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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3성 관광 정보

흑하 목단강 찾아서

작성자Phogrho|작성시간15.10.23|조회수170 목록 댓글 1

 

흑하(黑河)에서

오대련지(五大連池)에서 오후 3시경 출발한 필자가 버스 편으로 만주 최북단 러시아 국경지대인 흑룡강가 흑하에 도착한 것은 저녁이 가까워서였다. 치치하르에서는 535km10시간이 걸리고 하얼빈에서는 655km11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도시는 깨끗하고 우리가 묵을 국제호텔은 아담하고 청결했다. 흑하시는 흑룡강변을 따라 발달한 서구식 도시로, 강변 둑에 올라서니 건너편 러시아의 국경도시 브라그페시첸스크거리가 한눈에 들어오고 아이들이 떼를 지어 강변으로 내려와 수영하는 것이 모두 보인다. 러시아의 이국적 도시풍경은 오히려 강변 이쪽 흑하시보다 건물은 낡고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중국 측 강변은 온갖 꽃을 심어 시민들을 위한 휴식공원을 만들어 놓았는데. 흑룡강 건너편은 원래 중국 땅으로 청조 말엽인 1858년 제정러시아와의 사이에 맺은 아이훈’(曖琿) 조약에 따라 러시아편에 넘겨줌으로써 광대한 구역을 잃어버리고 그곳을 관리하기 위한 청군이 주둔하고 있던 아이훈의 흑룡강장군아문(黑龍江將軍衙門)도 흑룡강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아이훈부락과 함께.필자는 황혼이 깃든 흑룡강을 선유하기로 하였다. 서쪽으로는 붉은 노을이 먼 이국 북편하늘을 찬란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강심에 이르니 러시아측의 브라그페시첸스크 거리 상점의 러시아어 간판까지 읽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오후의 서늘한 기운을 맞으러 강변에 나와 앉아있거나 젊은이들의 뛰어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이튿날 일행은 흑룡강 가운데 있는 대흑하도(大黑河島)라는 작은 섬에도 가 보았다. 그곳은 일종의 자유무역지대로 자유무역청이라 하여 중국과 러시아산 상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가운데, 두 나라 사람들은 자유로이 출입, 활발한 국경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흑룡강이 결빙하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얼음 위로 양국의 상품교역이 이루어지고 아이들은 마음대로 스케이트를 즐기며, 두 나라를 넘나든다고.19452차대전이 끝날 무렵 소련군은 영하 40도의 한겨울 60cm의 두께로 얼어붙은 아무르강(흑룡강) 빙판 위로 30톤짜리 탱크를 몰고 와 일본군을 공격했다. 바로 그 장소가 지금은 한국자동차의 빙판위의 성능시험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다음날 아침 필자는 새벽 일찍 강둑에 올라 산책하였다. 먼 이국 땅 끝 같은 이곳에 와서 바라보는 흑룡강 물줄기는 영원한 에트랑제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켜 설레게 하였다. 문자와는 달리 푸른 강물은 도도히 흘러 동으로 동으로 향하고 있는데, 강 양변의 두 도시는 어깨가 서로 닫게 근접하고 있어 그렇게 자유롭지는 못하다 하더라도 서로 필요한 경우 상호간 왕래는 이루어지는 듯하였다. 인간의 자유로운 행보를 인위적으로 막는 것은 무엇인가. 도대체 인간본연의 자유를 인간이 억압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국경없는 나라, 검문없는 초소가 우리들 자유인에게는 그리운 것이다. 인간의 자유왕래를 방해하려는 것은 인간본연의 생태를 망각한 야만이요, 폭압이다.흑룡강은 시베리아 남동부에서 발원하여 만주국경을 따라 동으로 흐르다가 러시아의 하바로브스크에서 북동류하여 오츠크해로 흘러드는 장장 4350km로 세계에서 8번째로 큰 강이다. 만주에서는 헤이룽강, 또는 헤이허강(黑河江)이라 부르고, 러시아에서는 아무르강(Amur), 몽고와 퉁그스인은 하라므렌(검은강이라는 뜻)이라 부른다. 11월에서 4월까지의 결빙기간을 제외하면 본류는 항행이 가능하여 극동시역의 물자수송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흑하시의 강둑에 서서 망원경으로 강 건너 러시아를 바라보면 러시아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손에 잡힐 듯하다.

흑하사변(黑河事變)이야기

1921년 청산리전투에서 참패당한 일본군은 일개 사단병력을 만주에 투입하여 독립군 색출에 광분하자 우리 독립군은 일단 흑하에서 재집결하여 러시아령인 자유시로 들어갔으나 일본군의 사주를 받은 러시아의 적군(赤軍)이 우리 독립군을 포위하고 무장 해제를 요구했다. 이에 독립군은 항전하여 전사 272, 러시아군에 체포 917, 행방불명 250, 흑룡강에 투신한 전사 31명이라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이 당시 나중에 임시정부의 노력으로 석방은 되었지만 사령관 지청천(池靑天) 장군도 체포되었다. 이때 체포된 독립군은 이르츠크감옥에서 사형을 받거나 시베리아로 강제 유형을 당했다.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 장군은 청산리 봉오동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홍범도(洪範圖) 장군과 함께 북만주로 탈출, 이후 우리 독립군 활동은 일단 휴지기에 들어가게 된다. 평안북도 삼수갑산 출신인 홍범도 장군은 카잡스탄 어느 시골극장에서 기도를 보다가 1943년 향년 50세로 병사했다.

아이훈(曖琿)역사 진열관

흑하시에서 남쪽으로 32km 떨어진 흑룡간변에 있는 이 진열관은 1683년 청 강희제 시에 러시아의 남침을 막기 위해 군대를 주둔시킨 곳으로 흑룡강장군 아문(衙門)이라 하여 이 일대를 관할하는 행정청도 겸하고 있었다. 원래 흑룡강장군 아문은 현 러시아영토인 흑룡강 북단 유사수어초원에 설치하였으나 1858년 청조와 러시아간에 맺은 국경확정조약에 따라 흑룡강 이북을 러시아령으로 연해주를 러 청 양국의 공동관리 구역으로 두면서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이 당시 청나라는 화남성 일대에서 일어난 태평천국의 난과 아로호 사건으로 그 대응에 고심하던 때이다. 동시베리아총독 무라뷔요프의 강요로 이루어져, 연해주도 1860년 북경조약으로 완전히 러시아로 넘어가 청조는 한반도의 3배에 가까운 땅을 잃게 되었다. 진열관 안에는 이 지역의 역사, 문물자료를 전시해 놓은 진령관과 3층 망루의 괴성각(魁星閣), 아이훈조약 기념비 등이 질서정연하게 잘 보존되어 있었다.

목단강(牧丹江)에서

필자는 흑하에서 비행편으로 다시 하얼빈으로 내려와 곧장 무단장(牧丹江)시로 향하였다. 무단장시는 하얼빈에서 동쪽으로 365km 지점, 송화강의 지류인 목단강 상류에 위치하여 산지와 구릉으로 둘러싸인 인구 80만의 풍경 수려한 도시로 북국의 소강남이라 불린다. 연중 평균 기온이 4도이며 가장 더운 7월이 평균 22.4도로 아무리 더운 여름이지만 밤이 되면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아름답고 울창한 수림과 초원, 호수, , 푸른 물이 넘쳐나는 강변 해수욕장, 시원한 찬바람이 언제나 가득한 동굴 등 곳곳에 청량세계가 산재하여 있어 근래에는 동북의 피서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무단장시는 신비롭고, 어딘가 모르게 사람을 매료시키는 매력 만점의 도시로서 우리들 에뜨랑제들에게는 며칠을 쉬어가고 싶은 향수어린 이국도시였다.주변의 경박호(鏡泊湖), 연화호(蓮花湖)는 국가 1급 풍치지구로 지정되었다고. 목단강유역의 역사는 유구하여 만주족의 조상격인 숙신(肅愼), 읍루(挹婁) 등 부족의 거주지였고, ()대에는 고구려가 망한 후 그 유민인 부여족과 말갈족이 발해국을 건설했던 곳이다. 발해국의 제일 수도인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는 현재 영안현(寧安縣) 발해진 경내로 당시의 많은 유적이 남아있다.()대에는 현 아성(阿城)현이 여진족이 금()을 세웠을 때의 판도로서 청이 건국되고서는 이곳이 저들 만주족의 고장이라 하여 이 일대에서 일체의 개간을 금지시켜, 1903년 무단장-자무스(佳木斯), 하얼빈-수분하(綏芬河)간 철도가 이곳에서 교차되기 전까지는 한촌(閑村)에 불과했다.러시아에 의거 1903년 중동철도가 개통되면서 목단강 연안인 이곳에 철도역을 만들고, 이 도시 이름도 목단강으로 명명하였다.

팔녀투강(八女投江)기념 조각상

무단장 시내 임구현 삼가촌 부근 오사훈강 서안은 1938년 일본군이 이곳을 침략하였을 당시 동북 항일연합군의 격전지로, 당시 이 부대에 지원한 여전사(女戰士) 8명은 연합군이 안전지대로 후퇴하도록 최후까지 남아 분전하다가 탄약이 떨어지자 23세에서 13세까지의 아리따운 8명의 여전사 모두는 투항을 거부하고 일제히 목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이 여전사들을 지휘한 안순복(安順福)이라는 조선족 처녀로 그는 무단장시내의 공장직공 조장이었다. 이 사실을 영구히 기리고자 무단장 사람들은 기념비와 함께 이들의 소상을 시내 공원 안에 흰 대리석으로 조각하여 놓았는데 그중 지휘자 안순복은 치마저고리 모습 그대로 조각되어 있다. 그 앞에서 조용히 묵념을 올렸다.

발해 상경용천부(渤海 上京龍泉府)

우리의 선조 나라인 발해국의 수도 동경성(東京城)756년에서 926년까지 상경용천부로 현재 목단강시 영안현 발해진 외각의 남서쪽 약 4km 지점에 있다. 발해가 이곳에 도읍을 정한 후 건국왕인 대조영(大祚榮)은 이곳을 곧 동북의 대도시로 건설하여 당()의 수도 장안(長安)과 같은 방식과 양식으로 규모를 광대히 하였다. 원래 동경성(東京城) 외성(外城)은 동서 4650m, 남북 3530m, 담장높이 4m의 광대한 규모였지만, 지금 남아있는 유지는 상경성 내의 황성(皇城)부분으로 그 둘레만도 2680m에 이르며, 석축담장과 각 궁전의 기단 주춧돌 등이 짙은 수림 속 잔디위에 질서정연하게 남아 있다.각 궁실은 남향북배(南向北背)의 오중궁전(五重宮殿)으로 그 주춧돌의 크기와 배열로 보아 석주(石柱)도 장엄한 광대한 궁궐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2황궁(皇宮) 동측의 유명한 팔보유리정(八寶琉璃井)과 비록 지금은 갈대가 무성하지만 어화원(御花園)터도 완연하였다. 도시계획도 정연하여 황성남문에서 외성 남문까지 이르는 주작대로(朱雀大路)를 축으로 좌경(左京), 우경(右京)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조방(條房)으로 세분하고 그중 한 조방에서는 온돌시설까지 있었다고 전한다.상경유지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는 단층으로 된 아담한 고건축양식의 발해상경유지 박물관이 있었는데 발해국 당시의 역사문물과 예술품, 석조, 벽화 등 당시 발해국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출토문물을 전시하고 있었다.영안현 발해진, 동경성에서 남쪽으로 4km 정도 상거한 곳에 세워진 발해국 사원인 대불사(大佛寺)가 있던 자리에 청()시대인 1722년 강희제가 세운 흥륭사(興隆寺)가 있는데, 불각인 삼성전(三聖殿)안에는 발해시대의 석불이 있고 흥륭사 본전 후원에는 발해시대의 완전한 예술품인 높이 6.4m의 아름다운 석등당(石燈幢)이 있다. 이는 한반도에 산재한 신라시대의 일주석등당(一柱石燈幢)과 꼭 같은 모습이었다.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 장군

아성(阿城)을 지나 무단장(牧丹江)시에 이르기 전 일행은 해림(海林)시에 닿았다. 조선족 10만이 살고 있다는 해림시(海林市)에는 백야 김좌진 장군의 기념관이 있었는데, 으스럼한 저녁이었지만 필자 일행은 관장 L씨의 안내로 해림시에서 2시간 거리인 해림시 산시진(山市鎭) 도남촌(陶南村) 백야 장군이 청산리 대첩 후 한때 일군을 피해 살던 집을 찾아가려 나섰다. 그러나 도남촌 가는 길은 아주 힘들었다. 좁은 비포장도로에, 산곡길, 어두운 산천.도남촌에 닿았을 때는 모두가 지치고 피곤하였지만 그래도 기꺼이 백야장군의 집에 왔다고 모두들 흥분하였다. 대문을 들어서자 여러 개의 행랑채가 있고, 마지막 숨을 거둔 방앗간까지 재현해 놓았는데 어둠 속에서 감격스러운 것은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백야장군의 흰 대리석 조각상이었다.백야 김좌진 장군은 1889년 충남 홍성 안동김씨 명문가문에서 태어나 15세에 가노(家奴)들을 모두 해방시키고 24세가 되던 1913년 대한광복단에 가입 활동하다가 군자금 모금 혐의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1917년 출옥 후 만주로 망명, 광복운동에 참여하다가 1920년 임시정부 산하의 북로군정서 총사령관으로 홍범도(洪範圖) 장군, 참모장 나중소(羅仲昭), 연성대장 이범석(李範奭)과 함께 1600명 독립군을 거느리고 기관포 7문으로 청산리(靑山里), 백운평(白雲坪), 천수평(泉水坪), 어랑촌(漁郞村), 봉오동(鳳梧洞) 등지의 전투에서 일본군 3300명을 사살하는 대첩을 거둔다.이때의 3일간 전투에서 백야장군의 군모가 날아가고, 이범석 장군의 군도(軍刀)가 부러지는 등 대전투였다. 우리 독립군도 그 뒤 60명이 전사하고 90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독립군은 곧 흑룡강 일대로 퇴각, 흑하사변을 겪은 후 뿔뿔이 흩어지고 백야장군은 동지 몇 사람과 러시아령 자유시(自由市)에서 한족연합회 주석으로 개간과 교육에 종사하다가 1929년 영안현 중동로 산시역 자택 앞 정미소에서 공산청년회 박성실의 흉탄에 맞아 운명했다. 일생을 조국광복에 바친 백야장군은 그때 향년 42세였다.백두산에서 동북쪽으로 60km 떨어진 청산리에는 지금 청산리 항일 전적지라는 목비 하나가 초라하게 서 있고, 치열하였던 봉오동 전적지는 저수지로 바뀌어 흔적조차 찾을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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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Phogrh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0.23 목단강은 동북항일연군 유적이 만은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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