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기억을 되살려 러시아 보따리 장사에 관해서 적어봅니다. 원래 러시아 보따리 장사의 원조는 소련 어선 선원들입니다. 워낙 소련의 물자가 모자라는 시대인데다 비교적 품질이 좋은 (그 당시 중국산외에 비교 대상 자체가 없기도 했음) 한국산 소비재를 사서 쓰다가 주변의 반응이 좋으니 월급외 부수입으로 부산 감천항이나 울산에 수리하러온 달모레,달리바, 프리모르립프롬,VBTRF,VOSTOKTRANSFLOT, 소속 공모선, BMRT.RTMS,STR,SRTM 등 다양한 종류의 어선 선원들은 아예 월급은 뒷전이고 장사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그때는 물자가 없어 모든 상품이 날개돋힌듯팔렸는데 특히 가죽잠바,텔레비젼,비디오,냉장고등 가전제품,앙고라쉐타,츄리닝( 러시아 마피아와 교통경찰의 기본 복장으로서 고급레스토랑에서도 받아주던 시절),츄리닝은 빅토리 츄리닝이라는 상표가 유명했는데 이사장님 초기에는 떼돈 벌어서 저녁에 돈 헤아리기 힘들 정도라고 소문날 정도였죠., 역도 선수 출신인 이사장님 문어발 하다가 갑자기 경기가 안좋아지고 외상대금 회수 못해서 망했어요. 나중에 세금 추징도 십억 당하고,공구,난로,페인트,타일같은 건축자재그러다가 쵸코파이, 마요네즈, 가구, 라면,간장등 식품까지 실어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게 큰 사업 아이템이 되어 장삿군들이 달러를 수천,수만달러싹 전대차고 배타고 넘어 오게 됩니다.치빌리힌,마리아 사비나,아카데믹,코롤료브,올가 사돕스카야 등등 수산회사의 연락선,과학 조사선등 모든 배들을 보따리 장삿군들이 빌려서 타고 오는데 척당 최소 500만달러에서 많게는700만달러 까지 부산에 달러를 매주 2-3척씩 와서 퍼부었습니다. 부산 텍샤스 거리에는 차이카,보스호드,나타샤,엘레나,나데즈다 등 러시아어 간판을 단 가게들 수십군데가 성업했는데 좋을때는 하루 수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특수는 정말 어마어마했어요.
그런데 초기 대응을 못한 회사는 밀리고 말았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유명한 N라면, S간장은 당시 국내 점유율이 60%를 상회했습니다. 그래서 좀 많이 주문하면 부산 대리점에서 본사 영업팀에 인계하였는데 담당왈 "에.,.,. 담보 넣고 2달 기다리쇼" 이런식이었습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공장 라인도 거의 폐쇄하고 1개 라인만 돌리던 Н@@ 쿠르트,О복 간장에 문의 합니다. 그것도 달러 현찰로 바로 결제하니 대리점 사장은 "이 러시아 놈이 미친게 아닐까?, 주문 취소하면 어쩌지, 저거 가짜 위조달러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답니다. 은행에 입금하니 틀림없는 진짜 미국 US Dollar 가 맞답니다.
몇부두 무슨배 입니까 ? 제가 배달해 드릴께요. (마음바껴 취소하기전에) 이 간장과 라면은 이름도 일반인들에게 생소한데 러시아에서는 대표 상품으로 굳어졌어요. 대형회사가 그후10년간 마케팅해도 추격이 안됩니다.
그래서 다 망해서 문닫기 직전의 두 화사는 살아나고 현지 공장도 차리고 쵸코파이, 도시락,마요네즈는 국민식품이 되었고 롯데 해태 음료수,원단,가방등 모든 상품은 러시아로 통하는 호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도 물자부족이 해소되고 중국산이 등장하자 좀 있다가 규모가 커진 상인들은 외상거래를 하고 가격을 자꾸 인하 해달라고 하니 부산의 한국상품은 저품질의 상품으로 버뀌고 곧 아것은 중국산에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특히 97년 러시아의 모라트리움 선언후 환율이 급격히 올라서 외상거래하던 러시아 상인들은 파산하거나 외상대금을 안갚고 도망가버립니다. 그후로도 삭품,건자재,의류가 명맥을 이어가기는 했으나 호황은 다시 오지 않게 됩니다. 대형 무역상들이 컨테이너 베이스로 거래를 시작한것도 영향이 있었고요. 세관이 제도화되어 이전처럼 대충 세금현찰로 얼마 집어 주고 통관이 안되게 되고 품질 증명서 GOST_R을 요구하게 돤것도 이유입니다.
요새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톡 가는 여객선에 고려인이나 러시아인 보따리 상인들이 있기는 한데 매항차 타는 사람은 한국인Н씨가 유일합니다. 정상통관이 안되는 고급 갈비, 한국 양념등 식재료, 네비게이션,악세사리,미용용품,화장품, 자동차 중장비 부품, 광고재료 등 다양한 물건을 실어 날라가고 올때는 차가버섯, 꿀, 족보있는 고양이,개 ,담배를 사옵니다. 러시아 세관 직원들 끼리 조율이 안되서 통관을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달씩 거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끔 제가 공항 세관에 이야기해서 통관해 주기도 합니다.올해 우리의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트 페테르 부르그 Н사 가는 자동차 부속은 항공기 3항차 화물칸 가득 채워 통관해서 보내주었습니다. 여객은 달랑 세사람인데 .그런데 러시아 세관에서도 통관후 빨리 화물을 치워 주라고 산신 당부를 허는데 보따리 장수들은 화장실 갈때와 나와서 가 많이 달라서 기본을 잘 안지키고 탑차 수배가 안돼서 중형 트럭 한대분 물품을 공항에다 쌓아 놓고 안 치우니 세관원들이 제게 화를 냈다가 사정을 했다가 하소연합니다."볼로댜 제발, 이러다 우리 목 날라간다" 이제 보따리 상인들은 제게 삼진이 아니라 사진 아웃입니다.
한국인들도 이전에는 일본을 들락거리며 시계,코끼리 밥솥,카세트,전자계산기,알부민을 보따리로 날랐고 한중항로에는 중국 한번 갔다오는데 겨우8만원 한달에 70-80만 벌면서 어렵게 선상생활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마저 이제는 경제가 발전한 중국세관 당국의 엄격한 규제로 힘들어지고
중국인 보따리상들에게 밀리고 있답니다. 중국은 러시아와 육상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국경무역아 활발한데 만주리-자 바이칼, 흑하-블라고베첸스크, 수분하-그라데꼬보, 동영-뽈따바가 주 교역 창구입니다. 흑룡강성 동영현 수분하는 가난하고 집들이 다 쓰러져 가던 조그만 마을이 러시아 국경무역을 통해서 안구 15만의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요새는 길림성 조선족 자치주 훈춘시가 원래 조선족이 한족들과 비교해 깨끗함과 안전 측면에서 우세한점 그리고 한국의 영향으로 소비재가 세련되고 차과 의료기술도 발전하여 수분하를 재치고 러시아인들의 제일 선호하는 방문지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중러간에는 종량제로 묻지마 통관하는 회사가 있어 중국 남방의 이우 같은데 제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러시아 할머니들이 중국상인들 보따리짐꾼으로 생활비를 벌기도 했는데 러시아 세관이 입국도장 횟수를 보고 많으면 규정된 일회 50킬로 무관세통관를 이제 안시켜 준다고 불만이 많습니다. 러시아 여행사에서 여행객을 모집해서는 짐을 들어주는 댓가로 2박3일에 4-5만원에 여행을 사켜주가도 한답니다. 훈춘시 공무원,국장,부시장들은 조선족분들이라 자연히 친분이 있으니 속초-자루바노 카페리 재취항 문제로 서로 고민중입니다. 동해 출해를 위해서 중국 정부의 위임을 받은 장지투 원양 사업부에서 미팅을 하자하니 훈춘시 관계자들도 겸사겸사 얼굴보고 와야겠습니다.
현재 동해 블라디보스톡 DBS항로도 중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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