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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곡 「그네」 노래비를 찾아

작성자타이탄|작성시간26.06.11|조회수29 목록 댓글 0
시조가곡 「그네」 노래비를 찾아


부산에 둥지를 튼 지도 어느덧 이 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들이 마음속 지도 위에 점처럼 남아 있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저마다 한두 곳쯤은 꼭 찾아가야 할 장소를 품고 사는가 보다. 오월 중순의 어느 토요일, 문학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찾아가야 할 곳을 떠올리다가 문득 낙동강 변에 세워진 시조가곡 「그네」의 노래비가 생각났다. 그렇게 나는 전철을 타고 강서구 대저동으로 향했다.

망미역에서 강서구청역까지는 전철 앱에 28분이 걸린다고 떴다. 토요일 오후의 객차 안은 나들이객들로 붐볐다. 강서구청역이 가까워지자 차창 밖으로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푸른 강변 잔디밭에서는 사람들이 운동과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낙동강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마다 내 마음 한쪽에는 늘 전쟁의 상흔이 먼저 떠오른다. 칠십여 년 전, 피아가 얽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던 낙동강 전선. 꽃다운 젊음들이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스러져간 혈사의 강. 강물은 오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흐르지만, 그 물결 아래에는 아직도 수많은 사연과 울음이 잠들어 있는 듯하다.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어느새 강서구청역에 도착했다. 초행길이라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결국 휴대폰 지도를 켜 들고 역사 밖으로 나왔다. 마침 가랑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이 빗속을 걸었다. 이십여 분쯤 지났을까. 다행히 노래비 위치를 아는 한 사람을 만나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낙동강 뚝방길은 짙은 녹음 속에 잠겨 있었다. 길 양옆으로 늘어선 나무들은 푸른 터널을 이루고 있었고, 간간이 산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이들만 오갈 뿐 한적했다. 빗물에 젖은 잎사귀들은 한층 더 싱그러웠다. 뚝방길을 따라 오 분쯤 걸었을 때, 마침내 오른편에 「그네」 노래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래비는 부산 강서구 대저1동 낙동강 둑길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저동 하면 많은 사람들이 짭짤이 토마토를 떠올린다. 낙동강 하구 삼각지의 토양에 바닷물 염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짠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독특한 토마토가 자란다고 한다. 그 넉넉한 강변 들녘 한켠에 노래비는 조용히 서 있었다.

노래비의 이름은 ‘금수현 노래비’였다. 작곡가 금수현 선생의 동상과 악보, 그리고 안내문이 함께 세워져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소프라노 김영자와 테너 박승유가 부른 「그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맑고도 애잔한 선율이 빗속의 나무 사이로 퍼져 나가자, 나뭇잎들조차 리듬에 맞춰 흔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안내문을 읽다가 문득 아쉬운 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에도 작사가 김말봉 선생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네」를 금수현 선생 혼자 만든 작품으로 오해하기 쉬워 보였다. 시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또 시조를 쓰는 한 사람으로서 그 점은 적잖이 안타까웠다. 「그네」의 노랫말은 소설가 김말봉 선생이 지은 시조이다. 그리고 그 작품에 곡을 붙인 이가 금수현 선생이다. 시조와 음악이 만나 하나의 가곡으로 피어난 작품인데, 정작 시조의 이름표는 빠져 있었던 셈이다.

궁금한 마음에 휴대폰으로 금수현 선생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금수현의 본명은 김수현. 한문식 발음으로 성을 ‘금’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는 부산 강서구 대저동 출신으로 일본 도쿄음악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소설가 김말봉 선생의 딸 전혜금 여사와 결혼했다. 자녀 이름을 모두 아름다운 한글 이름으로 지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금나라, 금난새, 금내리, 금누리, 금노상. 그중 금난새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휘자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네」가 장모인 김말봉 선생의 시조에 곡을 붙인 작품이라는 점이었다. 가족 안에서 태어난 문학과 음악의 만남이 세월을 건너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이 노래비는 금수현 선생의 아들이자 조각가인 금누리 씨가 제작했다고 한다. 한 가족 안에서 문학과 음악, 그리고 조각 예술이 함께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노래비 옆 화강암 악보판에는 벨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버튼을 누르면 「그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숲 우거진 둑길에 노래가 퍼지자 지나가던 사람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어떤 이는 동상 옆에 앉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 역시 노래비 앞 벤치에 한동안 앉아 빗소리와 함께 「그네」의 선율을 들었다. 오래된 시조의 운율은 세월 속에서도 조금도 빛이 바래지 않은 채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돌아오는 길, 근처 시장에 들러 대저 짭짤이 토마토를 사볼까 했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가랑비는 여전히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빗속의 노래비를 뒤로한 채 천천히 역으로 향했다. 짧은 하루였지만 마음속에는 오래 남을 풍경 하나가 새겨졌다. 문학과 음악은 그렇게 낙동강 바람 속에서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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