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주소 - Ул. Толстого 9 / 톨스토고 9번길
예쁜 대한민국 대사관 ㅡ 예전에는 호텔건물
다녀본 세계 많은 대사관 중에 손꼽을 만큼 예뻤다.
그런데 월세를 내고 있다는 것이 아쉬웠다.
가격이 오르기전에 한국정부에서 구입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보다 똑똑하신 분들이 알아서
결정하실 일이기에 ?
타지기스탄 국립 오페라극장
타지기스탄 문화부장관과의 미팅전에
시간이 남아서 먼저 오페라극장을 방문했다.
우즈베키스탄 오페라극장장으로부터 받아둔 전화번호로 전화하니 극장장이 직접 받았다.
20년전 러시아 오페라극장장과 통화하는 느낌의
권위의식이 느껴지면서 현재 타지기스탄 국립오페라극장의 분위기를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오페라극장은 예뻤고
극장에 들어서자 발레단이 연습을 하고있었다.
이렇게 예쁜 극장이 돈 값을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극장장과 국제담당 팀장이 나를 맞아주었다.
우리는
몇마디 해보면 서로가 어떤 위치인지 알수 있기에
극장장은 스스히 마음을 열었고
서로에게 유익한 다양한 앞으로의 계획을 협의했다.
극장장께 한국대사관과 소통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바로 한국대사관을 연결해주었다.
🥐대사님과 오후5시 약속인데🥐
택시가 20분먼저 대사관에 도착했다.
20분동안 대기실에서 무얼하나 고민할 틈도없이
바로 전성식특명전권대사님이 나타나셨다.
첫 인상은 물론이고
대사님과 대화를 이어가면서 많이 놀랐다.
고작 100명남짓한 한국교민들이 살고 있고
또 진출한 한국기업도 별로 없기에 쉬셔도 될텐데
이분은 흔히 생각하는 공무원같은 대사가 아니었다.
약속을 가볍게 생각하는 중앙아시아 정치가들이
수시로 도와달라고 매달릴 경우 지칠만도 하건만
전성식대사님은 놀랍게도 열정을 가지고 타지기스탄정치가는 물론이고 예술가들과도 소통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중앙아시아에서 5년간 활동하면서 좀 지쳤다.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구소련식 시스템때문이다.
단체장들은 물론이고 장관님들 마져도 돌아서면
우리가 언제 그런이야기를 했냐는 듯이 행동하시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있다.
딱 20년전 러시아에서 느꼈던 상황을 또 반복하고
있자니 열정이 식어가는 느낌이다.
러시아는 워낙 지역이 넓으니 이도시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또 다른 곳으로 옮길수 있는 선택지가 많았다.
그런데
워낙 대도시에 집중된 중앙아시아는 선택의 폭이
넓지가 않기에 나라를 옮겨야하는 상황이다.
나는 러시아에서 20년 이상을 활동했다.
20년동안 대사님이나 총영사님들과 많은 행사를 했고 스스럼 없이 통화도 했었다.
2021년 디스크때문에 일상이 힘들정도로 아파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따스한 우즈베키스탄으로 왔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또 대사관과 문화활동을 해보려고 전화를 했더니 아에 영사쪽에서 대사님과의 소통을 어렵게 진행했다.
결국 만나본 대사님은 참 좋은 분이었다.
그런데도 왠지 닫힌 듯한 대사관의 분위기가 부담되어서 거의 4년을 대사관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최근에 열려 있는 좋은 분이 우즈베키스탄 대사로 오셨다기에 몇일 전에 만나 보았더니 정말 다른 분위기였고 교민들과 소통을 원하는 분이셨다.
내년에는 대사관과 함께 좋은 일들이 생길듯하다.
우즈베키스탄 뿐만이 아니라 5개의 스탄나라들을
한국과 연결하는 국제친선 프로그램을 열고 싶다.
타지기스탄으로 입국할때까지도
타지기스탄 문화부장관님과 만나고 또 오페라극장장과의 만남은 생각했지만 한국대사님과 만날계획은 아에 없었다.
왜냐면 지금까지의 한국대사관들은 민간인들의 도움을 반기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거의 35년을
오스트리아부터 지금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까지
수많은 대사님을 만났다.
느낀 외교관의 첫 인상은 대체로 닫혀있었고 이사람이 왜 나를 찾아 왔을까하고 조심스러워 했다.
아쉽게도
만나서 마음을 열고 친해질만 하면 떠났다.
또 새로운분이 오시면 그런일이 반복되었다.
결국 나는
그분들이 연락도 않는데
굳이 만날 필요가 있을까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가는도시마다 공연장과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있었기에 대사관행사를 도와 줄수 있는 방안이 많다.
그런데
아무리 순수한 맘으로 문화사업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분들은 (부탁하는 교민들의 민원때문에) 조심스럽고 방어적으로 교민들을 대하고 있었다.
교민들중에는 별의별 사람들이있다.
심지어는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하여 도피한 사람들도 있으니 대사관도 섣불리 맘을 열기가 어려울 것이다.
나는 그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몇사람 때문에 대사관의 담을 높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경험이 쌓여있기에
타지기스탄 대사님을 만날 때도
그냥 인사만 드리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화가 이어지면서 진정성을 느낄수있었다.
이분은 이미 일반적인 대사들의 일하는 수준을 넘어서 진정으로 타지기스탄과 한국을 잘 이어가고 있었다.
이미 타지기스탄 정부 문화부장관이나 국립오페라극장장과 소통하고 있었고 또 코이카를 통해서 타지기스탄의 문제점을 듣고 도와줄수 있는 방법까지 진행하고 있었다.
수도인 두샨베뿐만이 아니라 제2도시 후잔드의 교민과도 소통하면서 세종학당을 세우고 한글을 보급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었다.
이분의 임기가 앞으로 1년가량 밖에 남지않은 것이
아쉬웠다.
하여간 이분이 계실때 타지기스탄에 한국문화를 알리고 또 문화를 통해서 한국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은 고작 100명 남짓한 교민들이 살고있지만
앞으로 한국과의 직항이 생긴다면 자원이 풍부한 타지기스탄과 교류의 폭은 넓어질 것이다.
타지기스탄 후잔드 출신의 문화부장관은
열려있는 분이고 또 상대의 말을 수용하는 분이었다.
나의 제안을 노트에 받아적으면서 실행하시려는 의지를 보여주셨다.
나는 20년동안 러시아에서 활동하면서
중앙아시아의 문화가 어떤방향으로 가야하는지
대략적인 감은 가지고있다.
그러나 아무리 말해주어도 상대가 수용하지 않으면
그말은 메아리일 뿐이다.
특히나 오랫동안 구소련 시스템에 젖어있던
중앙아시아가 시스템을 바꾸기는 결코 쉽지않다.
그런데
시스템의 변화없이는 결코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타지기스탄 작곡가연맹 회장님의 말이 생각난다.
"정말 고려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이 척박한 타지기스탄 땅에서 쌀을 생산했습니다.
그들이 심은 밭에서는 우리가 심은 밭보다 훨씬 많은 감자가 생산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은근히 무시받는 고려인들이지만
타지기스탄에서는 이렇게 인정받는 사람들이다.
이제는
한국에서 고려인을 한국인으로 품어 주면 고맙겠다.
최근에 연속으로 만난
우즈베키스탄과 타지기스탄 두분의 대사님은
정말 남 달랐다.
대사관이 이렇게 바뀌어 가는데 나만 몰랐나?
이제 대사관직원들도 대사님들처럼
마음을 활짝 열고 소통해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물론 대사관을 상대하는 교인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대사관이 먼저 웃어주길 바란다.
높은 대사관 담벼락이 웃음으로 무너지길 희망한다.
하여간
내년에는 중앙아시아 많은 나라들이
한국과 수교한 35주년이 되는 해다.
좋은 대사님들과 함께
멋진 문화행사를 만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