 때는 아예 엎드려 있는 내 허리께에 올라타고 편리상이지만 능숙한 솜씨로 브래지어 고리도 풀어 재꼈다. 이런 망측한 행동을 묵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여자, 그가 바로 도덕이라는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나의 실상이 아닐까 싶다. 남자의 은밀한 눈빛이 여자의 신체 부위에 머물기만 해도 성희롱으로 간주되는 세상에 온 몸을 만지고 주무르는데도 시비 걸지 않는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옆 침대에서 간헐적으로 뱉어내는 아픔의 괴성과 행복감에서 흘리는 야릇한 신음에 나는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하고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말았다. 미안하다. 내려다보는 안마사의 얼굴에 땀이 범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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